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현대 상장의례의 변용

상장의례와 박탈된 애도

2022-10-24     이범수

현대의 부실한 상장의례

2021년 말 코로나19 사망자는 방역 매뉴얼에 따라 24시간 안에 화장(火葬)을 마쳐야 했다. 일반적으로는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야 화장할 수 있었지만 유족들은 바뀐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유족이 밀접 접촉자거나 확진자인 경우 빈소를 열지 못하고 장례의식을 생략한 채 장례식장 복도에서 발인해야 해서 평생 한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2022년 3월에도 우리 사회에는 코로나19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바람에 장례식장의 냉장실이 모자라 제때 상장(喪葬)의례를 모실 수 없어 큰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3일장이라는 관례가 무색하게 5일장 심지어 8일장으로 장례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산업 발전으로 사회문화의 격심한 변화를 맞았다. 이와 더불어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상황은 가장 보수적으로 유지될 것 같았던 전통 방식의 상장의례를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켰다. 장례의식 집전 장소는 각 가정에서 병원 장례식장이나 전문 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를 넘어서고 고인의 나이가 90세가 넘어가면서 조문객이 감소하자 빈소를 열지 않거나 소규모의 가족장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장례 기간도 3일장에서 2일장으로 단축되고 있다. 

장법(葬法) 또한 유교적 전통 매장 방식에서 2021년 화장률이 90%가 넘어서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한동안 화장 후 봉안시설에 안치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으나, 요즘 들어서는 자연장, 산골장, 수목장(수림장), 해양장이 늘고 있다. 상례 기간도 과거 유교적 전통 방식에서는 초상, 대상, 탈상까지 27~28개월을 거쳐 3년째 탈상(脫喪)이 기본이라고 여겨졌으나 근래에는 1년, 100일, 50일, 49일 탈상이 보편화됐다. 심지어는 화장 후 안치 당일 탈상도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의 효율성, 편리성, 단축성의 기치하에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루며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 과정은 자본주의의 폐해인 물질만능주의, 치열한 경쟁사회, 개인주의라는 부작용으로 점철돼 생사 문화에도 부작용을 야기했다. 혈연 및 지역사회 주도로 시행되던 전통적인 상장의례가 제공하던 돌봄과 지원이 없어지면서, 유족들은 애도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됐다.

이는 죽음의 방식이나 종류, 장소, 동기 혹은 고인과의 관계, 사망 시 상황 등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자살, 에이즈, 코로나로 인한 죽음의 경우 아직도 사회적으로 적절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비통한 반응과 애도의 방식은 사회가 그것들이 익숙하지 않거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경우 거부된다.

박탈된 애도(disfranchised grief)는 고인의 사별로 인한 유족의 슬픔과 고통의 경험을 소속 사회가 공감하거나 인정하지 않아 공개적으로 애도해 주지 않거나, 혹은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별 상실이 일어났을 때 경험하는 애도 과정이다. 이는 유족이 사회에 의해서 비통함을 경험할 자격이 없는 사람, 혹은 애도할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돼 그 권리가 박탈되는 것이다. 애도의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것은 특정한 사람을 사별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회적으로 비통해할 상장례 절차나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고, 그를 통해 마음껏 애도의 과정을 밟을 권리를 누리지 못함을 의미한다. 어린아이나 노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주 이런 방식으로 권리가 박탈당하기도 한다. 

사별로 인한 상실감과 그 중요성이 단순히 잊히거나, 숨겨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족으로서 고인과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승인을 받지 못하고 거부되며, 지지받지 못하는 것도 박탈된 애도에 포함된다. 온전히 애도할 권리를 주지 않고 박탈된다는 것이다. 

강화 전등사에서 지내는 49재 봉행 모습

 

상장의례의 애도 기능

상장의례는 죽음에 관한 행위 양식이다. 의례 행위로 고인이 가야 할 성(聖)스러운 세계를 극화(劇化, Drama)하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상장의례는 우주적 구조나 신성한 존재를 중심으로 인간의 의도적이고 자발적이며 반복적으로 양식화된 상징적인 신체 행위로 성립된다. 그렇게 상장의례로 창조된 시간과 공간에서 고인과 상주(喪主)는 의례가 여는 고유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빈소는 상장의례의 공연이 벌어지는 무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상장의례는 극화 과정으로 장례 절차의 틀(劇本, framing)에 따라 진행되면서, 고인과 유족을 초점화(focusing)하고, 유족의 사별 슬픔과 고통을 드러내는(displaying) 성격을 가져야 한다. 

『예기(禮記)』 「소의(少義)」에서 상사(喪事)는 애통함을 위주로 진행돼야 하고, 제사는 주로 공경하는 태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논어(論語)』 「팔일(八佾)」에서도 ‘유족이 상사를 당해 슬퍼하지 않는다면 어찌 눈 뜨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상장의례는 극진히 슬퍼하며 모시는 것이다. 이처럼 상장의례 과정에서 애도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상장의례는 유대감, 사랑, 미움과 같은 정서적 삶을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슬픔, 근심, 비탄, 두려움, 분노 등을 누그러뜨린다. 또한 사회적 집단원으로서 삶의 통일성을 보호 유지하는 기능을 내재하고 있다. 유족은 상장의례 절차 틀에 따라 자신의 비통한 마음과 정서를 제어하고, 마음의 애통함을 수렴(displaying)한다. 상장의례의 복잡한 절차는 유족들이 고인과의 점진적이고 반복적인 ‘격리(隔離)’ 절차를 통해 고인이 이미 유족의 곁을 떠나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다시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상장의례는 유족이 일상(日常)을 회복하는 과정이므로 꼭 필요하다.

유족은 심리적으로 화상을 입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의 화상을 치료하는 연고제는 제대로 애도 과정을 밟는 것이다. 결국 상장의례는 유족에게 고인의 죽음을 수용하고, 사별의 슬픔과 고통을 사회적으로 지지받으며 해소하고 추모함에 도움을 준다. 죽음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유해 봉안 후 제사 등의 과정까지 이뤄지는 상장의례 절차와 과정은 유족의 애도를 돕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상장의례는 ①유족이 고인의 죽음과 사별의 현실을 기정사실화 하도록 돕는다. ②유족에게 고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기회를 가지게 한다. ③유족에게 고인의 삶의 여정을 회상하고, 추모하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④유족에게 사회적 지지 관계망을 뻗는 효과를 지닌다. ⑤유족에게 고인 및 유족의 삶에 대한 회상과 의미 부여를 제공한다. ⑥유족에게 고인의 심리적 자리를 조정하고, 고인이 없는 삶에 적응하게 한다.

 

 

불교의 천도의례와 애도 

불교의 우란분재나 사십구재의 1차 목적은 의식을 통해 받게 되는 불보살의 가지(加持)에 의한 영가의 천도다. 2차 목적은 유족이 고인의 영가 천도의례 절차에 따라 애도의 과정을 밟게 되면서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천도의례 절차는 유족에게 고인과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의례 절차는 유족에게는 사별 후 고인 존재의 형태와 위치, 상태, 안위(安危) 여부에 대한 궁금함을 해소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유족은 그 기회로 고인과의 해결되지 않은 미제(未濟)의 과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또한 고인과 연관된 두려움, 분노, 죄책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며 자신의 안녕에 대한 실존적 불안에서 벗어나 정상적으로 현실로 복귀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현대 불자들이 사별 후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밟아 나가며 박탈된 애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별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춘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불교의 시다림이나 우란분재 등의 천도의례 등의 참여와 이를 시행 시 더욱 철저히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 사별로 비통함에 빠진 유족의 애도를 돕는 방안이 될 것이다.  

 

사진. 유동영

이 범 수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국대 생사문화산업연구소 부소장, 한국죽음교육협회장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