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담실] 마음의 거울(面鏡)

열린 상담실

2007-09-17     관리자

이번 겨울은 예년에 비해 몹시 춥고 눈이 많이 왔다. 마침 절에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였는데, 첫날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이른 아침에 함박 쌓인 눈을 치우고 꽁꽁 언 손 으로 타 마시는 쑥차 한 잔의 향내가 온몸과 마음을 밑둥부터 따뜻하게 녹여준다.

과연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수가 없 다. 동안거(冬安居) 일주일 동안 아침은 굶고 점심과 저녁공양 또한 죽비소리에 맞추느라고 몇 숟가락 먹지 못했지만,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배가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노라니 부끄럽게도 삼매(三昧)에 빠지기 보다는 오히려 지 나간 날들의 상념(想念)이 순간순간 머리 속을 헤집고 지나간다. 문득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 라니, 지나간 일들이 마치 찻잔 속의 설탕처럼 현재의 삶 속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는 흠칫 놀라게 된다.

그런데 묘한 것은 과거의 느낌과 현재의 그것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마치 천하를 얻은 것과 같은 기쁨을 주었던 일들이 나중에는 오히려 회한(悔恨)의 그림자 가 되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가 하면, 괴로워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던 아픔이 지금에 와서는 즐겁고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초는 정말 암울한 시절이었다. 특히 그 시대의 가장 전면(前面)에 서야 했던 대학생에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으니 '80년 5월에는 드디어 광주사태가 일어 났고 전국의 대학은 기약없는 무기한의 휴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2년간의 휴 학 끝에 어렵게 복학을 해서 의과대학의 본과 일학년이 된 상태였다.

휴업조치가 내리던 날 부산의 광복동 거리에서 적십자가 그려진 헌혈차에 난생 처음으로 헌 혈을 하고, 짐을 꾸려서 통도사의 백련암(白蓮庵)으로 들어갔다. 짐이라고 해보았자 담요 한 자락뿐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책에 대한 욕심만은 버릴 수가 없어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서 수십 권의 책을 사들고 갔었다.

흔히 백련암 하면 성철 스님이 계셨던 해인사의 백련암을 떠올리겠지만 통도사에도 같은 이 름의 백련암이 있다. 통도사 입구에서 옆길을 따라서 한 4Km를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 데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당시 경봉(鏡峰) 스님이 주석하시던 극락암이 있고, 곧바로 4Km를 더 올라가면 거의 산 끝자락에 백련암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절의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절 바로 옆에 고시생을 위한 숙박시설을 둔 곳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허름한 방 한 칸을 얻어서 기거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속세 (?)에 두고온 친구들 생각에 무척 힘이 들었지만, 차츰 산 속의 새소리,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에 익숙해지니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극락암에 경봉 스님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한 번 만나 뵈어야 되겠다는 생 각을 불현 듯 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길을 물어서 극락암을 찾아갔 던 것이다.

그 당시 극락암은 하안거 중이엇던 모양이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도는 절마당을 돌 아서 뒤쪽 툇마루로 가니까. 웬 노승이 거의 운신을 못하고 혼자 누워 있었다. 눈은 휑하니 들어갔고 얼굴에는 저승꽃이 가득했는데 한눈에 경봉 스님임을 직감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경봉 스님께서는 89세의 노령에다가 기력이 쇠하셔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기척이 들리니까 고개를 돌리시더니 필자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 순간 스 님의 눈빛에서는 무엇이라고 형언 할 수 없는 신비감마저 느껴졌다.

당장 첫마디가 '니가 누고! 하신다. 그러면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시는 것이아닌가. 마음을 조이면서 스님 옆으로 다가앉으니까 갑자기 "면경을 가져오너라"라고 소리를 지르셨는데 필 자는 갑자기 어리둥절 해졌다. 당시 불교에 문외한이던 필자로서는 면경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던지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던 보살이 달려왔다. 필자가 면경을 가져 오라고 한다고 하니까, 이 보살은 명정(明正)으로 잘못 알아 듣고는 스님의 마지막 시자인 명정 스님을 불러왔다. 명정 스님이 달려오니까 "아니, 명정(明正)말고 면경(面鏡)을 가져오 란 말이다!" 하시면서 역정을 내시는 것이 아닌가. 문득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스님께서는 모처럼 힘겹게 찾아간 젊은이에게 중요한 선문답을 하셨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 말씀의 깊은 뜻을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세속적인 관심사 에 대해서 여쭈어보았더니 한마디로 잘라서 "나는 그런 것 모른다."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연히 마주친 경봉 스님과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 이후로 부처님의 세계에 조금씩 눈을 뜨면서 스님이 말씀하신 면경(面鏡)은 어느덧 내 마음 속의 화두가 되었다.

마침 아침 신문을 보니까 내일부터 다시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 자신의 마음속의 거울(面鏡)을 닦아서 난세(亂世)를 해결하는 지혜와 슬기를 길러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