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수행 공동체, 실상사] 꿈꾸지 않는 꿈의 도량 지리산 실상사

2022-12-27     불광미디어

천년 고찰 대부분이 산 경사면과 계곡을 끼고 자리하고 있어서 처음 실상사에 들른 이들은 이곳을 평지가람으로 여기곤 한다. 실제 천왕문에 들어서면, 주 전각인 보광전을 비롯해 전각과 요사채가 모두 수평으로 놓여 있어서 이곳이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보이는 사찰이라는 점을 잊곤 한다. 하지만 실상사를 중심으로 남쪽 천왕봉과 삼정봉, 동쪽 삼봉산, 서쪽 바래봉, 북쪽 투구봉 등 1,000m가 넘는 큰 산들이 수호신장처럼 둘러있다. 구산선문 최초 가람다운 위용이다. 조계종 종지가 서린 이 터에 부처님 시대부터 꾸렸던 사부대중 공동체가 자리를 잡고 있다. 터를 닦는 이들에게는 하루하루 현실이겠으나, 어쩌면 공동체를 이루려는 많은 출가·재가 수행자들에게는 살아 있는 꿈의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원 시내는 나목의 가지에도 눈이 소복하게 앉았으나, 같은 남원 땅이라 해도 산내에 들어서자 눈이 내려앉을 겨를이 없이 바람이 거셌다. 

 

2019년 정재철 작가의 <대숲법당 ‘바람그물’>. 빨간 실로 대나무와 대나무를 연결해 바람을 표현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대숲을 움직이는 것처럼 만물도 보이지 않는 끈 ‘인드라망’에 의해 움직인다.

2016년 정재철 작가의 <나한도-부분>. 사중에 흩어져 있던 큰 돌들을 한곳에 모았다. “논두렁이라도 수행자가 앉으면 그곳이 법당”이라고 했다. 실상사와 지리산과 바위와 거기에 앉는 수행자가 만나 비로소 완성체 나한도가 된다.

 

실상사 대중이 꿈꾸는 미래 1      
실상사에는 스님과 활동가 모두 ‘훗날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서로에게 말하는 두 분이 계신다. 월선 스님과 공양주 보살님이다. 묘하게도 두 분은 85세 동갑이다. 월선 스님이 실상사에 머문 지는 5년이 다 됐다. 스님이 머문 뒤로 실상사 마당에는 풀과 잔돌이 줄고 말끔해졌다. 하루도 쉬지 않고 어느 시간만 되면 스님이 쇠스랑과 괭이를 들고 흙을 고르기 때문이다. 요사이 스님은 밤 12시만 되면 매일 포행하는 선재집 마당 흙 고르기 작업을 한다. 스님은 19세에 동화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은사 스님으로부터 ‘이뭣고’ 화두를 얻어 제방에서 공부하다가, 더위로 냉장고에 든 무엇인가를 먹은 뒤 입원하게 되면서 병원에서 부처님 마음을 보게 됐다. 그 뒤로 스님은 많이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고 추위도 잊었다. 늘 깨어 있으니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포행한다. 

 

실상사 대중이 꿈꾸는 미래 2      

공양주 보살님 입석댁. “묵자 스님들 다 알죠. 내가 행자 때 살았잖아. 스님들이 그렇게 좋아 아들 맹이로. 장난도 허고. 가서도 전화도 잘 허고. 묵자 스님덜은 아들보담도 더 잘 허고 가깝지.”

실상사 공양주 보살 입석댁의 인기는 회주 도법 스님의 인기와 견줄 만큼 높다. 스님들이나 활동가 예외 없이 입석댁은 그들의 어머니이며 친구이자 이모다. 농담 주고받기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론 막냇자식처럼 어리광을 피우기도 한다. 그런 입석댁이기에 실상사 구성원 하나하나의 신상을 모두 꿰고 있다. 누군가 아파서 공양을 제때 하지 못하면 따로 챙겨 보내기도 한다. 공양주 보살님 바람은 건강한 몸으로 하루라도 더 공양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식구들에게 폐 끼치는 일 없이 떠나는 것이다. 오늘도 입석댁은 다른 이들이 공양을 마칠 즈음에야 숟가락을 든다.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