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정토마을 자재병원장 능행 스님

죽음이 참 편안하고 예뻐요

2022-10-24     송희원
적멸보궁 간월사 법당의 아미타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능행 스님. 
스님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매 순간 간절히 기도한다. 

스위스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이곳. 간월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 불교계 최초의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정토마을 자재병원이 있다.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의 이사장이자 정토마을 자재병원장 능행 스님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의 죽음을 30여 년 동안 배웅해 왔다. 깨달음을 성취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와 중생을 제도하는 ‘하화중생(下化衆生)’에 따라 수행과 돌봄을 실천하며 지금도 생애 마지막 간절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을 능행 스님을 정토마을 자재병원에서 만났다. 

 

호스피스, 또 다른 생을 위한 희망의 비전

정토마을 자재병원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자인 환자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전문병원이다. 불교계 유일의 독립형 호스피스병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한·양방 의료진이 환자의 통증을 완화해 주고, 스님과 영적돌봄가들이 상담과 돌봄 프로그램으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영적 고통을 덜어 준다. 그리고 임종의 순간과 임종 직후에 환자가 편하게 머물다 떠날 수 있도록, 환자의 가족은 죽음을 애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준다. 스님의 표현대로 이곳은 생의 끝자락에서 그다음 여정으로 떠나는 ‘삶의 종착역’과도 같은 곳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환자들이 집중해서 짐을 쌀 수 있도록 도와줘요. 버려야 할 것, 가져가야 할 것 등을 잘 구분해서 짐을 쌀 수 있도록요. 또 어디로 가면 되는지 비행기표도 끊어 주고, 또 잘 가는지 중간중간에 기도하며 확인해 주고요. 마지막까지 환자들은 질병과 고통의 고해에서 극락세계 왕생으로 향하는 징검다리를 잘 건널 수 있도록 배웅해 주고, 남은 가족들도 잘 챙겨 주는 것이 호스피스 영적돌봄 활동가들의 역할이에요.”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의 이사장이자 정토마을 자재병원장 능행 스님

불교 호스피스에는 타종교 호스피스와 다른 특별함이 있다. 보통 임종하면 고인을 영안실로 바로 옮긴다. 그런데 정토마을 자재병원은 고인의 몸이 다 식을 때까지 최소 8시간에서 길게는 24시간까지 임종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게 한다. 임종 시 심장은 멈춰서 생물학적으로는 사망하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몸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가 완벽하게 제거될 때까지, 의식이 몸으로부터 떠날 수 있도록 스님들이 안내하고 도와주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티베트 사자의 서』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죽음의 환경이 훼손되지 않고 환자가 고요히 맑고 깨끗하게 임종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유지해 줘요.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직접 죽음을 직면하면서 ‘죽음이 참 편안하네’, ‘죽음이 참 예쁘네’라며 죽음에 대한 막연했던 불안과 공포를 거두게 되죠. 이런 특별함 때문에 ‘죽어서 바로 냉장실에 들어가지 않고 내 몸에서 의식이 다 빠져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싶다’, ‘죽고 난 뒤에도 내 몸이 존엄하고 귀하게 다뤄지고 싶다’, ‘가족들과 함께 충만한 여정을 보내고 싶다’며 종교와 상관없이 전국에서 이곳으로 찾아오죠.”

능행 스님은 환자 생전에도 죽음 앞에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깨어 있도록 환자와 함께 특별한 전략을 세운다. 건강하다가 갑작스레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들은 평소 수행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죽으면 어떻게 되고, 어디로 갈 건지 등을 스님에게 묻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극락세계에 초점이 맞춰진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스님이 권하는 것은 다음 생에 대한 확신, 왕생에 대한 믿음, 그리고 “누구든지 극락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으로 염불하면 극락세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정토 신앙을 심어 준다. 

스님은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도 전략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혼자 가는 이 길에 돈을 가지고 가겠어요? 마누라가 따라올 수 있겠어요? 지옥・아귀・축생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선택할 수 있게, 스님과 환자가 서로 의논해서 다음 생에 대한 전략을 잘 짜는 거예요. 이것이 이들에게는 굉장한 희망이자 비전이 되죠. 절대적인 희망과 비전이 생기면 고통과 공포의 수치가 확 줄어들어요. 생의 마지막 짧은 순간 온전히 집중할 정도로 이들에게는 간절함이 있거든요. 저의 소임은 어두운 밤길을 가는 사람 앞에서 불을 비춰 주고, 손을 잡아 징검다리를 건너게 해 주는 역할인 것 같아요.”  

정토마을 자재병원 앞 약사여래불좌상 마당을 거니는 능행 스님. 
키가 큰 스님의 풍채와 꼿꼿한 자세에서 스님의 위의가 느껴졌다.

 

“부처님 제자의 일이다”

능행 스님의 일정은 보통 새벽 3시에 시작해 밤 11시가 훌쩍 넘어 마무리된다. 일어나자마자 기도와 수행을 하고, 한국 불교호스피스협회장이자 정토마을 마하보디교육원 원장으로 여러 교육을 진행하고, 정토마을 자재병원장으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수행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의 이사장으로 인터뷰 등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글을 쓰고 연구하다 보면 24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스님은 이날도 늦은 오후에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3개의 미팅을 소화했다. 

인터뷰 촬영을 위해 병원 앞 약사여래불좌상 마당을 거닐던 스님이 화단에서 시든 연꽃 한 송이를 손에 쥐었다. “너도 이렇게 시들어 버렸구나.” 바짝 마른 갈색빛의 연꽃은 스님 손에서 바스락거렸다. 키가 큰 스님의 풍채와 꼿꼿한 자세에서 스님의 위의가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지난 세월 동안 부처님 제자로서 수많은 죽음을 배웅하면서 수행과 돌봄이 둘이 아님을 체득했기 때문이리라.

스님은 출가 후 천주교 호스피스 병원에서 생애 말기 암 환자들의 마지막을 돌보면서 불교계에는 호스피스 시설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2000년 불교계 최초 독립형 호스피스센터 정토마을을 청주에 개원하고 무료로 운영했다. 조립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옆방 환자들의 신음이 벽 너머로 들려올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새로운 병원을 지어야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2002년부터 천일기도와 병원 건립을 위한 모연 캠페인으로 2005년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 현재의 부지를 마련해 2007년 마하보디교육원, 2013년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호스피스 시범기관)을 열었다. 그리고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를 이끌며 스리랑카, 네팔, 남인도 등 동남아 해외 의료봉사와 코로나19 해외 긴급구호 활동도 하고 있다.

스님은 30여 년 동안 오롯이 이 길을 걸어왔다. 생애 말기의 죽어가는 환자들 곁에 있다 보니 한눈팔 여지가 없었다. 힘들진 않았을까?

“하루 한 번 장례를 치러도 힘든데 어떨 때는 하루에 서너 분씩 돌아가셨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죠. 그러다가 2004년 인도에서 뵌 달라이 라마 존자께서 ‘부처님 제자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수행인데 스님이 하고 있네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생사의 문제에서 찰나도 떠나지 않도록 하는 이 일이 정말 훌륭한 수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떠나가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도 탐진치 삼독을 녹여내는 물질의 무상함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존재에 대해서는 깨달을 수 없는 거겠죠. 또 그게 부처님 제자가 해야 할 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겠죠. 아무리 이 일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마지막 떠날 때 그들이 덜 무섭고 덜 아프게 손을 잡아 주고, 눈을 감겨 드리고 싶어요.”

“마지막 떠날 때 덜 무섭고 덜 아프게 손을 잡아 주고, 눈을 감겨 드리고 싶어요.”

 

죽음 앞에서 성성적적하게 

“길을 걸을 때 눈을 감고 가는 게 불안할까요? 아니면 눈을 뜨고 걷는 게 더 불안할까요? 그렇다면 죽음 앞에서는요?” 

능행 스님은 환자들에게 죽음 앞에서 눈을 뜨라고 주문한다. ‘적적’하고 ‘성성’하게 눈을 뜨고 나의 죽음을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죽음을 외면하고 사는 우리에게도 “평상시 죽음을 면밀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숙고하라”고 말한다.

“불교는 ‘죽어가는 것(dying)’과 ‘죽음(death)’의 과정을 돌보는 마음 기술이 정말 뛰어나요. 그런데 이걸 배우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그게 우리 불교인들 죽음의 질이 떨어지는 데 한몫하는 거예요. 다른 종교인들은 신앙적인 신념도 의식도 굉장히 간단해요. 불교인들은 사찰이나 집단에서 이런 죽음에 대한 사유와 명상을 배우고, 올바른 정보를 습득해야 해요.”

능행 스님은 극락세계에 우리가 왕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염불 수행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정토마을 자재병원 옆에 들어선 적멸보궁 간월사에서는 일반인과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일 년에 한 번씩 7일 동안 집중 염불 수행 기간을 갖는다. 정기 염불 수행은 2박 3일 일정으로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전 12시에 회향한다. 마하보디교육원에서는 불교 호스피스 임상기도와 임종의식 집중 수련 교육과정을 연다. 또 이곳에 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유튜브 채널 ‘정토마을TV’에 임종 환자를 둔 가족들을 위한 법문 영상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적멸보궁 간월사에서 진행되는 집중 염불 수행 모습. 적멸보궁 간월사는 2016년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석가모니부처님의 정골사리 1과를 기증받은 인연으로 불사해 최근 완공했다. 사진 정토사관자재회 제공 

타인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스님에게 마지막으로 스님의 ‘삶’은 무엇인지 물었다. 

“저의 삶은 수행과 돌봄이 하나 돼 흘러가는 강물 같아요. 생애 말기 환자들을 돌보는 것과 나의 수행이 하나로 합쳐져 흘러가는 강물요. 영남알프스 산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파묻혀 살다가 저도 언젠가는 저 깊고 넓은 바다로 흘러가겠지요.” 

 

능행 스님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으로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마하보디교육원’, ‘국경없는 민들레’를 이끌고 있다. 대한불교진흥원 대원상 단체부문 대상,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영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숨』, 『불교 임상기도집』, 『환자를 위한 불교 기도집』 등이 있다. 

정토마을 자재병원과 적멸보궁 간월사 전경. 사진 정토사관자재회 제공 

정토마을 자재병원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소야정길 216-39
052)255-8400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 후원 문의 
052)255-8588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