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수행 공동체, 실상사] 깨달음의 공동체 탐방 ➊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

2022-12-27     김남수
실상사 공동체는 매주 수요일을 ‘공동체 수행의 날’로 정해 축원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21세기 약사경』을 독경하며, 구성원들의 마음을 모은다. 실상사에 거주하는 대중들은 별도로 매일 아침 ‘아침을 여는 법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기도와 수행, 모임과 회의를 통해 일과 수행이 함께하는 공동체, 사부대중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가는이여 가는이여 광명의길 가는이여
어두움을 떨쳐내고 광명의길 가는이여
아는이여 아는이여 그대가 나임을 아는이여
너와내가 둘이아닌 한몸임을 아는이여
 - 『21세기 약사경』 중 ‘대다라니’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실상사 공동체는 스님 12명, ‘인드라망 활동가(이하 활동가)’와 ‘실상사 작은학교(이하 작은학교)’ 각각 30여 명, 근 80명에 이르는 대중이 모여 공동체 살림살이한다. 백장암에 동안거 수행을 하는 14명 스님까지 합하면 100명에 이른다. 스님들이야 당연히 사찰에 거주하지만, 활동가들은 제각각이다. 사찰에 머물기도 하고, 근처 집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다. 공동체 내 작은 공동체인 화림원에 모여 살기도 한다. 이름도 제각각이다. 벽추, 수지행, 범정, 선나와 같이 법명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질경이, 낙지, 달곰, 밤비, 정어리, 나뭇잎처럼 자기가 정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침을 여는 법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21세기 약사경』을 독경하는 모습.
대·소사는 상임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쳐야 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는 공동체 대중들이 농사를 짓는다.
활동가와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공양간 일을 돕는다. 
농상울력 마지막 날, 올해의 ‘농부상’을 받은 덕산 스님. 

 

일과 수행을 함께하는 공동체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30분, 실상사 대중들은 선재집에 모여 축원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어 실상사 수행공동체가 지향하는 『21세기 약사경』을 독송한다. 실상사 공동체는 매주 수요일을 ‘공동체 수행의 날’로 정했다. 이날은 종무소와 공양간 같은 사찰 시설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운영하는 ‘(사)한생명’, ‘느티나무 매장’ 시설도 문을 닫는다. 꼭 운영해야 하는 곳은 필수인력만 남긴다.

오전에는 일주일 동안 했던 활동을 공유한 뒤 공부 모임을 시작한다. 활동가가 한 명씩 돌아가며 전체 마중물 발제를 하거나, 스님의 강의를 20분 들은 뒤 5개 모둠으로 나눠 토론한다. 소임을 맡은 스님과 활동가를 적절히 나눈다. 12월 7일에 진행한 주제는 ‘마음 챙김’과 ‘무아’. 불교에서 누차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스님들도 한 분의 토론자로 참여할 뿐이다. 오후에는 농장 일을 함께한다. 

실상사 농장은 작은학교가 자체적으로 짓는 것을 포함해 3만 평에 이른다. 이곳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대중들이 먹는 것을 해결한다. 유기농 농사일은 손이 많을수록 수월하다. 모내기나 추수 때면 특히 그렇다. 

12월 초, 겨울 농사는 밭을 정리하거나 뒷마무리하는 시기다. 땅을 보호하고 퇴비가 되는 낙엽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실상사뿐 아니라 마을에 있는 낙엽을 모은다. 실상사는 이렇게 ‘일과 수행이 함께하는 공동체’, 특히 ‘사부대중 공동체’를 지향한다. 

수요일 저녁에는 ‘불교공부 모임’도 있다. 요즘은 스님과 활동가 15명 정도가 모여 ‘부처님의 생애’를 주제로 토론한다. 또 ‘열린 선방’도 운영하는데, 스님 한 분의 지도하에 활동가와 마을 주민이 함께 마음공부를 한다. 

인간만을 사랑하고 자연생태 괴롭히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자연도 빛나고 
인간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개인만 앞세우고 공동체를 뒤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공동체도 빛나고 개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 『21세기 약사경』 중 ‘서원’

 

새로운 전환과 모색

실상사는 2000년대 초반까지 “귀농 운동의 성지”로 이름났다. 산내면 주민 2,000명 중, 도심에서 시골 마을로 내려온 사람이 500명을 넘는다. 이 중 200~300여 명은 실상사에서 운영한 ‘귀농학교’ 출신이다.

실상사가 함께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IMF 직후인 1998년부터 강의 중심의 ‘불교 귀농학교’, 실습 중심의 ‘실상사 귀농학교’, 1년 과정의 ‘현장 귀농학교’를 운영했다. 2010년까지 1,000명 넘는 사람이 실상사 농장을 거쳐 갔다. 귀농학교 출신의 활동가 벽추(62·남)에 의하면 “귀농학교 출신 부부가 100쌍 이상”이란다. 이 시기에 대안교육을 추진한 작은학교, 한생명, 생협, 공방, 매장이 만들어졌다. 산내면 농민의 영농을 지원하는 ‘여성농업인 지원센터’, ‘어린이학교’,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2010년 넘어서는 젊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인드라망대학’과 ‘생명평화대학’을 운영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한생명을 통해 귀농 교육을 받은 사람들, 귀농귀촌한 사람들의 정착과 유통을 지원했다. 비단 실상사의 노력만은 아니었지만, 남원 산내는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정착하기에 좋은 마을이 됐고, 21세기 들어서도 인구가 늘어나는 몇 안 되는 시골 마을이 됐다. 산내는 예상외로 문화가 풍부한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동아리가 90개를 넘는다. 취미, 인문, 지리산을 주제로 다양한 모임이 이뤄지고, 이를 잇는 ‘카페’와 ‘지리산 운동’도 존재한다. 

실상사와 주변에서 공동체 운동을 일구던 활동가들은 2018년부터 <전환과 모색위원회>를 구성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크고 작은 사건,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 무엇보다 공동체 운동은 항상 공동체의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데, 실상사에 그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귀농의 바람이 잔잔해지고, 귀농은 전업농으로의 귀농과 귀촌으로 분화됐다. 실상사를 찾는 사람들도 목적 지향보다는 개인의 실존적 고민이 더 중요해졌다. 내부의 결속과 허실을 채우는 것이 중요해졌다. 무엇보다 청년들은 생각만큼 농촌에 정착하지 못했다.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차별의 문명에서 평등의 문명으로
분열의 문명에서 공존의 문명으로
업보중생 문명에서 본래붓다 문명으로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
- 『21세기 약사경』 중 ‘서원’

실상사 공동체에 함께하는 스님과 활동가들.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삶을 꿈꾸며 스님 12명, 활동가 30여 명, 작은학교 학생 30여 명 등 80명이 넘는 식구들이 실상사 살림살이를 함께하고 있다. 

 

‘발심’에서 ‘열반’까지

때로는 사무실과 공양간 문을 닫고, 심지어는 ‘공양물’을 배달시켜 먹으며 논의에 집중했다. 이질적 문화와 다른 의견이 충돌했으며, 이별의 시간도 있었다. 실상사 공동체 구성원들은 ‘일과 수행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논의했다. 기존에 지향했던 가치를 개인 스스로가 내면화하고, ‘개개인의 변화와 성장이 있을 때만이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공부하고 함께 수행하기로 했다. 삶의 여러 문제를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온전히 책임질 때,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거와 먹는 것, 특히 노후와 죽음–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회향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발심에서 열반까지’를 공동체가 함께 하기로 했다. 

실상사와 기관들을 ‘사부대중의 공동체’로 운영하기로 논의했다. 실상사와 약간의 거리가 있었던 여러 단체와 기관의 통합을 논의했다. 스님은 법과 수행의 지도자로, 활동가는 자기 일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자그마한 일이라도 공의를 거쳐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실상사에는 스님, 활동가, 신도들이 논의하는 회의와 모임이 많다.

가난으로 고생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외로움에 눈물짓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억울함에 가슴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증오심에 시달리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 『21세기 약사경』 중 ‘귀의’

공동체 활동가 중 의외로 기독교 신앙으로 출발한 사람이 제법 있다. 가톨릭 수도자를 꿈꾸었던 사람, 교회를 다니거나 개신교 공동체에 몸담았던 사람, 지금도 불자라는 정체성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이곳이 폐쇄적 종교 공동체는 아닌가?”라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종종 있다. 물론 하루가 지나지 않아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우친다. 변화하는 공동체 속에도 변화하지 않는 가치가 남아 있다. ‘도시’로 대표되는 미혹의 현대 문명을 극복하고 ‘마을’, ‘노동’,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사랑도 하고, 노동 후에 막걸리도 마시고, 공부하면서 졸기도 하고, 대화하면서 작은 다툼도 하고, 일을 마친 다음에 선방에 있기도 하고, 저녁 시간에 운동도 한다. 이런 소소한 삶을 함께하는 열린 공동체가 바로 ‘실상사 공동체’다. 

언젠가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와 제자들이 실상사에 며칠 묵고 떠나면서 물었다.

“이런 공동체를 널리 퍼뜨리면 좋을 듯한데요?”

“교수님, 저희도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 넘게 걸렸어요(웃음).”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