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꼽만큼도 불만 없이 살아온 흙쟁이

지헌(知軒) 김기철 도예가

2022-07-26     김남수
지헌(知軒) 김기철 도예가

놀라운 것은 
밝은 갈색을 띤 빛깔이다.
일찍이 다른 도자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희한한 빛이다.
산길에 이슬을 머금고 
누워 있는 가랑잎 같기도 하고, 잘 익은 배 같기도 한 
그 빛깔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했다.
__ 1995년 가을,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이 김기철 도예가의 도자기를 본 감상이다. 법정 스님은 어떤 빛깔에 반하셨을까? 김기철 도예가는 백자에 유약 바르는 것을 과감히 생략하고 도자기를 구웠다. 도자기 안쪽은 유약을 바르지만, 바깥쪽은 바르지 않았다. 그곳에서 “산길에 이슬을 머금고 누워 있는 가랑잎 갈색을 띤” 도자기가 나왔다. 

 

법정 찻잔

도예가는 색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 기법을 시도해보지 않았다”는 것에 의아해했고, “가마와 가마를 달구는 소나무, 그것도 육송만이 저 색깔을 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가스나 기름, 혹은 전기로 굽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1977년경, 영어 선생으로 재직하던 학교와 인연을 끝내고 곤지암으로 와서 가마에 불을 놓기 시작했다. 이름은 보원요(寶元窯). 도예가의 ‘끼’가 있었던지, 운이 좋았던지 곧 입소문이 났다. 가마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후 2~3년 지나 법정 스님이 느닷없이 방문했다.

스님은 도예가가 다기를 만들려면 직접 차를 마셔야 한다며, 찻잔의 형태와 차에 대한 안목을 일일이 지적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법정 찻잔’. 찻잔은 간결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찻잔을 잡는 손잡이, 입술 닿는 곳의 모양새가 특히 중요하다. 그렇게 유약을 바르지 않은 갈색빛의 찻잔이 나왔다. 보원요 가마에는 법정 스님의 자취가 그렇게 남아 있다.

 

보원요, 45년 역사

도자기 굽는 ‘가마’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을 터. 40여 년 동안 10번 넘게 수선하면서 불을 지폈다. 가마에 불 넣는 날이면 송파산대놀이, 남사당놀이, 김덕수 사물놀이를 했으며 공옥진, 김금화를 초청해 큰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45년 역사를 지닌 ‘보원요’가 근래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개발이 제한되던 곳인데, 전철이 들어오고 도시가 형성될 모양이다. 보원요가 그 계획안으로 편입됐다. 

“보원요가 사라지는 시절 인연에 불가항력이라는 걸 통감합니다. 다만, 여러 인연이 있던 가마를 남길 방법이 있었으면 합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 최수완 관장, 김수근 건축가만 아니라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 송광사 방장 현봉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과의 인연을 말한다. 90살 먹은 도예가의 눈과 몸은 ‘아쉬움’을 짙게 표현한다. ‘문화의 시대’이다. 도자기의 도시, 광주시의 보존 대책이 있었으면 한다.  

 

보원요 터가 곤지암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구역에 포함되자, 김기철 도예가는 ‘흙을 놓을 때’라 여기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보원요 터와 도예가를 소중히 여기는 스님들과 사람들은 “많은 예산을 써도 만들기 어려운 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영국박물관 등 다수의 내로라하는 기관에서 김기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며 “예술가의 공간을 살려 시민과 나누는 게 정말 공공을 위한 도시계획이 아니겠는가”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