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수행 공동체, 실상사] 깨달음의 공동체 탐방 ➋

“사람이 꿈을 꾸며 사는 곳이에요”

2022-12-27     불광미디어

공동체에서 삶을 꾸려가는 몇 분과 대화했다. 농촌 공동체에서 삶의 가치, 함께 나누고 때로는 갈등하는 공동체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 등을 주제로. 유일한 20대 활동가 한 명도 함께하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네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왜 실상사 공동체와 인연을 맺게 됐는지” 먼저 물었다.

자경(42) 2014년 인연. 여기서 남편을 만나 산내면에 있는 집에서 출퇴근한다

자경          
이곳에 오기 전,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였습니다. 1학년을 맡았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학교도 직장이잖아요? 적응하기 힘들었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죠. 조금만 더 있으면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아니면 내가 병이 날 것 같은 괴로움의 연속이었죠. 나를 변화시키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러면서 ‘농촌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졌죠. 지인이 남원에 있어서 실상사를 잠깐 다녀갔는데, 둘러보면서 ‘이상한 종교공동체는 아니네?’라고 생각했죠. 2년 과정의 인드라망대학에 입학했어요. 

범정(45) 2016년 인연. 인드라망대학을 나와 실상사에서 살고 있다. 

범정          
직장생활을 했는데, 조금 힘들더라고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한 ‘귀농학교’에 참여했어요. 그러면서 시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처음에는 ‘풀무학교’를 알아봤어요. 제 삶이 불교를 토대로 했기에 실상사하고 인연이 됐고, 인드라망대학 3기로 여기까지 왔네요.

세연정(41) 2015년에 다른 곳에서 귀농하다가 지금은 실상사에서 산다.

세연정          
춘천에 살았는데, 도법 스님이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실 때 춘천에서 강연을 듣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죠. 그때 하신 말씀이 인연이 돼 스님 책도 사 보고 인터넷으로 강연도 듣고 하면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왔어요. 저도 인드라망대학을 다녔어요.

슬우(39) 2020년 인연. 가톨릭 수도자를 꿈꾸었으며, 화림원에 거주 중이다.

슬우          
저는 가톨릭과 인연이 있었고, 수도자의 삶을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사회 경험이나 인간관계에 많이 힘들었어요.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죠? 그게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실패하고, 6개월 이상 방황하기도 했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삶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남원 근처로 귀촌을 준비하시다가 소개로 실상사하고 인연이 됐습니다. ‘꿈 깨는 인생학교’로 인연이 만들어졌고, 후에 생명평화대학을 마쳤습니다.

세 명은 인드라망대학, 한 명은 생명평화대학과 인연이 있었다. 모두 청년층을 대상으로 실상사에서 진행된 대안 교육기관이었다. 

누구나 귀농과 공동체의 꿈을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자기 삶을 투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교육생으로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삶을 살아봐야겠구나”라고 결심한 이유는 뭘까.

자경          
2년 과정을 마치고 ‘여기서 살겠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사실 엄청 무서웠어요. 겁나서 며칠 울기도 했어요. 학생으로 사는 것과 활동가로 사는 것은 또 다른 거잖아요? 여기 살면서 활동가들이 가치를 추구하는 한편, 때론 과로에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거든요(웃음). 지리산 어른들이 계신 것이 큰 힘이 됐어요. 도법 스님도 계시지만, 이남곡, 이병철, 오마리아 선생님 등. ‘저 연세에도 대안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구나’, ‘저렇게 실천할 수 있구나’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범정          
2년 공부를 마칠 때, 소임을 맡고 계신 스님께서 “템플스테이를 함께해보자”라는 제안을 하셨어요. 그렇게 실상사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리산을 만끽하며 자연과 벗하고 공부하는 이 삶이 정말 좋은 거예요. 다시 도시로 나가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습니다.

세연정          
도법 스님하고 인연 후, 휴가를 내서 스님 하시는 일에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법문을 할 때, ‘왜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라는 생각도 하고, 졸기도 많이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어요(웃음). 말씀보다는 가까이 뵈면서 사는 모습에 감동했던 것 같아요. 여기 오기 전, 시골 생활을 경험했어요. 귀농하신 분들이 잘해주시지만, 집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겁이 났어요. ‘여기는 안전하고 푸근하다’라는 느낌도 받았고, 비슷한 또래가 있어 대화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슬우          
여기서는 제가 어린 축에 속하지만, 사회에서는 적은 나이가 아니죠. 어느 날 도법 스님이 “노동과 자연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공양간에서, 농장에서 자원봉사로 일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생각에서인지 천왕문에서 다리 건너 입구까지 담배꽁초를 줍기 시작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많이 나고, 마음이 울컥했어요. ‘여기에 좀 더 머물고 싶고, 내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공동체는 ‘자기 삶을 내려놓는 삶’이기도 하다. 돈과 물질이 중심인 도시적 삶에서 벗어나야 하고,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다르게 변화시켜야 하는 곳이다. 또 필연적으로 갈등이 따르기 마련이다. 실상사 공동체도 크고 작은 사건이 있었다. “어떻게 갈등을 푸는지, 개인적으로 극복했는지”를 물었다.

자경          
2018년부터 1~2년은 많이 힘들었죠. 작은 사건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이질적 문화가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분은 여기를 떠나기도 했죠. 퇴근하고 집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내일 인사하고 떠날까?’, ‘실상사가 내 업장 소멸하는 곳인가?’ 생각하기도 했죠. 결국엔 ‘가장 힘들 때는 떠나지 말자, 가더라도 조금 괜찮아질 때 떠나자’라고 마음먹었죠. 그 난리 통에도 도법 스님과 불교 공부를 했어요(웃음). 그게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범정          
맞아요. 그때 누구나 힘들어했습니다. 스님들도 힘들어했고 나가시기도 했어요. 저희가 실상사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실상사 종무소 일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신도님들은 ‘쟤네는 뭐야? 절에 스님과 직원이 있으면 됐지 활동가는 또 뭐야?’라는 듯한 눈초리도 주셨죠. 지금은 절에 젊은 사람들이 많고, 무엇보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그렇게 ‘타이트’한 공동체는 아니에요. 같이 할 것은 같이 하고, 따로 할 것은 따로 하는 열린 공동체예요.

실상사는 그렇게 변화를 맞이했다.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생태·귀농 중심’에서 ‘수행과 공동체적 삶’으로. 조금은 이야기가 무겁게 진행되는 듯해서,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은 무엇인지 가볍게 물었다. “저녁에 뭐 하세요?” 

세연정          
‘열린 선방’에서 명상을 주로 합니다. 몇몇이 함께하는데, 선방을 지도하시는 스님이 인터뷰를 자주 해주십니다. 선방에 자주 갈 수 있다는 것이 여기에서 받는 가장 큰 혜택인 듯합니다.

범정          
나는 뭐 했더라? 월요일에는 태극권, 화요일에는 흥선 스님과 불교문화 공부, 수요일에는 부처님 생애 공부, 목요일에는 명상, 그리고 헬스와 운동. 굉장히 바쁘네요(웃음)?

슬우          
화림원에 남자 7명이 사는데, 아침과 저녁을 함께합니다. 주로 책을 읽고, 함께 영화를 볼 때도 있네요. 일요일에는 저녁마다 자치회의를 해요.

자경          
저는 여기서 배우자를 만났는데, 집에 가면 둘이 책상에 나란히 앉아 일해요(웃음). 여기는 다 좋은데, 회의가 많고 모임이 많아요. 낮에는 비슷한 이야기를 세 번까지 할 때도 있죠. 그래서 집에 가서 사무 일을 할 때도 있는데, 지금이 그때예요. 

인터뷰는 90분 정도 진행됐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다들 진지하게 이야기했고, 공동체 삶의 행복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왔으면 좋겠는가?”라는 조금 자유로운 질문을 던졌다. 

슬우        
‘자립적 삶을 추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을 여기서 갖게 됐습니다. 젊은 층들이 힘들어하는데, 여기서는 ‘삶을 연습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면 조금 가벼워져요. 청년들이 좌충우돌하고 실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도반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가족을 만난 듯합니다. 청년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세연정          
스스로 돌아보면 경쟁하는 모습이 많았어요. 변화하기까지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함께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서로 간에 연습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범정          
청년들이 많이 왔으면 합니다. 교육을 통해 저희도 이곳에 정착했는데,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리산이 정말 멋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분이 함께했으면 합니다. 

자경          
자기 삶이 ‘괴롭다’는 것을 아는 분, 그리고 변화를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 함께했으면 해요. ‘내 삶을 실험할 수 있는 분’, 여기는 그런 분들에게 적합한 곳인 듯해요. 

다들 ‘지리산 천왕봉’ 이야기를 빠지지 않고 한다. 비가 올 때나, 안개가 껴 있을 때나, 눈이 올 때나, 매일매일 변화하지만 언제나 실상사 앞마당에서 보면 우뚝 서 있는 천왕봉. 그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대담. 자경, 범정, 세연정, 슬우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