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고려불화 속 아미타불

아미타부처님 어디에 계신가?

2022-10-24     강소연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념처)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아미타부처님 어디에 계신가
이 생각을 가슴에 붙여 놓고 잊지 말라
생각하다 생각이 다하여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육근의 문에서 항상 찬연한 빛이 나오리라
_ 나옹 스님

나옹 스님(1320~1376, 고려 후기 고승)이 출가하자 속가의 여동생은 오빠를 잊지 못해 산문 밖에서 매일 서성거렸다고 한다.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오빠가 출가해 버렸으니, 마음 둘 곳 없어진 동생. 그 애타는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한 번도 만나 주지 않았다. 출가한 스님들은 속가의 정(情)마저도 경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빠로서 그 애처로운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게송(偈頌) 하나를 지어, 도반 스님 손에 쥐여 주며 동생에게 전해 달라 간곡히 부탁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나옹화상의 게송이다. 

‘부질없이 나를 찾지 말고, 아미타부처님을 찾아라!’ 더 이상 내게 마음을 두지 말고, 이제 아미타부처님께 마음을 두라는 의미다. 그리고 ‘아미타부처님을 찾는 방법’을 고스란히 게송에 담았다. 아! 이제 알겠다. 동생을 왜 생면부지 모른 척했는지. 나옹 스님은 그동안 아미타부처님[깨달음]을 찾은 것이다! 식솔도 버리고 출가한 마당에, 자신도 도통 인생의 답을 찾지 못한 마당에, 차마 동생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아미타부처님과 조우하자마자 쏟아져 나온 오도송(悟道頌,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시), “아미타부처님 어디에 계신가(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로 시작하는 게송이다.  

 

고려 후기 풍미한 아미타 신앙과 아미타 불화

아미타 신앙은 정토 신앙(또는 극락 신앙)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요체로 하기 때문이다. 아미타 신앙은 시대가 매우 혼란할 때마다 대유행을 타곤 했다. 주로 특정 시대가 기우는 후기 또는 말기 때는 불같이 일어났다. 그 까닭을 더 쉽게 말하자면, 한마디로 세상이 지옥 같을 때, 사는 게 끔찍할수록, 사람들은 극락을 강렬히 열망했다. 이 거칠고 더러운 세상을 버리고, 지극한 평온함과 즐거움만 가득하다는 뜻의 ‘극락(極樂)’의 세계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극락의 풍경을 단계별로 설한 『관무량수경』의 첫머리에는 이같이 “더 이상 이 혼탁하고 사나운 세상에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 … 진정으로 원하옵건대 맑고 깨끗한, 평온함으로 가득한 세상[극락]을 보여주십시오!”라고 울부짖은 위데휘 왕비의 이야기가 나온다. “왕비는 범부(凡夫, 자신이 경험한 것만 진리라는 편견 속의 중생)라서 직접 극락을 체험할 수 없으니, 비유해서 이야기할 테니 잘 들으라”고 부처님은 설한다. 이러한 극락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긴 불화가 〈관경16관변상도〉(속칭 극락도)다. 

〈관경16관변상도〉, 고려시대(1323), 일본 교토 지은원 소장, 필자 제공 
〈관경16관변상도〉의 아미타부처님 광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량한 빛과 무수한 화불(化佛)
〈관경16관변상도〉의 아미타부처님 광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량한 빛과 무수한 화불(化佛)
〈관경16관변상도〉의 중품중생의 연화화생 장면

 

극락왕생 = 연화화생

극락에 태어나는 것을 “극락 연못에 왕생한다”고 한다.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다른 말로 ‘연화화생’이라고 한다. 극락의 연못과 극락 땅에는 연꽃이 가득 피었다. 그 연꽃에서 화생(化生)하게 된다는 말이다. 불자들의 영원불변 염원인 극락왕생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 ‘연꽃은 어디에 피는가?’에 대한 답부터 말하자면, ‘스스로가 무명업장(無明業障)을 맑힌 그 자리에 핀다’는 의미다. 

업장을 맑히면 그 자리가 극락이다. ‘사띠(sati, 알아차림)’하는 자리가 바로 극락이며, 현재의 내 바탕자리는 ‘무명(無明)’이다. 무명을 바탕으로 온갖 헛된 바람, 헛된 욕망, 헛된 망상이 만들어지기에 고통스럽게 윤회한다. 반대로 열반(부처와 보살)의 세계는 청정업(淸淨業)을 바탕으로 한다. 이 청정업이 피어난 것을 연꽃에 비유하고, 그 청정업을 바탕으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행(行)이 시커먼 무명이 아니라 청정한 바탕자리를 기반으로 할 때, 연꽃은 핀다. 우리가 ‘관(觀)’하는 자리가 바로 ‘아미타불’이 계신 자리다. 

참된 성품 등지옵고 무명(無明) 속에 뛰어들어 
나고 죽는 물결 따라 빛과 소리 물들이고/
사대육신 흩어지고 업식(業識)만을 가져가니/
돌고 도는 생사윤회 자기 업을 따르오니/
무명업장(無明業障) 밝히시면 무거운 짐 모두 벗고/
삼악도를 뛰어넘어 극락세계 가오리다.
_ 이산 혜연선사 발원문 중에서

 

죽음의 순간, 마중 나온 아미타불 

위에 소개한 극락의 풍경을 도해한 극락도(〈관경16관변상도〉) 이외에 고려시대를 풍미한 아미타 신앙 관련 주제의 작품이 ‘아미타내영도’다. 내영도(來迎圖) 형식의 아미타 불화는 지극히 혼란스러웠던 고려 후기, 절찬리에 제작됐다. 특히 아미타 경전의 속 “임종의 순간, 근기에 따라 아미타부처님이 마중을 와서 당신을 극락으로 데려간다”라는 내용으로 당시 민중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염원의 대상이 아미타부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도 나도 원했던 아미타불 내영도. 내영도의 내영(來迎)이란 ‘맞이하러 오다’라는 뜻으로, 중생의 영가를 극락으로 이끌기 위해 아미타불이 직접 몸을 나투신 모습을 가리킨다. 내영도 형식의 아미타불 불화는 현존하는 아미타불 관련 47점의 작품 중, 무려 26점에 달한다. 아미타 주제의 불화를 통틀어 과반수의 작품이 내영도 형식으로 그려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아미타내영도〉 아미타부처님의 손 부분
“내 손을 잡아라!”라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네 뜻대로’라는 의미의 여원인(與願印)의 수인을 하고 있다. “네 뜻대로, 네 원하는 대로, 극락왕생할 것이다!”라는 표현이다. 

〈아미타내영도〉를 보면, “내 손을 잡아라!”라는 듯, 아미타부처님이 오른손을 내밀고 있다.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네 뜻대로’라는 의미의 여원인(與願印)의 수인을 하고 있다. “네 뜻대로, 네 원하는 대로, 극락왕생할 것이다!”라는 표현이고, 왼팔은 가슴 정도 높이로 접어 올려 손바닥을 보이는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다. 무엇을 설법하는가, “죽는 순간, 두려워 말라. 극락세계가 여기 있다”라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 꿈에도 그리던 아미타부처님이 맞이하러 오셨다! 그리고 극락의 풍경을 온몸으로 보여주신다. 아미타불의 몸체와 법의(法衣, 옷)에는 온통 극락 세상이 물결친다. 원만한 상호, 푸른 나발, 오묘한 빛 광배, 금빛 물결의 법의, 찬란한 푸른 연꽃. 내 앞에 나투신 부처님 모습에 넋을 잃게 된다. 

〈아미타내영도〉 아미타부처님의 상호 부분
아미타불의 원만한 상호, 푸른 나발, 오묘한 빛 광배. 앞에 나투신 부처님 모습에 넋을 잃게 된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흩어진다”라고 표현한다. 성성하게 결속돼 활발하게 서로 작용하던 요소들이, 이제 그 인연이 다해 헐거워지고 삐걱대다가 결국 제각기 뿔뿔이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몸이 분해되고 무너지는 과정, 누가 그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이러한 변화무쌍한 흐름을 ‘무상(無常)’이라고 한다. 내가 평생을 ‘내 몸’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이 몸뚱이가 무너지며 해체되는 순간, 어느 누가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아미타 신앙은 죽음의 공포를 넘는 극락왕생 해법을 제시한다. 죽음의 공포를 단칼에 불식시키며 찬란히 등장한 아미타. 당장에라도 극락으로 안내하는 그 손을 붙잡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아미타내영도〉, 고려시대, 
일본 교토 쇼호지(正法寺) 소장, 필자 제공 

 

7일간, 한결같이 염불하라!

우리나라 사찰 어느 법당에 가든 만날 수 있는 대중적 경전이 『아미타경』이다. 여기에는 어떻게 하면 임종 시에 아미타부처님을 뵙고 극락왕생할 수 있는지 간결하게 쓰여 있다. 

“만약 착한 사람이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 이름을 마음 깊이 새겨, 하루 이틀 혹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혹은 이레를 두고 한결같이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외우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수명이 다할 때, 아미타부처님께서 성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투느니라. 그래서 그 마음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으면,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느니라.” 

즉, 일주일 동안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놓지 않고 지속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롯한 집중을 적게는 3일 길게는 7일간만 계속하면 아미타불을 어김없이 만난다는 왕생법의 요지다. 하나의 대상에 오롯이 집중하는 사마타(禪定·선정) 수행의 일환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집중하면 하얀빛이 나타나고 그것이 유리처럼 투명해진다. 아미타삼부경(『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에 공통으로 언급되는 ‘유리의 땅’이 펼쳐진다. 집중도가 강할수록 이 희한한 빛의 강도와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세진다. 처음에는 내가 빛을 대상으로 보다가, 나중에는 그 빛이 거꾸로 나를 대상으로 해 나를 순식간에 빨아들이고 만다. 주객이 바뀌어 빛이 주체가 된다. “아마타불 어디 계신가”로 시작하는 나옹 스님의 아미타불을 만나는 비법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무량한 빛(무량광=아미타)과 하나가 되면, 그곳이 바로 극락이다. 이제 육근과 육경이 만나는 곳에서 끊임없이 피어나는 어지러운 번뇌망상은 제압되고, 적적성성한 알아차림만 투명하게 빛난다. 그래서 게송 마지막에는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즉, 안이비설선의(眼耳鼻舌身意)의 6문에서 (번뇌가 아니라) 자금광이 찬란하게 비쳐 나온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수행, ‘아미타 염불’의 전통

한국불교의 신앙적 맥락에서 가장 널리 유행한 수행법이 바로 ‘염불 수행’이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염불 수행의 전통은 원효 스님에서부터 나옹 스님, 요세 스님 그리고 근대의 청화 스님까지 그 맥이 아주 넓고 깊다. 다양한 부처님과 보살님의 명호 또는 다라니 등이 염불되지만, 그중에서도 시대를 불문하는 으뜸이 ‘나무아미타불’이다. 그러니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고통이나 업장이 닥칠 때나, 또 평소에도 ‘나무아미타불’ 6자 명호를 놓지 말라고 선사들은 입을 모았다.  

우리의 본 마음자리를 캐기 위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본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바로 우주의 정기(精氣)입니다. 따라서 염불이나 108배, 오체투지 하는 것이나 모두가 다 그 자리에 가기 위한 것입니다. 자나 깨나 밥을 먹으나 일을 하나 어느 때나 부처님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고 한 번 외우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만큼 우리 마음도 정화되고 우리 업장이 녹습니다. 거기에다 마음을 두는 것이 참다운 공부입니다.   
_ 청화 스님 법문집 중에서 

 

강 소 연
중앙승가대 문화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재를 공부하고자 영국 런던대·고려대·서울대·일본 교토대 등을 거쳤다. 저서로는 『사찰불화 명작강의』, 『명화에서 길을 찾다』가 있다. 조선일보 기자·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홍익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