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하늘에 바치는 음료

술과 차, 그리고 커피와 마테

2023-04-26     홍소진

문명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우주 섭리의 지배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하늘을 섬기는 제천(祭天)의식은 인간에게 절대적이었다. 제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제물은 거룩하고 청정하고 신성해야 했으며, 기쁜 마음으로 바쳐야 했다. 

살아 있는 제물을 직접 신에게 바치면 신들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공양의 희생물로 인간을 바치는 인신공양(人身供養)도 있었다. 이는 잉카·고대이집트·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이란·인도·그리스·로마·중국 등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 볼 수 있었던 풍습이며, 수렵과 유목의 시대를 거쳐 농경시대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방법과 목적이 다양해 일정하지는 않지만, 제천은 집단 성원의 안녕과 동식물의 증식을 기원하는 종교적 행위였다. 

신과 사람의 관계가 확립되면서 다양한 공양물이 등장한다. 이러한 공양물들은 지역·문화적인 특징을 반영하며, 종교와 문화의 상호작용을 잘 보여준다. 기호품으로 인식되는 술, 차, 마테도 공양품 중 하나였다. 제수품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커피 역시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기마형(騎馬形) 주전자.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신의 음료, 술

‘술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술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중 ‘원숭이가 과일로 만들어진 천연 과일주를 우연히 발견했고, 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인간이 과일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천연 과일주는 과일에 함유된 당분이 자연에 존재하는 효모와 만나 발효된 술이다. 술(에틸알코올ethylalcohol, 에탄올ethanol)은 알코올 성분이 1% 이상 들어있는 모든 기호음료를 총칭하며, 마시면 취하는 기능성 발효식품이다. 주성분이 주정(酒精, 에탄올)인 술은 당질(糖質)의 성격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술이 만들어지는 원리나 과정은 거의 같으며, 양조의 목적은 ‘신을 위한 음식으로 마련된다’는 것이 동서양의 공통된 인식이다. 

인간은 가장 정수(精髓)인 술을 빚어 신에게 바치고, 음복으로 나눠 마심으로써 신과 소통한다고 믿었다. 제단의 맨 앞자리에 술을 놓고, 의식의 첫 순서로 바치는 것만 봐도 술이 신을 위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 전해오는 술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자. 

중국에서 술을 처음 빚은 사람은 의적(儀狄)과 두강(杜康)이다. 중국 신화와 전설 속에서 술은 신성한 음료로 여겨져 신께 바쳐졌고, 심지어 술에 몹시 취한 상태인 명정(酩酊)을 신성한 상태로 보았다. 

인도에서 제수품으로 쓰이는 소마(Soma)는 성화(聖火) 앞에서 행해지는 힌두교 의식인 야즈나를 지낼 때 올리는 술이다. 소마는 브라만 계층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하고 영생을 주는 액체로 신봉받았다. 소마 풀을 짜서 만든 술이라고 전해지지만, 소마 풀이 어떤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반도에서도 신석기시대 이후 농업이 보급되면서 제천의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철기시대부터 제천은 국가 행사로 치러졌고,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은 최고 신분을 가진 왕이 맡았다. 국가 행사에 걸맞은 절차를 만든 뒤, 온 백성이 참여하는 의식으로 성대하게 치렀다. 한민족의 시조 단군은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참성단을 마련했다. 참성단은 오래전부터 유명한 사적지였지만, 제물(祭物)에 대한 기록은 아쉽게도 없다. 

중국 역대 정사(正史)의 외국 열전에서 한반도를 언급한 것은 『사기』나 『한서』의 「조선전」, 진수(陣壽, 233~297)가 쓴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 등이다. 이 중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는 부여의 영고(迎鼓)를 비롯한 제천의례,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과 삼한의 천군(天君)·소도(蘇塗)와 농경의례 등의 내용이 수록됐고, 이는 한국 고대의 민속종교나 마을신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다. 

중국의 상나라(商, 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046년) 시대 청동 술잔. 상나라 초기부터 나타나며, 무덤에서 출토된 제례 물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부여의 제천 행사인 영고(迎鼓)는 ‘천신을 맞이하는 영(迎)’, ‘북을 두드리는 고(鼓)’라는 ‘맞이 굿’ 형태로 진행됐다. 영고가 『후한서』에서는 납월(臘月)로, 『삼국지』에서는 은정월(殷正月)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12월로 같은 달이다. 여기 납월에서 납(臘)은 사냥한다는 의미의 렵(獵)과 통하는 말로 음력 12월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부여의 지리적 특징을 고려하면 이 제의가 추수 감사제 성격의 농경의례라기보다 수렵 의례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수물로 산짐승, 들짐승, 날짐승들을 사냥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구려의 동맹(東盟)과, ‘하늘을 향해 춤춘다’는 동예의 무천(舞天)은 추수한 햇곡식과 술을 제수물로 하며 10월에 제사를 지냈다. 삼한에서는 곡식의 씨를 뿌리고 난 후인 5월과 가을걷이가 끝난 10월에 각각 제천 행사를 열었다. 

제천 행사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여러 날에 걸쳐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노는데, 이는 단순한 오락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신을 즐겁게 하는 의식이었고 구성원 모두가 소통하는 자리였다. 고대 국가들은 제천 행사로 풍년을 기원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단결력을 강화했다. 국민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는 전통사회의 축제로, 요즘 만연하는 음주 가무와는 차원이 다른 정신적인 영역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술은 오랜 역사를 가진 종교의례로서 각종 의식의 필수품이었다. 관례·혼례·상례 등의 의례에는 반드시 술이 나오고, 의식 끝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함께 술을 마시며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뭉쳐주는 힘과 역할을 기대했다. 요즘에도 술은 제수품의 으뜸이다. 

삼국시대 녹유잔과 받침(보물). 도기로 만든 잔이다. 녹유(綠釉)는 표면에 녹색과 청색을 내는 유약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구려 고분 각저총(角低塚) 벽화에 표현된 차 문화(모사도). 앉아 있는 주인공 옆으로 주전자가 보인다. 사진 ICOMOS 한국위원회 
고구려 고분 각저총(角低塚) 벽화에 표현된 차 문화(모사도). 찻잔이 놓인 차탁을 두고 두 명의 부인이 무릎 꿇고 앉아 있다. 사진 ICOMOS 한국위원회 

 

신성한 음료, 차

중국에서는 약초의 달인이었던 신농(神農)이 찻잎을 해독약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신화가 전해온다. 이로부터 차는 약용으로, 음식으로, 기호음료로, 수행의 매체로, 소통의 매개체로서 일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차가 제수품으로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최초의 기록은 서기 5세기 말 『남제서(南齊書)』 「무제기(武帝紀)」의 ‘유조(遺詔, 임금의 유언)’다. “살아 있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폐지하고, 떡・차・밥・술만을 바치도록 했다. 모든 사람은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이 제도에 따르게 됐다”고 기록돼 있다. 차가 매우 고귀하게 인식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보다 앞선 시기 『주례(周禮)』 「지관사도(地官司徒)」에는 “차를 다루는 부서에 24인을 두어, 국가 상사(喪事) 때 차를 올리는 의식을 담당하게 했다”고 기록됐다. 주나라 때 이미 의례에 필요한 차를 다루는 전문 기관을 설치했고, 차는 의례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품(祭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으로는 『삼국유사』 제2권 「가락국기(駕洛國紀)」가 있다. 문무왕은 즉위년 661년 3월, 자신이 김수로왕(金首露王, ?~199)의 16대 방손(傍孫)이므로 ‘수로왕의 묘를 종묘에 안치하고 제사를 계속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그리고 수로왕의 17대 후손 갱세(賡世) 급간(級干)에게 제전(祭田)을 주며 다시 제사를 지내게 했다. 차와 술・단술・떡・밥・과일 등의 제물로 매년 정월 초삼일과 초이렛날, 오월 오일과 팔월 초닷새와 보름날의 다섯 날을 제삿날로 정하고 그 후 330년 동안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기록을 보면 가야의 제의(祭儀)가 엄격한 규정을 지키며 계승됐고, 제물에는 차와 술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조에서는 “신라 때 미륵하생(彌勒下生) 신앙에 의해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했고,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조에서는 화엄사상에 의하여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했다”고 기록됐다. 

상고시대의 제천 행사는,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팔관회(八關會)로 계승됐다. 불교에서 공양은 공물(供物)과 결부된 의례였고, 공물은 음식, 의복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근간을 이뤘다. 공물을 보시(布施)하는 행위가 수반되면서 의례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생필품과 더불어 향・꽃・등(燈) 등은 의례를 장엄하는 기본 요소로 일찍부터 정착됐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가 시작됐을 때인 초기 교단의 공양 의식은, 동물을 공희(供犧)하는 바라문교와 달리 불살생(不殺生)의 철학을 실천하는 제의(祭儀) 형식으로 발전했다. 꽃을 바치고 등을 켜고 향을 피우며, 물과 음식 등을 바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후 불전에 향・등・꽃・과일・차・쌀의 육법공양(六法供養)을 올리는 것으로 정리되면서 의례는 더욱 정교해졌다. 

이렇듯 불교가 전래되고 활성화되면서, 차 문화도 성행해 차가 귀한 제수품이 됐다. 고려 왕실이 주관하는 공덕재(功德齋), 수륙재 등에서 왕은 몸소 차를 갈아 올렸다. 의례에서 ‘차를 올린다’는 상징성은 차에 대한 인식과 위상을 가늠하게 한다. 

화엄사 구층암 석탑 앞의 석등. 차를 공양하는 스님이 모셔져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화엄사 역시 차의 최초 시배지로 전해진다.

 

커피

차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기호음료인 커피는 회교승들의 수도용 음료로 시작됐다. 커피를 제수용으로 사용했다는 문헌은 없지만, 종교인들 에게서 탄생했다. 커피의 유래는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초원에서 산양을 몰던 목동에서 비롯됐다. 목동이 ‘기르던 산양이 어느 지점에 이르기만 하면 펄쩍펄쩍 뛰고 흥분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 가까운 수도원 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수도원장이 원인을 조사해 보니 한 식물의 열매를 먹은 탓임을 알고, 조심스럽게 자신도 열매를 끓여 마셔봤다. 그랬더니 졸음이 사라지고 형언할 수 없이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알려진 커피는 수도용 음료로 오랫동안 애음되다가, 오스만제국의 아라비아 침략을 계기로 세상에 전해졌다 한다.

유럽인들은 커피를 이교도들이 마시는 음료로 여겨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뒤 일반 지도층에게도 확산되자, 가톨릭 개혁 시대의 마지막 교황 클레멘스 8세(재위 1592~1605)는 “커피를 가져오너라. 내가 마셔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커피를 처음 맛본 교황은 침묵 속에서 충분히 음미한 후 기운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악마의 음료가 이렇게 훌륭한가! 이런 음료를 이교도들만 즐겼다는 것은 차라리 애석한 일이다. 내가 커피에 세례를 주어 기독교인의 음료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할 터이니, 앞으로는 커피 박해를 금하여라.”

이처럼 커피는 종교 속에서 일반 대중에게 알려졌고, 커피하우스(17세기 유럽에 커피가 전래된 이후 유럽 각국에 생긴 커피점)는 지식인, 정치가들의 집회소 또는 토론장으로 애용되며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많이 했다. 

 

마테

잉카 문명의 종교의식에는 마테(Mate, Paraguaytea)가 사용됐다. 마테는 남아메리카의 파라과이·브라질·페루 등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마테 잎에는  2% 내외의 카페인 성분이 있고 타닌·수지(樹脂) 및 약간의 정유(精油)가 있어 향기가 난다.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표하는 제사에도 마테를 사용했다. 고대 인디언이 제사에 쓰거나 마시던, 환각 성분이 들어 있는 음료도 마테였다. 기원전 600년에서 100년 사이의 제사장들은 예언가와 점술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환각제를 사용하곤 했다. 마법사와 주술의는 예언자였으며, 질병을 주는 동시에 치료하는 사람으로 환각제를 썼는데 마테차를 사용한 것이다. 마테는 커피·차·코코아 다음으로 중요한 음료로서 주로 남아메리카에서 사용했으나 아시아와 유럽까지는 보급되지 못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공양물들이 현대에서는 기호품으로 대우된다. 가장 신성하고 귀한 음식물로 여겨져 공양물이 됐고, 인간에게도 이로운 물질이라서 긴 세월을 걸쳐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러한 공양물 중 술은 백약지장(百藥之長)이면서 백독지원(百毒之原)이다. 즉 백 가지 약과 독의 근원이라는 양면을 갖는다. 

불교의 ‘오계(五戒)’ 중 불음주(不飮酒)가 있다. 그런데 불가에서는 술을 반야탕(般若湯), 지수(智水, 지혜로운 물)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모든 물건은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문제이지,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종교와 국가 의례에서 사용된 공양물들이 현대에서 기호품이 된 것은 그들이 가진 역사와 문화적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보존하며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적인 소비문화와 함께 과거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다양한 문화를 교류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문화 교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문화 국가로 성장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홍소진
문학박사. 한국차문화연구소, 소연재 다주(茶酒)문화 연구소 소장, 한국 차문화학회 부회장, 국제 차문화과학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 목포대 국제 차문화과학과 대학원에 출강하며, 소통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풍류인들과 넓게 소통하며 깊은 우정을 키우기 위해 ‘다주(茶酒) 놀이방’을 마련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