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수행 공동체, 실상사] 실상사 밖 다른 공동체

“공동체로 사는 것은 어렵지만, 소중하다”

2022-12-27     최세현

전국 곳곳에는 실상사 공동체처럼 삶의 문제를 함께 모색하고 해결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가꾸는 한편, 주변 마을과 지역공동체도 함께 가꾼다. 이런 작은 공동체들이 전국에 20여 곳 있다. 모두 ‘작은 공동체들이 많아졌을 때, 이 시대가 당면한 문제인 기후위기, 기후재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공동체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이 소비문명시대를 넘어 탈성장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2022년 8월, 지역도 활동도 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뜻을 가진 10여 개의 공동체 활동가들이 ‘지리산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실상사에 모였다. 모두 공동체가 세상의 희망이 되길 꿈꾸는 작은 공동체들이다. 

이런 공동체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바라며, 지리산소풍에 모인 10여 개의 작은 공동체를 소개한다.

 

신앙 중심의 공동체

지리산소풍에 불교 수행공동체로 ‘정토회’와 ‘행복한마을’이 참석했다.

정토회는 30여 년 역사의 전국적인 수행공동체다. 법륜 스님을 지도법사로 ‘즉문즉설’, ‘에코붓다’, ‘평화재단’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행복한 삶 살기, 단순하고 소박한 삶 지향하기,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는 환경활동,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복지활동,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는 활동을 한다. 

행복한마을은 거창에 소재하며, 명상과 생활, 자족경제, 사회적 기능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삶과 명상이 일치하는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는 마을을 추구한다. 육바라밀의 삶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공공생활’이라고 하며, ‘의식주공을 책임지는 삶’으로 정의한다. 이를 위해 ‘나랑명상센터’, 채식식당 ‘베지나랑’, 채식커뮤니티 ‘공양간’, 공동주거와 주거커뮤니티로 ‘휴심정·심검당’을 운영한다. 이러한 공동 수행공간 및 주거공간을 기반으로 자립 경제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힘쓰며 알찬 공동체 생활을 하는 중이다.

‘예수살이공동체’와 ‘산위의마을’도 참석했다.

예수살이공동체는 1998년 설립된 가톨릭 신앙인들의 공동체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의 정신을 실행하려 한다. 이를 위해 도시 생활의 ‘대안 운동’과 농촌 생활의 ‘공동체 마을’ 두 방향을 추구한다. 

농촌 생활 공동체 마을인 산위의마을은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에서 이름을 따온 충북 단양에 있는 공동체다. 신앙 활동 못지않게 축산과 유기농업 활동에 힘쓰며, 무소유의 삶을 통해 ‘예수살이’ 영성을 실천하고 있다. 

 

교육 중심의 공동체 

실상사에 ‘실상사 작은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듯, 학교와 교육을 중심으로 마을을 가꾸는 작은 공동체들도 있다. 제천의 ‘간디공동체’와 순천의 ‘사랑어린마을배움터’, 양산의 ‘생명평화덕계마을’이다. 

간디공동체는 제천 간디학교가 중심이 돼, 제천 덕산면 일대에서 마을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생명·평화 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활약하는 공동체다.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외에도 지역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누리꿈터’, 지속가능한 마을을 꿈꾸는 주민 모임 ‘마실’을 운영한다. 지역사회에 활력을 주기 위한 마을기업을 만들어 마을여행사, 마을공방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간디교육문화센터 개소를 통한 마을공동체 거점 공간을 운영 중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랑어린마을배움터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정신을 지향하고, 아이에서 노인까지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법을 나눈다. 초중등 과정을 총괄하는 9학년제 사랑어린학교, 청소년 고등 과정의 사랑어린마을인생학교, 사립공공 관옥나무도서관, 마을문화예술공간 순천(順天)판, 청년공동체 마을인생협동조합 등으로 활동하며, 현재 50여 가구가 마을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생명평화덕계마을은 경남 양산 구도심의 시골 마을이다. 마을 안에는 초등 대안학교 꽃피는학교와 중등 대안학교 밝은덕중학교가 있다. 학교라는 공간을 넘어 마을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삶을 나누고 배움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 마을카페, 마을방송국, 마을공방, 마을책방 등 다양한 마을 거점에서 배움과 경험을 통해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농사 중심의 공동체

지리산소풍에 참석한 많은 공동체가 농촌을 기반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로 변산공동체가 있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였던 윤구병 선생이 1995년 2월 ‘실험학교 변산공동체학교’로 시작한 공동체다.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라는 교육 철학으로 ‘아무것도 버릴 것 없고 아무도 버림받지 않는 삶터 만들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는 15명 안팎의 식구들이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리산소풍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농촌지역 공동체 중, 역사가 깊고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홍성공동체도 있다. 60년 역사의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유기농업과 축산으로 순환농업을 하고, 지역사회와 학교가 함께 만드는 마을을 모토로 한다. 홍성공동체는 협동조합 마을조직 등이 50여 개나 되는 협동과 협력의 네트워크로 이뤄진 마을이다. 씨앗도서관, 청년농장, 어린이집, 만화방, 지역아동센터, 신협, 의료생협 등 작은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온갖 활동을 한다. 현재까지도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마을활동가들이 애쓰고 있다.

 

도시 기반의 공동체 

도시에서도 마을공동체를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70여 개의 커뮤니티가 네트워크를 형성한 성미산마을이다. 1994년 전국 최초로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성미산 개발에 대한 주민 반대 활동과 투쟁의 경험 과정에서 이웃과 마을 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이를 계기로 마을 활동에 필요한 여러 커뮤니티가 활성화됐다. 현재는 더욱 다양해지고 넓어진 연결망으로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밝은누리 공동체는 도시 마을과 농촌 마을을 서로 살리는 공동체다. 서울 강북구 인수마을에서는 어린이집, 마을배움터, 마을카페, 마을서원, 마을공방, 마을밥상 등을 운영한다. 이 지역에는 서로를 돌보는 150여 명의 공동체 식구들이 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밝은누리에는 생동중학교와 고등·대학 통합 과정인 삼일학림을 중심으로, 100여 명의 공동체 식구들이 산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밥을 나누고, 함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농도공생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지리산소풍 2박 3일 풍경

신기하게도 10여 개의 작은 공동체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공동체 방식으로 살아가고, 공동체 밖의 세상을 가꾸는 점은 모두 같다. 이들이 지리산소풍에 모인 이유는 ‘길지 않은 공동체 운동의 역사 속에서, 굳게 공동체를 지켜와 준 서로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1년 중 2박 3일 정도는 실상사 툇마루에 모여 앉아, 편히 쉬면서 서로 격려하고, 희망을 나눴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리산소풍을 열었다. 지리산을 품고 있고, 사부대중 공동체와 산내지역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는 실상사라는 곳이 전국의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이 모이기에 걸맞은 곳이기도 했다. 

1일 차 야단법석은 도법 스님의 여는 말씀으로 시작했다. “공동체살이가 힘든 것은 우리가 공동체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그동안 배우지 않아서”라며 “힘들더라도 공동체로 살겠다고 마음을 낸 사람들이니, 희망이자 대안은 ‘공동체’라는 것을 널리 잘 알려 달라”고 말했다. 이어 마을활동가 80여 명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2일 차는 지리산과 산내마을, 실상사 공동체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전국의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은 실상사와 산내마을에 흩어져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여유와 쉼을 가진 마을 활동가들의 얼굴을 보니, 어제보다 더 맑고 밝아 보였다. 3일 차에 이르러, 그동안 함께 먹고 놀았던 시간만큼이나 공동체 활동가들이 언니, 누나, 형, 동생같이 느껴졌다. 마지막 일정으로 진행된, 두 번째 야단법석 시간에는 ‘마을공동체에서 희망 찾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희망뿐만 아니라 힘든 점도 자연스레 이야기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됐다.  

마을공동체를 가꾸는 전국의 작은 공동체들이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사람들에게 먹거리와 잠자리를 내주던, 공동체 운동의 큰집인 실상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80여 명의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준 실상사 공동체의 큰 품에 감동했다. 

처음 작은 공동체들을 모아보자 했을 때, 사실 어떠한 결과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공동체로 살아가는 활동가들을 잘 모시자’는 게 전부였다. 2박 3일 동안 전국의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이 함께 먹고, 자고, 놀면서 ‘공동체로 사는 것은 어렵지만, 소중하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했다. 나중에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세상의 희망이 되기 위한 작은 공동체’들이 조금은 더 큰 공동체로 모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앞으로도 공동체를 가꾸는 사람들이 어려움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의기투합했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크게 소진되지 않고 행복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도 갖는다.  

 

최세현
현재 인드라망 사무처의 사무처장 소임을 맡고 있다. 함께 사는 재미와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공부하며, 대중들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