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부처님의 반열반과 마지막 제자 수밧다

2022-12-19     동명 스님
아난다가 열반 직전의 붓다를 시봉하는 모습. ⒸAnandajoti Bhikkhu
아잔타 26번 석굴에 새겨진 붓다의 열반상. 아래는 19세기의 스케치, 위는 21세기의 사진.

하늘에서 꽃과 향이 내리는 가운데

붓다의 최후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인도아대륙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던 분이 바라나시나 라자가하나 사왓티 같은 큰 도시가 아닌 소읍(小邑)에 불과한 꾸시나라에서, 으리으리한 병원도 아니고 기원정사나 죽림정사 같은 대가람도 아닌 숲속의 살라나무 두 그루 사이에서, 그럴듯한 침상도 아닌 네 겹으로 접은 가사 위에 누워서 반열반하는 모습은 어떤 외형적인 상에도 집착하지 않는 붓다의 ‘내려놓음’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어쩌면 천신과 인간,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스승이기도 한 붓다로서는 안락한 사원보다는 숲속의 나무 밑이 모든 제자들과 이별하기에 적당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붓다의 반열반을 앞두고 때아니게 살라나무에 꽃이 만개했고, 하늘에서 만다라와 꽃잎이 떨어져 세상을 화려하게 했으며, 전단향 가루가 내려와 세상을 온통 향기롭게 했고, 천상의 음악이 세상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붓다가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서 여행을 기획할 때 반열반은 예정돼 있었다고 하겠지만, 언제나 완벽하기만 했던 붓다가 벌써 반열반하게 된다는 사실이 급작스럽게 느껴진다. 붓다는 꾸시나라 인근 빠와(Pāva)에서 금세공사 쭌다(Cunda)의 공양을 받고 큰 병에 걸린다. 쭌다의 음식 중에 문제가 된 것은 수까라맛다와(sūkaramaddava)라는 고급 음식이었다. 수까라(sūkara)는 돼지라는 뜻이고, 맛다와(maddava)는 버섯이라는 뜻이다. 

이 음식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빠알리어나 산스끄리뜨어 복합어의 핵심은 대체로 뒷부분에 있다는 점에서 버섯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자면 ‘노루궁뎅이버섯’이 노루의 엉덩이 모양의 버섯인 것처럼, 돼지의 특성과 관련된 버섯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쭌다여, 비구들은 이 수까라맛다와를 소화시킬 수 없으니, 저 음식은 나에게만 주도록 하라”며 혼자서 수까라맛다와를 공양한 붓다는 공양을 마치고 나서 말한다. “쭌다여, 남은 수까라맛다와는 구덩이를 파서 묻도록 하라. 여래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천신 중에서 이 음식을 먹고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이는 없느니라.”

붓다는 수까라맛다와를 공양한 후에 극심한 고통에 휩싸인다. 붓다도 수까라맛다와를 소화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반열반을 앞둔 붓다의 소화법은 그 음식을 통해 반열반을 앞당기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등정각자의 출현인 성도를 위해 수자타의 유미죽이 필요했듯이, 정등정각자의 육신이 퇴장하는 반열반을 위해 쭌다의 수까라맛다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난다여, 쭌다는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 인해 붓다가 완전한 열반에 들게 되었다고 자책할 것이다. 그를 다음과 같이 위로하도록 하라. ‘벗 쭌다여, 부처님은 두 가지 위대한 공양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는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음식을 공양하는 것이고, 하나는 무여열반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는 음식을 공양하는 것이다. 두 가지 공양은 어떤 공양보다 위대하며, 두 가지 공양의 공덕은 똑같다.’ 쭌다에게 이렇게 말해줌으로써 그가 더 이상 자책하지 않도록 하라.”

극심한 고통 속에서 반열반을 앞두게 됐지만 붓다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으로써 고통을 거뜬히 이겨냈다. 붓다는 병에 걸린 채로도 강물에서 목욕하고 인간과 천신이 모두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누워 마지막 할 일을 해 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할 일이란 곧 교화였다. 반열반하는 당일까지 제자를 위한 교화를 멈추지 않은 붓다의 열정은 흉내 내기도 힘든 일이다. 회사의 대표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회사에 나와 거래처 대표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과 한가지다. 

붓다가 반열반하는 날 낮에 붓다를 찾은 마지막 제자가 있었다. 그는 수밧다(Subhadda)라는 외도 수행자였다. 『니까야』에는 수밧다의 나이가 나와 있지 않지만, 『유행경』에는 120살이었다고 전한다. 당시 꾸시나라에 머물고 있던 수밧다는 붓다가 오늘 밤 사라쌍수 아래서 반열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꼰단냐와 수밧다의 전생 - 쭐라깔라와 마하깔라 형제

수밧다는 붓다가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릴 때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고 출가한 꼰단냐 존자 전생의 형제였다고 한다. 

때는 위빳시 붓다 시대였다. 마하깔라와 쭐라깔라 형제는 넓은 땅에 농사지으며 사이좋게 살고 있었는데, 동생은 처음으로 수확한 곡식으로 밥을 지어 공양 올렸고, 형은 벼가 완전히 익은 다음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렸는데, 그로 인해 쭐라깔라의 후신인 꼰단냐는 석가모니 붓다 시대에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었고, 마하깔라의 후신인 수밧다는 석가모니 붓다 시대에 외도로 전전하다가 붓다가 반열반하는 날에야 붓다를 찾아뵙고 귀의하게 됐다. 

뒤늦게 붓다를 찾은 수밧다는 마음이 급했다. 붓다가 예상보다 일찍 반열반하면 자신은 결국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었다. 붓다가 누워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가려는 수밧다를 아난다가 막아섰다.

“존자시여, 지금 부처님께서는 몹시 피로하십니다. 쉬셔야 합니다.”

그때 붓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아난다 존자를 불렀다.

“아난다여, 수밧다를 이리 가까이 오게 하라.”

가까이 다가온 수밧다는 붓다에게 말했다.

“고따마 존자시여,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 같은 성자들이 모두 자기가 주장하듯이 최상의 지혜를 가졌습니까? 아니면 그들 중 어떤 자는 최상의 지혜를 가졌고 어떤 자는 가지지 못했습니까?”

“수밧다여, 지금 그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제 그대를 위해 깊고 묘한 법을 설할 것이니 잘 듣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여라.”

붓다는 팔정도의 중요성을 말했다.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없으면 위대한 성취도 없다. 다시 말하면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없으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등 성자가 될 수 없다. 이 법과 율에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 비구들이 이 법과 율 속에서 바르게 수행한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수밧다는 다시 붓다에게 여쭸다.

“부처님이시여, 허공에 자국이 남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 법 밖에서 번뇌를 제거한 사문이 있습니까? 유위법은 영원합니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허공에는 흔적이 없고
붓다의 가르침 밖에서 
바르게 깨달은 사문은 없네
유위법 중에 영원한 것이 없나니
붓다는 사량분별에 흔들리지 않느니라
 _ 『법구경』 255송

이 게송 끝에 수밧다는 아나함이 됐고, 붓다에게 출가를 청한다.

“부처님이시여, 참으로 뛰어나십니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부처님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싶습니다.”

“수밧다여, 외도였던 자가 출가하려면, 4개월의 예비과정을 거쳐야 하느니라.”

“부처님, 외도였던 사람이 이 교법과 계율에서 출가하기 위해서는 4개월의 예비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저는 4년의 예비과정을 거치겠습니다. 4년이 지난 뒤 부처님의 제자들께서 저에게 구족계를 주셔도 좋습니다.”

붓다는 아난다 장로를 불러 말했다.

“아난다여, 수밧다를 출가시켜라.”

구족계를 받은 수밧다 장로에게 가사가 저절로 입혀졌고, 길었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빠알리어 경전은 수밧다 존자가 홀로 떨어져 은둔한 채로 열심히 노력하며 지낸 결과 아라한과를 성취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장아함경』의 「유행경(遊行經)」은 수밧다 존자가 밤이 깊어지기 전에 아라한이 됐고, 붓다가 반열반하기 전에 먼저 반열반했다고 전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는 ‘성실’

붓다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제자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는 반열반하기 직전 비구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비구들이여, 붓다나 법이나 승가나 수행에 대해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나중에라도 스승의 면전에서 여쭈어보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아라.”

이렇게 세 번이나 말했지만, 제자들은 모두 침묵했다. 붓다의 반열반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제자들 중에서는 법에 대해서 의심하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난다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비구 승가에는 붓다나 법이나 승가나 수행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습니다.”

붓다는 아난다의 말을 찬탄했다.

“아난다여, 참으로 훌륭하다. 이들 오백 명의 비구들 가운데 최하가 수다원이니, 이들은 모두 정등각으로 나아가고 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붓다는 초선에 들었다. 초선에서 출정하여 제2선에 들었고, 이어서 제3선에 들었으며, 다시 제4선에 들었다. 제4선에서 출정하여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차례로 들었다가 출정한 후 상수멸정(想受滅定)에 들었다. 그러자 아난다가 옆에 있는 아누룻다에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시여,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셨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지 않으셨습니다. 상수멸에 드신 것입니다.”

붓다는 상수멸에서 비상비비상처·무소유처·식무변처·공무변처를 거쳐 제4선·제3선·제2선을 거쳐 초선에 들었다. 초선에서 다시 제2선·제3선을 거쳐 제4선에서 출정한 뒤 반열반했다.

붓다의 법력이라면 다른 모습으로 화려하게 반열반할 수 있었겠지만, 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한 집착을 경계했던 붓다로서는 소박한 반열반을 택했다. 제자들로 하여금 이런 식으로 반열반에 드는 것이라고 붓다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것이 아닌가 싶다.  

바르후트 스투파 난간에 새겨진 아자따삿뚜가 붓다에 귀의하는 장면. 붓다는 두 발로 표현됐다. 인도 인디언 뮤지엄 소장

 

제자를 위해 관 속에서 두 발을 내보이다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족들은 붓다의 유해를 여법하게 수습한 후 입관해 화장하려 했지만,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았다.

붓다가 반열반한 지 7일째, 마하깟사빠 존자는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가는 대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꾸시나라에서 주운 만다라와 꽃을 들고 오는 외도에게 마하깟사빠는 붓다의 반열반 소식을 들었다. 그는 부리나케 붓다의 다비식이 준비된 곳으로 갔다. 

마하깟사빠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게 가사를 수하고 합장한 채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예를 갖춘 뒤 관을 열어 세존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올렸다. 이 장면에 대해 『디가니까야』의 주석서는 마하깟사빠 존자가 붓다의 두 발에 예배하기를 원하자 마치 먹구름 사이에서 보름달이 나타나듯이 붓다의 두 발이 500겹의 천 속에서 나타났다고 전한다.

마하깟사빠에 관한 「유행경」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마하깟사빠는 관 속에 안치된 붓다의 유해를 친견하고 싶어서 아난다에게 물었다. 

“도반 아난다여, 붓다의 유해를 친견할 수 있는지요?”

“지금은 어렵습니다. 부처님의 유해는 향탕으로 목욕시키고 깨끗한 천으로 500겹이나 싼 후에 금관에 넣고, 다시 철관으로 둘렀으며, 이어서 전단향나무 곽으로 덮었기 때문입니다.”

마하깟사빠가 화장을 위해 붓다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가서 합장하자 붓다의 두 발이 관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마하깟사빠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붓다의 발에 예배했고, 함께 온 500명의 비구들도 예배했다. 마하깟사빠 일행이 예배를 마치자 붓다의 두 발이 관 속으로 다시 들어갔고, 그때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불이 붙지 않던 나무가 스스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붓다가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관 속에서 두 발을 내보였다는 것은, 붓다의 반열반 후에도 제자들을 위한 당신의 가르침은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붓다의 두 발은 곧 당신의 행적(行跡)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말 속에 가르침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가르침이 있을 수 있으니, 당신의 행적은 언어화된 경전보다도 포괄적이다.

붓다가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인 것은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화다. 그러나 그 신화가 담은 함의를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신화는 우리들의 염원까지를 담고 있으므로 붓다의 신화를 이해하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까지를 이해하는 일이 된다. 붓다가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인 이야기는 제자를 사랑하는 붓다의 마음뿐만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우리 마음을 함께 담고 있다. 

 

동명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산문 『인도신화기행』, 『조용히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