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이 꿈꾼 삼국유사 비슬산] 왕건이 숨어든 앞산

2023-03-28     송희원

대구시 북쪽에 팔공산이 있다면, 남쪽에는 비슬산과 앞산이 있다. 『대구읍지』(1832)에는 앞산이 ‘성불산(成佛山)’으로 표기돼 있다. 지금은 대구의 앞쪽에 있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앞산’이란 이름으로 굳어졌다. 

비슬산 북쪽에 있는 659m 높이의 앞산은 도심에서 4.5km 거리라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다. 또한 계곡별로 등산로가 잘 정비돼 대구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산림휴양공간이자 도시자연공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앞산은 이처럼 수려한 자연환경뿐 아니라 고려 태조 왕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는 사찰과 유적지 등 역사·문화적인 볼거리도 풍부한 곳이다. 왕건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은적사, 왕굴, 안일사, 임휴사를 품고 있는 앞산을 만나보자.

 

왕건이 퇴각하며 목숨을 보전하다

927년(태조 10)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 사이에서 벌어진 공산(동수)전투에서 대패한 왕건은 견훤군을 피해 긴 퇴로에 나선다. 왕건이 목숨을 걸고 퇴각한 길은 팔공산 기슭에서 앞산까지 이어진다. 

왕건은 공산전투 패배 후 살내(동화천 하류)에서 작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다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이후 파군재에서 후백제군에게 대패한 후 충신 신숭겸, 김락 장군을 잃는다. 겨우 몸만 빠져나온 그는 왕산으로 잠시 몸을 피한 뒤, 염불암 일인석과 봉무동 독좌암에 홀로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후 불로동, 시량이마을을 지나 초례봉, 안심, 반야월을 지난 뒤 금호강을 건너 앞산에 이른다. 

왕건은 앞산에서 가장 먼저 큰골에 있는 은적골(은적사)로 숨어든다. 이후 왕건이 앞산에서 첫 번째로 들른 사찰이 안지랑골의 안일암(안일사)이다. 하지만 일대에 있던 견훤의 군대가 알게 되고, 왕건은 안일암에서 500m 위에 있는 왕굴로 피신한다. 발각되지 않고 운 좋게 위기를 무사히 넘긴 왕건은 앞산 남사면에 있는 달비골 임휴사로 도망친 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앞산 왕건 코스

앞산에서 왕건의 전설이 얽힌 사찰과 유적지를 모두 방문하는 추천 등산 코스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큰골의 은적사를 먼저 간 뒤 케이블카를 타고 15분 정도 오른 다음, 왼쪽 출구로 나가 정상에 간 뒤 안지랑골로 내려와 왕굴과 안일사를 차례로 들르는 코스. 두 번째는 안지랑골 입구에서 안일사와 왕굴을 거쳐 앞산 전망대까지 1시간가량 등산한 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은적사를 들르는 코스다.

 

은적사

은적사는 926년 신라 경애왕 3년에 창건된 절이다. 왕건은 견훤군을 피해 현재 은적사 대웅전 우측의 대나무 숲속에 있는 자연 동굴에 숨어 3일간 머물렀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숨어 있으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그 굴이 있는 곳에 당시의 영조대사에게 명해 숨은 은(隱), 자취 적(跡) 자를 붙여 은적사라는 절을 짓게 했다. 경내에는 대웅전, 요사채, 삼성각이 들어서 있으며, 대구시 유형문화재 목조석가여래좌상이 있다. 

대구 남구 앞산순환로 574-120 
053)653–1572

은적사
은적사 왕건이 머물렀던 동굴

 

왕굴

왕건이 동굴 속에 숨어 있을 때 그를 쫓는 견훤군이 근처에 이르자 운해가 가득 차고 동굴 입구에 거미줄이 쳐져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다고 한다. 왕이 머물렀던 동굴이라고 해서 왕굴(王窟)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굴

 

안일사

동화사의 말사로 927년 신라 경순왕 1년에 왕건의 명으로 영조대사가 창건했다. 왕건이 이곳에서 3개월 동안 편안하게 있었다 해서 편안할 안(安), 평안할 일(逸) 자를 사용해 안일암으로 불렀다. 3·1 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용성 스님이 사찰을 중창하고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등 일제 강점기하에 항일운동의 중심이 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웅전과 삼성각, 범종루, 해탈문, 요사채 등이 있고 대구시 유형문화재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절 위 500m 지점에 왕굴이 있다. 

대구 남구 앞산순환로 440 
053)655-0225

안일사

 

임휴사

동화사의 말사로 921년 신라 경명왕 5년 영조대사가 창건했다. 왕건이 잠시 쉬어간 절이라 해서 임휴사(臨休寺)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조선 후기인 1811년 순조 11년에 중창했다. 2004년 화재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2008년 새로 지었다. 관음기도처로 유명한 사찰이다. 군사를 잃고 쫓기는 신세이던 왕건도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구 달서구 앞산순환로 12-25
053)632-4844

임휴사 사진. 유동영

 

글·사진. 송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