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로써 울타리를 삼아

다시 뵙고싶은 큰 스님/자운(慈雲) 스님

2007-09-17     관리자
자운 스님은1911년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였으며, 1927년 해인사에서 혜운 스님을 은사로 한규 화상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율사인 경념 스님에게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고, 그의 계맥을 계승하였다. 해인사에서 율장연구에 몰두하였으며, 1935년부터 3년 동안 울진 불영사에서 장좌불와로 결사하였다. 용성선원과 김용사, 통도사 등에서 정진했다. 1938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 대선사로부터 전법게와 의발을 전수받았다. 1955년 해인사 주지. 1956년 재단법인 해인학원 이사장. 1958년 조계종 감찰원장·1967년 범어사 주지. 1976년 조계종 총무원장. 1977년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 1981년 종단 단일계단 전계화상. 1987년 동국역경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비구계본, 비구니계본, 사미계본, 범망경 등의 계본과 무량수경, 약사경, 자비수참, 권발보리심문, 정토법요 등의 경전을 출간하였다. 1992년 해인사 홍제암에서 세수 82세 법랍 66년으로 입적하셨다.


* 자운 대율사 율풍 선양 제1차 특별심포지엄 자료집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운 문도회와 가산불교 문화연구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자운 스님은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율사로서 찌는 듯한 삼복더위에도 가사 장삼을 벗지 않으실 정도로 한평생 계율을 수지하고 홍포하셨다. 율행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불법 중흥의 근본임을 천명하신 스님의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날 청정승단의 기틀이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께서 계율 지킬 것을 그토록 간절히 주창하셨던 데는 다 시절 인연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한국 불교는 대처승화되면서 세속화의 길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들 가운데 걸출한 인물들을 보면 전생부터 기연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찍이 자장 율사의 후신으로 칭송받던 스님의 숙연설(宿緣說)이 감동적이다. 스님의 제자인 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자운 대율사 율풍선양 특별 심포지엄’에서 그 내용을 밝혔는데 다음과 같다.

“양산 통도사가 1950년 6.25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부상을 당한 국군 상이병들의 정양소(31육군정양소)로 사용됨에 따라 사중(寺中) 스님들은 모두 사하촌의 사가(私家:대처승측에서 종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에서 숙식하고, 사찰법당은 보궁 금강계단만 제외하고는 군인들의 수용소가 되었다.

각 법당은 모두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면서 마룻바닥은 장기판으로 각선(刻線)되었고, 이발한 머리카락과 소를 잡아 끓여먹고 남은 뼈다귀는 마루 밑에 집어넣어 법당이 마치 쓰레기장과 다름이 없었다. 군인들이 1952년 3월 신축한 부산요양소로 옮겨간 후에도 법당에 쌓인 오물을 청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해 5월에 율사께서 통도사 상로전을 맡아 7명의 율원생(감로계단)을 가르치면서 손수 법당에 쌓여있는 머리카락과 소 뼈다귀 등 각종 쓰레기를 오랜 시간 동안 말끔히 청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당마다 조석예불까지 모셨다. 특히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에서 매일 사분정근(1일 4회기도)으로 평화적 남북통일과 국태민안, 지계정신 고취로 승풍을 진작하고 사원은 속태(俗態)를 벗어나 청정도량이 되는 한국불교의 중흥을 기원하였다.

당시 보광전 별당에 주석하시던 전임주지이며 산중원로이신 구하보천(1872-1965) 스님께서 율사스님의 일거일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깊이 느낀 바가 있던 중, 어느 날 밤 꿈에 이미 입적하신 용악혜견(1830~1908, 계행 청정, 금강경 10만독, 음력 4.8일 출생한 스님은 소원대로 열반일에 입적하셨다) 스님이 나타나 ‘나는 평소에 해인사에 봉안하고 있는 고려팔만대장경판을 인경유포하려던 소원을 가져, 생전에 이미 4부를 탁본하여 삼보사찰에 각 1부씩 봉안하고 나머지 일부는 전국 각 유명사찰에 나누어 모셨다.

그런데 조선조 오백년 동안 억불정책으로 쇠미해진 한국불교는 설상가상으로 일제의 강점으로 세속화되었으니, 이를 개탄하고 천육백년의 한국불교 전통을 회복하려는 서원으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으니, 지금 상로전에 있는 자운이 바로 나의 후신이다.’라고 하였다.

꿈을 깬 구하 스님은 너무나 이상하여 용악 스님의 입적연월일(1908년 2월 15일)과 자운 스님의 출생연월일(1911년 3월 3일)과 맞추어본 결과 1911년 용악 스님의 삼년상이 끝난 바로 그해 3월 3일 원력에 따라 지금의 자운 스님으로 태어났음이 분명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월하, 벽안, 홍법, 청하, 일각 스님 등 많은 스님들도 이 일을 들어 전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스님은 위와 같은 숙연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보살계를 부활시켜 청정한 계해(戒海)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여러 분의 율사를 배출하여 율맥을 전하였다. 한편 계율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여러 계본을 출판 분포하여 느슨했던 승단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종단의 여러 중책을 맡으면서도 승속이 신심을 발할 수 있는 경전을 출간하셨으니 그 무량한 덕화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 각자가 공업(共業)을 참회하는 수행을 통해서만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하시며 지극정성 참회법회를 봉행하셨다. 갈 길은 요원하기만 한데, 계행을 지키고, 참회 발원하며 스님의 뜻을 올곧게 계승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 우리들의 몫이리라.

제불(諸佛)이 환희하고 감응하다

예경으로 토양을 삼고, 참회로 거름을 삼으며, 계율로써 울타리를 삼아 싹을 틔우는 인(因)을 만들고, 예경과 참회, 지율지계로 정진하는 바 제불이 환희하고 감응하니 바로 빛과 공기로 증장의 연(緣)이 되는 바다. 예경과 참법을 선양하고 율풍을 진작함이 불법중흥의 근본이라 여김이 이에 있다.

항상 손으로 깎은 머리를 만져보면서 살아가야…

수계자 여러분, 우리는 항상 손으로 깎은 머리를 만져 보면서 살아갑시다. 우리가 엄연한 부처님 법에 어긋나 마군이가 된다면 이는 타락 중에 타락이니 천추의 한이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수계자 여러분, 우리 불교를 파괴하는 마군이의 말을 만나거든 철저히 분쇄하고 영원한 진리인 부처님 계율을 끝까지 지켜 중생들로 하여금 사로(邪路)에서 방황하지 않고 부처님 정도(正道)에 들어가 남김없이 성불케 합시다.

불교가 흥왕 발전하려면 계율을 엄수해야

불교가 흥왕 발전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종도들의 할 일은 충실히 수행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가 흥왕하려면 불자 본연의 임무인 수행에 철저해야 하고 실추된 승단의 위신을 회복하려면 계율을 엄수하는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리까?”라는 물음에 부처님께서는 “계로써 스승을 삼으라”고 하셨으며 담무덕(曇無德) 비구는 비니법(毘尼法:계율법)을 연설함은 정법이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함이라 하였으며, 견월독체(見月讀體) 율사는 계가 청정하므로 진승(眞僧)이 나타난다라고 하였고, 희안(希顔) 대사는 승가의 수행이 향상되면 사회가 불법을 존중하게 되고 스님들이 일반으로부터 경시되면 불교 또한 무시를 당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불교의 흥쇠가 스님들의 경중(輕重)에 달려 있다고 하였으니, 승중즉법중(僧重則法重)하고 승경즉법경(僧輕則法輕)이란 말이 재삼 절감됩니다.

아직까지 온갖 업장과 번뇌에 얽매여 있으니

그러므로 오늘 중생 가운데서 가장 근기가 뛰어난 인간의 몸을 받았고, 또 눈먼 거북이가 망망대해에서 의지할 뗏목을 만남과 같이 우리가 불법을 만났지만 아직 중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업장과 번뇌에 얽매여 있음은 우리 모두 함께 통탄할 일입니다. 통탄할 일이라고 해서 통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그 아픈 뉘우침을 이제라도 돌려서 바로 믿고 바른 지혜를 닦고 바로 행하여 우리 모두가 하루 빨리 괴로움을 벗어나 불법의 참 즐거움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과거에 지은 선하지 않은 업을 없애고 문수보살의 지혜 바다가 항상 청정하며 보현보살의 원해(願海)가 염념히 원성(圓成)할 때까지 정진하여 그 공덕이 나와 남을 이롭도록 회향하기를 바랍니다.

계율을 잘 모시고 지녀야 생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익혀서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선자(參禪子)는 참선을 하고, 염불자(念佛子)는 염불을 하며, 또 경전을 읽고 뜻을 헤아리며 주력에 힘쓰기도 합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이와 같이 근기와 인연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같이 소중히 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허물을 뉘우치되 계율을 스승삼아 앞으로 지을 허물을 경계하여 짓지 않는 지혜인이 되어야 진정한 대자유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