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 사유의 방, 그리고 그 뒷이야기

큐레이터가 본 사유의 방

2023-05-23     신소연
<사유의 방> 개관 포스터

특별한 경험의 공간,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2021년 11월 12일 개관한 이후 지금까지 관람객 약 100만 명이 다녀갔으며, 이제 명실상부한 박물관의 대표 전시실로 자리 잡았다. <사유의 방>은 전시 공간과 전시품이 하나가 되는 박물관의 새로운 전시 형태의 유행을 가져왔고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적극 활용하는 젊은 세대의 방문이 늘어나는 등 새로운 박물관 전시 관람 문화로 이어졌다. 심지어 새로 출간된 서적과 공간에 ‘사유’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사용되는 유행도 가져왔다. 

2021년 11월 개관한 <사유의 방> 전시실 입구.
장 줄리앙 푸스, <순환>, 2021, 디지털 비디오, 3430 x 1200 픽셀, 5분, 흑백, 사운드

<사유의 방>에 들어서면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함께 사유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길고 어두운 복도를 들어서면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내 안에 깃든 초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워 본다. 복도 한쪽에는 프랑스 작가 장 줄리앙 푸스(Jean-Julien Pous)의 얼음, 물, 수증기로 상징화된 물질의 순환에 대한 흑백 영상이 흘러간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인가, 덧없는 우리의 삶인가. 

그저 요즘 멍때린다는 말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봐도 좋다. 어둠의 끝에 이르러 빛이 나는 입구로 들어서면 저 멀리 나를 바라보는 반가사유상이 있다. 희미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는 두 보살을 향해 나아간다. 현실을 떠나 어두운 복도를 지나 도착한 이곳은 반가사유상이 있는 초현실적인 세계. 천장에는 별빛이 빛나고 반가사유상 위에는 우주 속에 빛나는 지구의 푸른빛이 어른거린다. 방 안의 어느 것 하나 수직인 것도 수평인 것도 없다. 천장도 바닥도 그리고 벽도 모두 기울어 있다. 똑바른 것이 없듯이 무엇하나 고정된 것도 없다. 살짝 기울어진 경사를 걸으려면 저절로 속도가 늦추어지고 멈춘 듯 움직인 듯 기울어진 나의 시선 끝이 하나로 모이지도 않는다. 벽에 바른 숯의 향내와 붉은 흙에 섞인 계피의 은은한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렇게 다가가다 어느 순간 반가사유상을 마주한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아무런 장신구 없이 미동도 없는 모습이라면 두 반가사유상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나 모든 중생의 구제를 위해 깨달음을 미룬 존재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멈출 듯 움직일 듯도 하고 얼굴에 살짝 올린 손을 내릴 것도 같다. 한쪽 다리를 내려놓거나 반대편 다리를 마저 올려 가부좌를 할 것도 같다. 마치 석가모니 태자가 수행을 이어가다 멈추고 다시 나아가는 듯하다. 그 모습이 어쩌면 인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다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그래서 방 안에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다. 심지어 반가사유상 두 분도 정면을 보고 있지 않고 저 멀리 방 안을 들어오는 사람들과의 시선을 맞추기 위해 살짝 틀어 앉으셨다. 화려한 보관을 쓴 왼쪽 반가사유상은 크기가 작아서 오른쪽 반가사유상보다 살짝 더 앞으로 배치되었다. 넓은 타원형의 낮은 대좌도 틀어졌고 공기의 흐름도 순환하는 듯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반가사유상 뒤를 돌아 숨겨진 뒷모습을 보게 된다. 이윽고 천천히 걸어 나오면 어느덧 빛의 현실로 돌아와 있다. 

사유의 방을 찾은 많은 사람은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가장 감동적이라고 한다. ‘많이 힘들지. 이리 가까이 와보렴.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라고 말하는 듯하다. 깨달음의 찰나의 미소, 어머니의 미소, 친구의 미소…. 다들 본인들의 경험으로 미소를 바라본다. 어떤 관람객은 한없이 반가사유상 앞에 서서 천정을 보며 수만 개의 봉이 하늘에서 비가 오다 멈춘 듯하다고도 한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무엇보다 사람들이 감동받은 이유는 이렇게 생생하게 반가사유상 두 점을 마주하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사유의 방 탄생 배경

<사유의 방>을 돌아봤다면 다들 한 번쯤 어떻게 이런 공간이 탄생했나 궁금해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교과서에서 배우는 문화재고 외국 박물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신라 금관과 함께 가장 관심을 보이는 대표 소장품이 반가사유상이다. 그러나 정작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아쉽게도 그동안 반가사유상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1m 가까운 국보 금동 반가사유상이 두 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도 했다. 해마다 실시하는 관람객 만족도 조사에서 반가사유상은 인지도 4위에 그칠 뿐이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 마침 불교조각 전공자인 민병찬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부임하면서 반가사유상을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면서 동시에 한국문화의 상징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전시실처럼 반가사유상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그동안 교체 전시를 하며 한 점만 전시했던 것과 달리 두 점을 동시 전시하기로 했다. 두 점을 모두 전시하는 것은 1986년 중앙청 이전 재개관,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의 광화문시대 고별전, 그리고 2015년 고대불교조각전 등 단 세 차례 짧은 기간에만 있었던 일이다. 그러므로 두 반가사유상을 한 공간에서 함께 본다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두 존재가 한곳에 모이듯 우리 시대가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접근성도 고려해 3층에 있던 반가사유상이 박물관 전시관 입구 로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바로 갈 수 있는 2층으로 위치가 결정됐다. 

 

왜 지금 반가사유상인가?

누군가가 물어본다. ‘왜 지금 반가사유상인가?’라고. 사실 반가사유상을 불교라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유’란 인류의 탄생부터 시작된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류의 보편적인 철학적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상당수의 현대인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만 깊은 사색 끝에 이르는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2021년은 아직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한참 지나고 있었기에 새로운 반가사유상실은 관람객들에게 ‘사유와 미소로 공감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기획 의도로 조성됐다. 즉, 어떤 정보를 알리는 공간보다는 사회 구성원에게 위안이 되는 공간이자 종교적, 역사적, 미학적 의미를 반영한 전시 공간 조성이 목표였다. ‘불교’, ‘불교미술’이라고 하면 어렵거나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도록 감성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민병찬 전 관장은 박물관의 학예 역량과 외부 전문가가 함께 한다면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국립중앙박물관 후원 아래 건축가 최욱 대표(원오원 아키텍스)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최욱 대표의 도면을 처음 본 날 ‘무엇보다도 전시실 길이가 24m로 이는 소극장 규모와 같다’는 건축가의 설명은 인상적이었다. 소극장의 맨 뒷좌석에서도 무대 위의 얼굴을 볼 수 있듯, 반가사유상실 입구를 들어서는 관람객이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볼 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유의 방> 천정 작업 모습
<사유의 방> 천정 작업 모습

두 반가사유상 위에는 천정이 위로 올라간 궁륭을 구상했고 바닥은 살짝 경사를 뒀는데 경사란 사람의 발걸음을 늦추는 효과가 있어 공간에는 경건함도 깃들었다. 전통적인 소재인 숯과 흙으로 벽을 마감하는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여러 논의과정을 거쳐 5월 실물과 1:1 크기의 전시대 모형과 천정 구조물 샘플 등을 설치하고 최종 발표회를 마쳤으며 계속해서 실험 공간 안에서 조명 테스트를 비롯한 여러 난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물론 늘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궁륭과 같은 부분은 기존의 건축 구조상 변경이 어려웠기에 천장에는 길이를 달리하는 2만 개의 봉을 달아, 마치 천장이 기운 듯 표현했는데 이 공정이 정말 오랜 공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전시 담당 큐레이터인 필자는 반가사유상을 박물관의 상징, 아이콘, 대표 브랜드로 만드는 작업을 위해 반가사유상만의 브랜드 스토리와 브랜드 스토리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 전문가와 협업하며 MZ세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소비 경향을 조사하고 브랜딩 전략을 수립했는데, 전시실 이름부터 ‘사유의 방’으로 정해 차별화하고, 입구에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문구로 전시실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 이는 기존의 고구려실 또는 청자실 같은 시대나 매체로 표현된 전시실 명칭과는 구분되며 공간과 전시품이 하나의 브랜드로 각인되기 위한 방안이었다. 관람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전시실 안에는 텍스트가 없으며 전시실 입구 QR코드를 스캔하면 모바일 리플릿을 볼 수 있도록 했고, 출구에 QR코드가 인쇄된 브로슈어를 비치해 반가사유상의 여운을 집에 갖고 갈 수 있도록 했다. 포스터나 화보, 문화상품을 위해 제작한 새로운 반가사유상의 이미지는 객관적인 유물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반가사유상의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전달하고자 했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반가사유상의 표정과 눈매가 새롭게 발견됐다. 여기에 기존의 도록과는 다른 대중매체 형식의 브랜드 스토리북을 발간하고, 70일간 아카이브 영상 촬영을 이어갔으며, 10개월에 걸쳐 방송사와 감성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을 협업했다. 메타버스 ‘제페토월드의 힐링동산’과 한국조폐공사의 반가사유상 메달 출시, 인천공항 미디어 타워의 영상 상영, 반가사유상 문화상품의 지속적인 개발과 신규 상품 출시도 이어졌다. 이러한 반가사유상을 아이콘화하는 일련의 작업이 결실을 맺어 사유의 방을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에 찾아오는 관람객이 전체의 28% 이상이며, 전시 안내 앱에서 반가사유상이 조회수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개관 1년 만인 2022년 관람객 대상 설문조사에서 기존 4위였던 반가사유상에 대한 인지도가 1위로 올라서면서 <사유의 방>과 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 대표 명소와 소장품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이 증명됐다.

사유의 방이 탄생하기까지는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전시 기획부터 설계도가 완성되기까지 박물관 부서 간의 협력이 필요했고 공사 일정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공정 중에는 작업자들의 체력을 요하는 일이 많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 함께한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사유의 방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관료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담당자들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격려하며 개편 업무를 일임한 박물관 조직문화와 리더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해 본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신소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실>, <불교조각실> 전시 개편, 2014년과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불교조각 조사보고』 I·Ⅱ 발간, 2015년 특별전 <발원, 간절한 바람을 담다> 개최, 2021년 반가사유상실인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개관 업무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