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수행 공동체, 실상사] 오래된 미래 사부대중 공동체

“미래의 붓다는 공동체로 온다”

2022-12-27     정웅기

6년 동안의 실상사 공동체살이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막연했던 꿈이 조금씩 실현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실상사를 넘어, 불교의 미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실상사 대중 또한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 실상사는 가난한 절이다. 50여 명의 대중이 아주 적은 보시금(월급)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동시에 실상사는 부자 절이다. 사람 부자, 마음 부자, 꿈 부자다. 실상사 대중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무엇에 좌절하고 절망하는지, 나아가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사찰, 어떤 불교,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지 소개하는 마음으로 몇 자 나눠본다. 

 

인간관계와 갈등

공동체살이 6년 동안 배운 것이 몇 가지 있다. 타인과 관계 맺는 일의 어려움을, 또 한편 그만큼의 소중함도 종종 느낀다. 좋은 인간관계는 세련된 기술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당신에게 좋은 친구가 되겠다’라는 확실한 마음가짐, 세계관의 전환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됐다. 

불교에서 이상적인 관계는 ‘도반’이다. 붓다는 제자들을 ‘같은 길을 걷는 친구 사이’로 대했다. 스스로 스승이나 지도자로 칭하지 않았고, 구성원들과 평등하게 어울려 살았다. 붓다가 코삼비 비구들의 분쟁을 피해 아나율 존자 일행이 머무르는 숲을 찾았을 때, 화목하게 서로 보살피며 탁마하는 광경을 보며 설한 것이 ‘육화경’이다. 몸, 말, 마음, 견해, 이익, 규칙 등 화합의 여섯 가지 원리를 담고 있다. 오늘날 적용해도 손색없는 가르침이다. 제대로 된 화합은 구성원들이 평등한 도반 관계로 맺어졌을 때 가능하다. 스승과 제자, 지도와 피지도, 명령과 복종의 이분법적 관계로는 한계에 봉착한다. 실상사 사부대중은 서로에게 도반이 되기 위해 애쓴다. 재가자와 출가자가 서로 존중하고, 소임자들은 대중의 뜻을 모으기 위해 자주 묻는다. 그 바탕에는 서로가 도반이라는 믿음이 자리한다. 작은 오두막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도 따뜻한 온기가 넘쳐나면, 그곳을 찾은 이에게도 좋은 기운,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반대로 같이 사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책임과 의무, 딱딱한 규율만 있는 곳이라면, 화려한 집에서 풍족하게 살아도 냉랭하고 불편하다. 누구도 다시 찾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삶의 터전인 사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는 어떠한가?’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진리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들이 모여 사는 따뜻하고 화목한 곳인가? 아니면 세파에 물든 딱딱하고 차가운 곳인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 크고 작은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관계가 괜찮을 때는 잘 모르지만, 어떤 일로 갈등이 생기면 대개 두 가지 편향으로 흐르기 쉽다. 하나는 갈등을 회피하는 경우고, 반대는 싸우자고 덤비는 경우다. 사소한 갈등도 조금만 방심하면 공동체를 낭떠러지의 양변으로 몰고 간다. ‘일상이 백척간두’라 했던 선사들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차이만 존중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규칙이나 질서를 촘촘히 짠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팩트와 감정, 둘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않고 사안을 평온하게 잘 드러내, 모두에게 이로운 진실과 향상의 길을 찾아야 한다. 화쟁적으로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공동체 안에 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갈등이 꼭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갈등이 계기가 되어 공동체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상사 공동체도 그랬다. 공동체 각 영역에서 기존의 관행과 변화 욕구들이 충돌하였을 때, ‘전환과 모색’이라는 길 찾기로 문제를 풀어냈고, 그때서야 갈등은 변화의 동력이 됐다. ‘차이와 갈등을 건강한 변화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가 공동체의 성패를 가늠 짓는 관건임을 알게 됐다. 

 

미래의 불교

그래도 어려운 것은 역시 사람의 문제다. 실상사 역시 신도들은 고령화되고, 미래 세대들은 안정적으로 충원되지 않고 있다. 어린이 법회도 하고 대안학교도 운영하지만, 공동체로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교구로 나가보니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젊은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가 불교와 만나는 창구’가 거의 소실됐다. 대도시 일부 사찰을 제외하고는 전국적 현상이 아닌가 싶은데, 이 하나의 현상에 오늘 한국불교의 현실과 구조적 문제가 압축되어 있다. 

절에는 왜 젊은이들이 없을까? 불교가 시대의 가치와 언어, 문화로 창조되지 못하고, 젊은이들의 삶 속을 파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다양한 실험을 해 왔고, 젊은 사람들과 접촉이 잦은 실상사조차 만만치 않다. 쉽고 명료한 불교 콘텐츠가 부족하고, 경험도 전문가도 부족하다. 살림을 유지하기 버거운 사찰 형편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 불교문화와 질서는 오늘을 사는 젊은이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들이다. 

안타깝게도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흐름은 불교계 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장의 기둥과 서까래는 언제 쓰러질까 위태위태한데, 비대한 중앙의 행정은 한가한 말의 성찬뿐이다. ‘효율-성장’이라는 철 지난 근대 논리로, 한정된 불교의 ‘인적-물적 자원’을 독과점하는 데 관심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가치와 사상의 측면에서 보면, 불교의 미래는 밝고 희망적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겪으며, 문명의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불교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근현대 문명을 지탱해 온 성장과 효율을 넘어 자연과의 공존과 회복, 개발보다는 상생, 소비보다는 나눔을 주목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 보려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모색되고 있다. 

최근에 실상사를 방문하거나 봉사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비슷한 배경이다. 실상사가 30년간 추구해 온 ‘단순 소박한 삶, 삶을 나누는 교육, 농사와 생태주의, 마을공동체, 공동체 민주주의의 경험’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불교의 진리뿐 아니라 ‘공동체의 운영과 전통’ 역시 인류의 오래된 미래이자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종종 느낀다. 

 

미래의 주체

불교공동체 안에 젊은 사람은 찾기 어렵고, 오히려 불교를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바깥세상의 흐름이 양립한다. 이 모순된 현실은 어떤 결과를 빚어낼까? 역사적으로 보면, 전환의 시기에 새로운 불교가 일어나 세상을 맞이했다. 대승불교와 선불교가 대표적이다. 기성 질서에 안주한 불교는 예외 없이 쇠락했다. 지금은 선불교도 고인 물이 돼 가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불교, 새로운 질서와 문화가 꿈틀해야 할 시기다. 몇 가지 기술적 보완만으로 위기를 헤쳐갈 수도 없다. 과거를 부정할 필요도 없고, 과거의 관행이나 질서에 매달릴 이유도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문제, 즉 주체의 문제다. ‘미래를 담지할 불교사적 주체는 누구인가?’와 같은 근원적 물음이 필요한 시기다. 불교는 누가 뭐래도 ‘출가의 종교’다. 붓다처럼 살고자 하는 이들은 출가하는 것이 2,700년의 불교 역사였다. 출가하기 전의 집은, 욕망을 바탕으로 한 기성 사회질서를 말한다. 그 시대는 집을 나서는 출가 자체가 역동적인 운동이었다. 출가 자체는 기존의 신분 질서와 성차별로부터 해방되는 길이었고, 촌락 중심의 완고한 사회질서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오늘날의 출가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구도라는 개인적 결단, 더불어 어떻게 사회적 의미와 역동성을 가질 수 있을까?

불교는 출가자만의 종교였을까? 붓다 당시부터 출가자는 재가자와 어우러져 살아야 했다. 출가자는 재가자에게 밥을 빌고,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법을 빌었다. 출·재가자가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 멀어졌을 때 불교는 쇠락했다. 불교공동체를 이끌던 출가자들이 자기들만의 성안에 갇혀 살았기 때문이고, 재가자들의 일상, 민중의 일상과 유리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란다대학, 비끌라마쉴라 대학은 출가자 수천 명이 사는 견고한 성이었지만, 한두 번의 외침으로 폐허가 됐다. 출·재가자가 신뢰하며 정법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같은 결과였을까?

불교의 주체는 사부대중 공동체이다. 이 주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마음을 모으는가’에 불교의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불교는 각자도생의 종교이면서, 공동체의 종교이기도 하다. 개인도 빛나고, 공동체도 빛났던 불교의 전통이 2,700년 법등을 이어온 원동력이다. 전환기에 접어든 지금, 개인과 공동체가 더불어 빛나는 길을 여는 것은 불교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오래된 미래 ‘사부대중 공동체’를 명실상부하게 가꿔가기 위해, 출가공동체가 짊어져 온 역사와 전통을 재가자는 존중해야 한다. 수행과 전법, 사찰 운영 등 여러 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책임 있는 자세로 참여해야 한다. 출가는 과거와 달리 출가공동체가 지식과 정보를 점유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재가자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참된 스승이자 겸허한 교사의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출가자도 재가자도 기성 질서에 얽매임 없이,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내 삶에서부터 만들어내야 한다. 그때서야 “미래의 붓다는 공동체로 온다”라는 말이 실현될 것이다. 

 

정웅기
실상사 공동체에서 함께하고 있으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운영위원장으로도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