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수행 공동체, 실상사] 약사여래 10,000일 기도

또 다른 30년을 꿈꾼다

2022-12-27     김남수
실상사 주지 승묵 스님. 실상사로 다시 내려온 때가 2018년 1월. 실상사 공동체의 <전환과 모색>을 위해, 어떤 날은 ‘산문 폐쇄’라 할 정도로 종무소 문까지 닫고 논의에 집중했다. 
<약사여래 1,000일 기도> 중 마지막 ‘100일 기도 입재’(2022년 12월 10일).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라는 취지로 10,000일 기도를 준비하고 있다.

 

공동체 속 스님들

실상사 주지 소임을 맡은 승묵 스님은 ‘절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웃으며 서슴없이 말한다.

“실상사 스님들은 기본 30만 원, 소임 맡으면 70만 원을 얹어서 100만 원 보시를 드립니다. 도법 스님도 예외가 없습니다.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방사에 별도로 해우소를 두는 곳은, 템플스테이 수련관의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방사밖에 없어요.”

회주 도법 스님, 법인 스님, 각묵 스님, 새벽 도량을 깨우는 노스님 포함 12명의 스님이 함께한다. 백장암에서 동안거 수행하는 스님들까지 합하면 총 26명의 스님이 실상사 대중 스님이다. 

실상사에서 ‘화엄학림’을 마친 후 다시 내려온 스님, 실상사와 잠시 인연 맺은 ‘초기불전승가대학원’을 졸업한 스님도 있다. 실상사와 아무 인연이 없었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수행하다 오신 스님도 있다. 템플스테이를 내실 있게 지도하는 스님과 기도하는 스님도 있다. 

문중도, 살아온 궤적도 모두 다르지만 기꺼이 ‘사부대중의 수행공동체’라는 삶을 산다. 

스님들이야 익숙할지 몰라도, 밖에서 바라볼 때 실상사 스님들은 많이 내려놓으며 산다. 사중의 일을 논의하는 회의에서나, 공부하는 모임에서나 재가자들과 동등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농장 일도 함께 일구고, 공양간에 손길이 필요할 때도 함께한다. 취재 기간 중 실상사 소방 훈련이 있던 날, 누구보다 앞장서 훈련에 동참하는 스님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스님들만의 차담 시간이 있고, 가끔 백장암 안거에 입방한 스님들과 이야기도 나눈다. 

주지 승묵 스님이 실상사로 다시 내려온 때가 2018년 1월. 실상사 공동체의 <전환과 모색>을 위해, 어떤 날은 ‘산문 폐쇄’라 할 정도로 종무소 문까지 닫고 논의에 집중했다. 

“재가 활동가들도 일자리만 보고 여기에 내려온 것은 아니잖아요? 스님들은 ‘출가에서 열반까지’ 함께 공부하고 수행하는 사찰로 만들어 보자고 했죠.”

결론은 “실상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수행공동체”였다. 스님들은 출가에서 열반까지 ‘출가자다운 삶’을 지향하고, 실상사 공동체는 열반까지 삶을 회향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활동가들은 ‘주거와 먹는 것’, ‘공부와 수행’, ‘늙음과 죽음’을 함께하는 공동체의 삶을 목표로 했다. 

실상사 스님들의 차담 시간. 스님들이야 익숙할지 몰라도, 밖에서 바라볼 때 실상사 스님들은 많이 내려놓으며 산다. 사중의 일을 논의하는 회의에서나, 공부하는 모임에서나 재가자들과 동등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농장 일도 함께 일구고, 공양간에 손길이 필요할 때도 함께한다. 
스님들은 출가에서 열반까지 ‘출가자다운 삶’을 지향하고, 실상사 공동체는 삶을 아름답게 회향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주거와 먹는 것’, ‘공부와 수행’, ‘늙음과 죽음’을 함께하는 공동체의 삶을 목표로 한다. 

 

청년이 머물 수 있는 마을 

실상사 공동체가 목표로 하는 것 중 하나가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는 마을’이다. 실상사가 위치한 산내면만 하더라도 2,200명에 이르던 인구가 얼마 전 2,000명으로 줄었다. 실상사 공동체의 문을 두드리던 청년들은 ‘관심’은 많을지라도 정착하지 못했다. 앞선 세대의 귀농귀촌 인구는 도시에서 일군 작은 토대라도 있지만, 청년들은 그렇지 않다. 일단 머물 곳부터 찾기 힘들다. 실상사는 조만간 ‘새로운 삶과 문명’을 꿈꾸는 이들이 정착할 수 있는 주거와 마을을 세울 예정이다.

“실상사 공동체는 지난 20년이 넘는 공동체 활동 경험, 몇 년간의 내부 논의와 실천을 통해 ‘일과 수행이 함께하는 공동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사가 있는 마을은 오히려 사람이 줄고, 산내초등학교마저 몇 년 후면 입학생이 없게 될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마을과 세상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가?’라는 질문을 늘 던지죠. 불교는 어려울 때 결사를 실천하는 훌륭한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도 해보자 했죠.”

한편 귀농을 꿈꾸는 40대 중반 이상의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고민 중이다. 40~50대는 실상사가 진행한 귀농학교의 주요 인적 자원이었으며, ‘사회적 가치’를 어느 세대보다 고민했던 이들이다. 20~30년 이상 남은 이생의 삶에서 이들은 ‘공익적 가치를 실현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 중이다.

실상사 대중은 실상사의 실험이 불교와 사찰에 앞선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큰 도시에 있지 않고 시골 마을에 있는 사찰은 특히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종무원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 스님 한두 분이 어렵게 살림살이를 하는 경우도 흔해졌다. 또 건물은 많고 현대적이지만 시설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시골을 꿈꾸며 귀촌하는 인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찰은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반이 있기에, 실상사의 지난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상사는 짧게는 20여 년, 길게는 30년에 걸쳐 공동체 운동과 결사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항상 고민했던 것은 “마을은, 세상은 얼마나 변하고 있는가”다. 사회적으로는 마을공동체, 불교적으로는 사부대중의 수행공동체를 꿈꾼다.

 

10,000일의 서원

2022년 12월 10일, 실상사 스님, 활동가, 신도들은 약사전 앞에서 <약사여래 1,000일 기도> 중 마지막 ‘100일 기도 입재’ 법회를 했다. 2020년 1월 대중공사를 마칠 때쯤, 스님 한 분이 1,000일 기도를 시작하고자 했다. 내용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지만 ‘기도는 물론 결사도 하자’라는 마음에 시작한 것이 <약사여래 1,000일 기도>다. 실상사 공동체는 1,000일 회향으로 끝나지 않고, 10,000일 회향을 준비한다. 

실상사는 짧게는 20여 년, 길게는 30년에 걸친 공동체 운동, (굳이 불교식 단어를 꺼내자면) ‘결사’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항상 고민했던 것은 “마을은, 세상은 얼마나 변하고 있는가”다. 양극화로 치닫는 사회에서 실상사 공동체의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1,000일로 되겠어요? 적어도 10,000일은 돼야죠. 우리 세대에 이루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런 마을이 1,000개 정도 만들어지면 세상이 조금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지난 몇 년간의 논의와 1,000일 기도를 통해 세운 서원은 또 다른 10,000일을 준비하는 힘이 됐다. 2023년 2월부터는 3박 4일 과정의 ‘실상사 공동체 학교’도 운영할 예정이다. ‘귀농학교’, ‘인드라망대학’, ‘생명평화대학’을 통해 사회와 만나던 접점을 더 넓혀보고자 한다.
10,000일 회향은 2047년 11월 12일. 날짜를 미리 세어봤다. 스님과 활동가들이 도법 스님에게 날짜를 말하니 “내가 그때까지 있겠나?”라며 웃음을 보였다고. 승묵 스님은 “일과 수행을 함께하는 원을 세웠어요. 스님들과 활동가들의 보시금(급여)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싶은데 될까 모르겠네요”라며 내색하지는 않지만, 주지 소임으로서 원을 세운 것 같다. 

 

도시에서도 
실상사 공동체와 
함께하는 방법

 

1  약사여래 10,000일 기도
실상사는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라는 주제로 2020년부터 1,000일 기도를 해왔다. 앞으로 ‘일과 수행이 함께하는’ 수행공동체와 마을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2047년까지 10,000일 기도를 진행한다. 뜻을 모으면 길이 생기는 법. 함께하는 분들에게는 스님들이 축원과 기도를 해주며, 실상사 공동체의 소식을 함께 공유한다.

 

2  실상사농장 펀드
실상사 농장에서는 생명평화 철학을 기반으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수확한 유기농 쌀과 채소는 실상사 공동체와 작은학교 학생들의 먹거리가 된다. 꼭 실상사 공동체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매년 초 모집하는 ‘실상사농장 펀드’에 가입하면, 가을 추수 즈음에 ‘실상사 농장표’ 신선한 유기농 식품들을 집으로 받아볼 수 있다.

 

3  실상사 템플스테이
실상사에 머물 때, 가장 큰 혜택은 멀리 바라다보이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의 멋진 풍광이다. 보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과 분노가 사라지는 황홀함을 맛볼 수 있다. 휴식형으로 ‘지리산의 아침, 실상사’를 진행하며, 더 깊이 실상사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꿈깨는 인생학교’, ‘내 인생의 3박 4일’ 프로그램에 참여하자. 여름·겨울마다 깊이 있는 불교 공부를 하기 위한 ‘배움의 숲’도 진행한다.

 

4  후원 회원 
후원 회원으로 가입하면 실상사 스님들의 법문, 인생에 도움되는 문장, 아름다운 경전 말씀을 매일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다. 

 

문의 전화 : 063-636-3031 
실상사 홈페이지 : www.silsangsa.or.kr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