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이 꿈꾼 삼국유사 비슬산] 포토에세이

검은 바람 비슬산의 정수 대견사 삼층석탑

2023-03-28     유동영

작년 가을 팔공산을 오르내리며 앞산에서 남쪽으로 있는 비슬산을 본 게 전부였다. 비슬산을 왜 육산(흙산)이자 어머니 산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대구에서는 어머니 산인 비슬산이 남동쪽에 있는 창녕이나 청도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도 궁금했다. 3월에 봄 옷차림으로 오르는 대견사 새벽바람은 한겨울처럼 매서웠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아침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오르내린 약 일주일 동안 하루도 손이 얼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런 도량인데 성지순례를 떠날 때는 젊은 신도 200여 명이 모인다고 한다. 10년째 도량을 지키고 있는 대견사 주지 법희 스님은 나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 불교의 역할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사진은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여러 날 찍은 것들을 새벽부터 해진 뒤까지 시간 순서로 배열했다. 

비슬은 힌두의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유지시키는 비슈누에서 온 것으로도 볼 수 있어요. 비슬산이 어머니 산인 것은, 목·화·토·금·수를 모두 가지고 있어서예요. ‘목(木)’은 나문데, 산에 나무가 많잖아요. 화는 불기운인데, 저 아래서 대견봉이나 관기봉 등을 보면 뾰족하게 솟아서 양쪽에 점만 찍으면 ‘화(火)’ 자가 돼요. ‘수(水)’는 물, 저 위에 천왕봉과 월광봉 사이 참꽃 군락지에 올라가면 아래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요. ‘금(金)’은 쇠인데, 여기 화강암에는 철분이 많아서 낙뢰가 잘 떨어져요. 저기 강우 레이더 피뢰침이 빨아들여서 지금은 없어졌지만요. ‘토(土)’는 흙, 여기서 보면 온통 바위만 있는 것 같지만 용문사가 있는 북쪽으로 가면 흙도 많아요. 비슬산이 별것 아닌 거 같은데 1,100고지에 다 갖추고 있어요. 

처음 오니까 동네 인심이 흉흉하더라고요. 현풍·청도·창녕 이쪽 남자들이 일제 강점기 때 징용에 많이 끌려가기도 하고 ‘검을 현(玄)’ 자를 쓰니까 터가 세다고. 그런데 우리 불교에서 북쪽은 우주이고, 부처님 진신 자리잖아요. 사천왕 자리를 잡을 때 동서남북이 아니라 북동남서잖아요. 북의 다문천왕이 가장 앞이죠. 그러니 현풍(玄風)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불어오는 자리, 곧 법음이 울리는 자리죠. 그래서 부처님께 음성 공양을 올리는 대견사 남성중창·여성중창 합창단 이름도 ‘비파앙상블’이에요. 대구 이쪽으로는 비슬산이 높은 데다 낙동강이 흐르고 너른 들판이 있는데, 청도나 창녕 쪽으로는 겹겹이 산들이 즐비하죠. 그나마 용천사 계곡 아래로는 들판도 넓고 완만해서 집들이 좀 있지만, 옛날이라면 다른 곳들은 사람 사는 게 녹록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법화경을 가지고 기도를 하면서 가피를 많이 받았어요. 들리는 말로는 여기로 기도 다니는 신도님들도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해요. 부정 탈까 봐 말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예전에는 신행 단체 분들이 저 밑에서부터 물을 길어다가 밥을 먹고 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이 늘 부족했지. 법화경 철야기도를 하다가 잠시 방에 와 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누런 황룡이 똬리를 트는데 꼬리가 저 삼층석탑에 있어요. 머리는 없고 월광봉 쪽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참 신기하다 했죠. 기도하던 우리 현수 스님도 그날 묘한 것을 봤다고도 하고요. 그러다 며칠 뒤에 샘 파는 분이 와서는 “꿈속에 대견사에 허연 할배가 나와가지고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샘을 팠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나온 거죠. 꿈에서 본 자리랑 한 2m나 차이가 날까 그래요.

올라온 지 한 6개월이나 됐을 때예요. 하루는 도량석을 도는데 삼층석탑 앞에 사람 그림자가 열 개 스무 개 나열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그만 꼬꾸라졌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내가 움직이는 거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였고, 상이 여러 개로 보이는 거는 아래서 올라오던 구름에 투영이 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삼층석탑 앞에 걸려 있는 구름을 한 조각 떼어서 백설기를 공양 올리고, 천천수 위에 걸려 있는 달그림자 가장자리를 저며서 온갖 진수를 올리오니, 세존 부처님이시여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와 인연이 있는 모든 조상 영가님들까지도 배고픔과 허기짐을 영원히 끊기를 빕니다. 하면서 신도분들에게 기도를 하게 했어요.

 물이 나오면 무조건 내 마음이라고 생각해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물이 흔들리는 것과 같다. 행복이라는 거는 혜(慧)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혜 증득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지혜의 행복은 달로 표현한다. 달은 천천수 우리 우물 위에 옛날 엄마들이 정화수 떠 놓고 그 안에 달이 비칠 때 우리 아들 되겠다 하지 않느냐. 그게 명경같이 깨끗해야 지혜의 달이 비추지. 그런데 가장자리냐 하면, 가장자리를 올리는 거는 불경스러운 일이긴 한데, 우리 중생이 그것마저도 자양분 삼을 수 있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어떤 쓰레기 더미도 영양분으로 삼아서 연꽃을 피울 수 있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죠.

한 2년 전쯤부터 삼보회원을 모집해요. 현재는 200가족이 동참했는데 300가족이 목표예요. 한 가족당 매달 5만 원씩 보시하면, 300가족이면 대견사 운영비가 돼요. 스님도 두 분 더 모셔도 되고요. 현재 신행 단체는 30개쯤인데, 한 모임당 15명이 안 되게 해요. 그 수를 넘기면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여기 바위가 많으니까 무당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쫓아내지는 않고 각 전각을 돌면서 삼배하고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게 하니까 어지럽히거나 막걸리를 따르지는 않는 거죠. 이번 소임을 마치면 더 살지는 못할 것 같고, 신도님들 오가고 하는데 운전해 드리고 먼저 절하고 하면서 살아야죠. 여기서 그렇게 산 덕분인지 5년 산다고 하던 게 벌써 10년이 넘었고, 지금은 몸무게도 많이 늘었어요. 아픈 것도 없고. 나는 대견사가 비슬산의 중심이라고 봐요. 좌로 관기봉, 우로 천왕봉, 그 가운데 대견사가 있잖아요.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