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텐진 남카(Tenzin Namkha) 스님

“박사? 맞아요! 전공은 티베트불교입니다”

2022-11-07     김남수

박사(博士). 국어사전 정의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규정 절차를 밟은 사람이 받는 학위다. 또는 어떤 일에 정통하거나 숙달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텐진 남카 스님이 그렇다. 티베트불교에 정통한 박사, 하람빠(Lhalamapa)다. 남카 스님은 달라이 라마가 속한 티베트불교 4대 종단 중 하나인 겔룩파의 스님이 됐다. 겔룩파의 큰 사찰 간댄에서 여덟 살에 출가해 스물아홉 살까지 『반야경』, 『중론』, 『구사론』, 『계율』 등 오대경(五大經)을 수학하고 강의했다. 스님은 2002년 규메 밀교사원에서 겔룩파 3대 사찰의 게쎼 하람빠 스님들과 함께 치른 게쎼 최종 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했다. 티베트어로 게쎄는 ‘선지식’을 뜻한다. 교학과 수행을 모두 갖춘 스님의 법계다. 티베트불교 겔룩파의 최고 학위인 하람빠와 법계 게쎼를 받은 스님은 겔룩파 본사인 간댄 사원의 교수가 됐고, 2003년까지 강의를 이어나갔다. 

자타공인 티베트불교의 ‘실력자’다. 달라이 라마도 그의 실력을 아꼈고 믿었다.

달라이 라마가 ‘과학에 대해 유달리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11년에는 아예 따로 위원회를 구성해 불교 경론 중에서 ‘과학’과 관련된 내용을 모아 모두가 볼 수 있는 ‘책’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가능한 다양한 언어로 번역할 것도 지시했다. 당연히 한국어 번역은 남카 스님에게 돌아갔다. 달라이 라마가 직접 지시한 것이다.

최근 다람살라 남갤 사원에서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한국어판 출간기념 봉정법회를 진행한 남카 스님을 서울 은평구 ‘삼학사(원)’에서 만났다.

남카 스님이 불단에 청수를 올리고 있다. 티베트 불교 의식에서는 청수를 여러 개 올린다.

 

15년 넘는 논리학 공부

남카 스님이 논리학 공부를 시작한 건 열두 살 때부터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논리학 공부를 한 셈이다. 티베트의 스님들은 공부를 위해 우리나라로 치면 본사(本寺)에 해당하는 큰 사찰로 가는데, 본사는 다람살라가 아니라 남인도에 있다. 티베트불교 전통에서 중요한 반야, 중관, 인명, 아비달마 공부를 15년 넘게 진행한다. 불교 논리학이라 할 수 있는 ‘인명학(因明學)’만 10년을 공부한다. 

스님이 소속된 종파 겔룩파에는 본사가 3곳 있다. 출가한 모든 스님이 본사에서 공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몇 년 이상 공부하는 것은 큰 명예라고 한다. 한 사찰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의 숫자는 적으면 300명, 많을 때는 1,000명이 넘을 때도 있다. 

티베트인의 자부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티베트 문자와 문법. 문자의 기본형태는 불교가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로 오기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불교 경전을 기록하기 위해 새로 조성해, 현재의 체계를 갖추게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급이 되는 ‘송첸 캄포(581~649)’가 있었다. 그는 산스크리트 문법에 맞게 문법과 문자를 새로 조성해, 티베트 대장경에만 있는 경전이나 논서를 산스크리트어로 직역해도 될 만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티베트 문자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우리나라가 산스크리트어를 쓰는 것도 아니고, 중국을 거쳐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을 받아들인 한자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남카 스님이 티베트어로 된 『물질세계』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 6년이 걸린 이유다. 

“티베트불교의 한글 번역은 한문을 알아야 하고, 한문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 번거로움이 있죠. 제일 어려운 단어가 ‘  ’입니다. 로마 문자로 하면 ‘rje’ 이고, ‘제’라고 발음하나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다른 단어와 붙어 복합어로 많이 사용되고, 의미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뜻으로 한문 번역하면 어떤 곳에서는 사(事)로 번역되고, 어떤 곳에서는 질(質)로 번역해야 했죠.” 

티베트인의 두 번째 자부심은 불교계의 오랜 학습법인 대론(對論) 전통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대론은 불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이뤄진다. 처음에는 같은 반 내에서 짝을 이뤄 1:1로 하지만, 점차 반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아 반 대항(?)이 이뤄지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학에 해당하는 과정에 이르면, 일반 수업은 오전에 1시간 내외로 끝나고 오전과 오후 내내 대론 수업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대론은 어느 정도까지 하셨어요?

“오전 8시에 시작하는 강의가 끝나면 시작하는데, 오후 내내 했죠. 저녁 기도 끝나고 다시 시작해, 새벽 1~2시에 끝날 때가 많아요.”

 

논쟁하다 보면 살벌해지기도 하나요?

“살벌하다는 표현은 쓰지 마세요(웃음). 대론은 월요일 하루 빼고 6일 내내 이뤄진다고 보면 됩니다.”

기도 의식 중 본존에 내(內)공양(낭최)을 올리는 모습
은평구에 위치한 삼학사는 티베트 불교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기도와 명상, 철학 공부가 이뤄진다. 

 

한국에서 20년

스님은 2004년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뎠다. “어떻게 오게 되셨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그냥 놀러 왔다”며 웃는다. 10개월 남짓 머물다 다시 인도로 넘어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왔다. 

스님은 한국에 머물며,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불교를 알리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티벳대장경역경원 연구초빙교수를 지냈고, 지금은 티벳하우스코리아 원장과 사단법인 랍숨섀둡링 대표이사로 분투 중이다. 우리나라에 『논리에 이르는 신비로운 열쇠』, 『심오한 중도의 새로운 문을 여는 지혜의 등불』, 『마음을 다스리는 보살의 수행법』 등 활발한 저작으로 티베트불교의 깊이를 전했다. 

달라이 라마의 일본 방문 등 티베트불교를 동아시아에 알리는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우리나라에 ‘티베트 하우스’를 만들고자 했고, 한국 불자들이 2008년 ‘달라이 라마 한국방문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때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달라이 라마는 한국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단다. 달라이 라마가 1959년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망명할 때, 가져간 티베트 대장경 두 질 중 한 질(동국대 경주캠퍼스 소장)을 우리나라에 기증하기도 했다. 

몇 차례 방한이 무산됐고, 어느 날엔가 달라이 라마는 “스님, ‘하우스’를 만들지 말고, 사원을 운영해 보세요”라고 권유했다. 그게 지금의 ‘삼학사(원)’이다. ‘삼학사(원)’도 달라이 라마가 지어 준 이름이다. 티베트어로는 ‘랍숨섀둡링’이다. ‘랍숨’은 계정혜 삼학, ‘섀둡’은 설명과 실천, ‘링’은 장소를 뜻한다.

달라이 라마와 남카 스님 __ 『물질세계』 봉정법회에서

스님, 혹시 삼학사에서 불교 논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죠?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코로나19 이전에는 했어요. 근데, 논리학 공부는 마주 보며 상호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잖아요? 인터넷으로 하기에는 너무너무 어려워요. 간헐적 요청은 있지만, 지금은 티베트 수행과 명상 위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화요일에는 기도와 명상, 수요일에는 밀교 공부, 토요일에는 철학 공부가 이뤄진다. 그래도 스님의 주요 목표는 ‘불교 과학철학 총서’ 번역에 맞춰져 있다. 다음은 ‘수행’과 ‘철학’이라고. 『물질세계』 번역이 6년 걸렸다면, 다음 책은 권당 2년 정도 예상한다.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물질세계』는 천문학이나 물리학을 배우면서 번역해야 했어요. 근데, 수행과 철학은 제 전공이니까 
훨씬 쉽겠죠?(웃음)”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