[좌우당간 강릉 삼척] 포토에세이 - 강릉에서 삼척까지

7번 국도에서 만나는 바다 풍경

2023-06-27     유동영
심곡에서 금진까지, 바다와 맞닿은 헌화로

강릉 사천 해변에서 동해를 지나 삼척 임원항까지, 직선거리는 약 80km이고 크고 작은 항구와 해수욕장은 각각 30여 곳에 이른다. 간단한 산수로도 항구와 해수욕장 사이 거리는 평균 2km 남짓이다. 강릉과 삼척 어느 해변에 가더라도 항구 또는 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작고 해안선이 매끈해서 자칫 비슷한 바다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저마다 이름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달랐다. 경포 해변 주변에는 해구를 보호하고 재해를 막으려는 너른 소나무밭이 있었고, 정동진 근처에는 파도를 헤치며 달리는 바다 열차가 있었고, 해안 길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진에는 물질하는 해녀가 있었고, 맹방과 망상에는 길디긴 모래사장이 있었다. 

7번 국도를 따라 움직인 열흘 사이 바라본 바다는 매번 새로웠고, 그 변화무쌍한 모습은 거기에 터를 잡은 이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듯했다. 다만 그 풍요가 산중의 절에까지 이어지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강릉 사천 해변 앞 바위

시원스러운 동해 바다의 거친 파도와 수평선이 지루해질 만하면 갖가지 모습을 한 바위들이 드러나 있다. 사천 앞바다에는 큰 범고래들이 등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만한 하얀 화강암 덩이들이 있고, 심곡항에서 금진항 사잇길에는 넓적 바위들이 해변에 비스듬히 내리꽂힌 듯이 서 있고, 추암 해변에는 김홍도가 관동 8경과 금강산 기행을 그림으로 담으라는 정조의 명을 받아 남긴 『금강사군첩』 속 <능파대>의 실제 장소인 촛대 바위 등이 있다. 해변에 선 바위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주는 것에 더해 거친 물살을 부드럽게 달래며 갖가지 바다 생물들과 갈매기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추암 해변의 촛대 바위
삼척 갈남항의 월미도
삼척 신남항 아래 바위들

 

파도는 잠시 모래에서 쉬고 간다.
강릉 송정 해변

머물러 갈 수 있는 해변 또한 곳에 따라 모습이 다양하다. 도심과 가까운 모래사장에는 주로 가족들이 찾는다. 도심에서 벗어나면 연인들이 많다. 경포나 송정 해변은 가족들이 함께 즐기기에 좋은 조건들을 두루 갖췄다. 그에 비해 망상 해변은 연인들이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다. 바다와 바람과 해안 절벽 경치를 함께 즐기고자 한다면 심곡의 ‘바다부채길’도 좋다. 해안단구 관광지로는 국내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구역은 편도 2.86km로, 걷는 데 약 1시간이 걸린다. 사실 동해안 어느 해변에 가도 좋다. 단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어느 때는 모래 해변 뒤에 앉아 하늘·바다·땅과 함께 그려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터이다. 

 

강릉 심곡 바다부채길
삼척 망상해수욕장
강릉 정동진

 

삼척에서는 드문 금진리의 해녀 박옥자님

 십여 년쯤 전 금진 해변을 지날 때 한 어르신이 긴 막대기를 들고 바다에서 미역을 건져 올리는 모습이 흥미로워서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었다. 당시는 길과 바다가 아름다운 조용하고 한가로운 작은 동네였다. 그 사이 해변에는 양양 해변에서나 보았던 서퍼들로 가득했고, 길옆으로는 서핑보드가 세워진 몇 개의 가게들과 더불어 펜션과 같은 숙박업소도 들어섰다. 이런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금진 해변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십여 년 전과 별다를 게 없었다. 잠시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과 모래를 오가는 파도를 바라보며 해변을 걸었다. 파도와 모래에 집중해 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서퍼들의 검은 옷과 다르지 않은 옷을 입은 한 어르신이 무엇인가를 들고 해변 가장자리를 걷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발길을 멈추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는 큰길 아래 해변과 닿는 가장자리 바위들을 어렵게 디디며 멀어져갔다. 그가 옹벽 뒤 보이지 않는 바닷길로 사라지자 나는 모래사장을 뛰었다. 그렇게 200m쯤 뒤쫓아 갔을 때 그는 해변에서 30m쯤은 되는 바다에 떠 있었다. 올해 68세인 박옥자님. 십여 년 전 미역을 걷어 올렸던 이라 했다. 그는 여기 금진리에서 나고 자랐고, 남편 김상옥님도 이 마을에서 만났다. 

 

말을 못 하는 부모님 슬하 7녀 가운데 맏이인 그는 뗏목을 타고 바다 일을 하신 아버지 일손을 돕느라 일찌감치 바다와 함께 자랐다. 아버지는 채취한 해산물을 파는 장에 갈 때도 똑부러진 큰딸을 데리고 나가 통역을 부탁했다. 아버지는 말씀만 못 하실 뿐 부지런한 데다 머리도 좋아 동네에서 모두 알아주는 뱃꾼이었다. 그런 대가족에 익숙해서인지 지금 그의 집에는 아들·딸 가족 등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4대가 함께 살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가족 구성이 가능한 건 모두 바다 덕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금진 해변은 수심이 완만하고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모래가 늘고 있어서 해산물이 많다. 미역은 5월까지 땄고 요사이는 주로 성게를 잡는다. 오늘 7시 반부터 시작해 10반까지 잡은 모두를 가지고 강릉 장터에 노점을 열고 판다. 오늘 팔지 못하는 것들은 절대 다음 날 장터에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노점 가운데 가장 붐비는 게 그이 자리다. 사람들은 금방 바다에서 가져온 해산물을 보고 그에게 ‘명품 아줌마’라는 별명을 만들어 주었다. 늘 그대로인 것 같은 바다지만 하루하루 다르다. 물이 잔잔하고 시야가 좋은 날은 한 달 중 겨우 7일이 되지 않는다. 오늘도 며칠 만에 한 물질이다. 그의 남은 생 또한 바다와 함께한다. 

 

갈남항에서 만난 진씨. 그는 5년쯤 전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려운 동네 어르신에게서 뗏목을 건네받았다. 시야가 좋았던 금진 바다와는 달리 어제 갈남항은 물속이 탁해 일을 놓았다. 오늘 잡은 것들은 대부분 성게이고 지인들과 나눈다.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