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체크인, 템플스테이] 절에서 만났습니다

템플스테이 체험기 2. 강화 전등사

2022-06-28     최은미

아이와 함께 떠난 첫 템플스테이

아이가 열한 살이던 몇 해 전이었다. 여름이 막 끝나가던 9월 첫 주말에 아이와 둘이 백팩 하나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가족여행 중에 아이와 절에 들렀던 적은 많았지만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접수하고 아이와 둘이 절로 갔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왜 아이와 가는 첫 템플스테이 사찰로 강화도 전등사를 택했던 걸까. 아마도 집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도심은 아니고 템플스테이 후기와 시설이 좋은 곳을 찾다가 택했을 것이다. 이유를 대자면 더 댈 수도 있겠다. 전등사는 내가 좋아하는 신중도가 있는 곳이고, 가는 김에 아이와 초지진이나 고인돌에 들러보기도 좋고, 강화 보문사는 이미 많이 가봤고…

사실 큰 이유가 없었다. 나는 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났다는 것과 여름내 매달렸던 원고 마감을 마쳤다는 것, 무엇보다 딸아이와 둘이 단출하게 절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좀 설렌 상태였다. 안내 문자대로 내비에 ‘전등사 남문’을 찍고 출발할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그 주말에 내가 아이와 함께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어떤 순간들을 선물 받게 될지. 전등사라는 장소가 내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아이가 그 후로도 계속 전등사 템플스테이에 가자고 하게 될 줄도 몰랐다. 아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림. 김진이

 

윤이와 찬이의 만남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하면 참가자들과 1박 2일 동안 프로그램을 함께하게 된다. 이전에도 본 적이 없고 템플스테이가 끝나면 더 볼일이 없는 사람들. 나이와 성별과 지역과 하는 일이 다 다른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특정 장소에서 하루를 함께 보낸다. 서로 한 마디를 안 나눠도 이상할 게 없고, 스님과 둘러앉은 시간에 불쑥 낯선 이의 속 깊은 고민을 듣게 돼도 부담스러울 일이 없다. 연등행렬 거리에서 모르는 이들끼리 스스럼없이 손을 흔들며 지나치는 것처럼 템플스테이 자리에는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묘한 편안함과 조건 없는 호의가 있다. 그래서인지 템플스테이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내게 광장의 축제 현장에 잠깐 몸을 맡기고 올 때처럼 익명 속에 나를 숨긴 채로도 타인과의 유대감을 맛볼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 

그 주말의 전등사 템플스테이 참가자 중엔 어린아이가 둘이었다. 열한 살인 내 아이 윤 외에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홉 살 남자아이, 찬이 있었다. 수련복을 맵시 있게 입은 오십대 여성분들이 있었고 한국인 지인과 함께 온 외국 여성분도 있었다. 남녀 연인도 있었고 푸근한 인상을 주는 찬이의 엄마 아빠도 있었다. 

그림. 김진이

담당 스님과 함께 사찰을 둘러보고, 사물 타종을 해보고, 참선을 하고 단주를 만들고, 첫날은 프로그램 일정표대로 무난히 흘러갔다. 아이가 지루해할지 모른다는 걱정만 아니었다면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쪽으로 계속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시간보다 중간중간 꿀처럼 끼워진 아이와의 자유시간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윤이와 둘이 우리의 방사인 적묵당 3호의 이불 위를 뒹굴다가, 다원에 가서 냉녹차와 빙수를 시켜 먹고, 기와에 소원을 쓰는 윤이의 모습을 찍으며 프로그램과 자유시간 사이를 오갔다. 경내에서 찬이네 가족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절에 와서까지 사교 에너지를 끌어올릴 의욕도 이유도 없었기에 희미한 미소만 띠며 지나쳤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좀 달랐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어른들만 있는 참가팀에서 또래가 한 명 더 있다는 게 윤이와 찬이에게는 금세 감지됐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둘은 먼저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하고 서로 탐색만 하다가 안타깝게도 첫날을 흘려보냈다. 둘이 친해진 건 다음 날 아침, 삼랑성 포행길에서였다. 

 

삼랑성 포행길에서 마주친 ‘이 순간’

공양과 운력을 마친 이른 아침, 일행들은 스님과 함께 삼랑성 동문 쪽으로 포행길에 나섰다. 나는 전등사가 얼마나 아름다운 성곽으로 둘러싸인 절인지 그날 아침에야 비로소 실감하게 됐다. 동문 오른쪽 길로 올라가자 석성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너른 풀밭이 나왔다. 팔에 감기는 공기가 여름과 확실히 달랐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어떤 불필요한 습기도 먼지도 끼어 있지 않은 초가을 아침 공기가 더없이 청량했다. 참선과 단주 만들기를 할 땐 조용히 숨만 쉬던 윤이와 찬이는 물을 만난 물고기들처럼 풀밭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줄기가 단단한 풀줄기 하나씩을 뜯어 들고 마주 서서 풀 끊기 게임을 했다. 줄기를 엇갈려 당기다 하나가 끊어지면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들려왔다. 그러다 금세 다른 풀줄기를 찾아 풀밭을 누비고, 다시 마주 서서 풀을 엇갈려 당기고, 몸을 굽히며 흩어져 풀을 찾다가 다시 서로한테 달려갔다. 

그림. 김진이

스님이 맞은편 산 중턱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꼭대기로 올라가면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 나온다고. 올라갈 사람은 올라가고 절로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여기에서 흩어지자고. 아이들 둘은 여전히 풀줄기 하나씩을 손에 쥐고는 동문을 지나 맞은편 산중턱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올라가기에 보호자들도 천천히 길을 올랐다. 성곽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 나무 계단을 한참 오르자 저 아래로 바다와 마을이 펼쳐졌다. 

아마도 땀이 꽤 흘렀을 것이다. 숨도 찼을 것이다. 나는 성곽에 기대앉았고, 땀과 숨과 바람에 잠시 나를 내맡겼다.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갔다. 기분 좋은 정적 사이로 저만치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윤이가 이쪽을 보며 외쳤다. 

“엄마, 찬이가 동물 소리를 내니까 저 밑에서 개가 컹컹 짖었어.”

각자 멀찍이 흩어져 앉아 있는 일행들의 모습과 나란히 선 아이들의 뒷모습을 일별하고 나는 나만의 정적 안으로 돌아왔다. 다시 짧은 시간이 지났고, 바람이 불었고,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이 순간을 아주 오래 기억하게 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람 한 줌에도 나를 편하게 내맡겨본 적 없이 살아왔다거나 내가 나를 얼마나 예민하게 혹사시키며 내달려오기만 했는지 같은 생각들은 돌아온 뒤에 문득 든 생각이다. 그 순간엔 내가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충분했다. 

후에 캐나다 작가 레이첼 커스크의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수도원을 보려고 딸과 함께 협곡으로 내려갔다가 폭포 옆의 웅덩이에서 목욕을 하게 된 한 인물은 웅덩이에 얼굴만 내놓은 채 한없이 떠다니던 순간을 회상하며 말한다. 

‘그건 너무 밀도가 높은 순간들, 그 후로도 어떤 식으로든 계속 그 안에서 살게 될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이었어요. 다른 건 다 잊어버리더라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순간들에 딱히 무슨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사진. 최은미

포행을 마친 뒤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일정인 스님과의 차담 시간에 주지스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뭔 줄 아느냐고. 아이들이 뭐라 뭐라 얘기하자 스님이 맞다, 맞다, 하시고는 덧붙였다. 동물은 약속을 하지 못하지만 인간을 약속을 하는 존재라고. 동그란 안경을 쓴 찬이가 한과를 집어들고는 “누나, 우리 나가서 놀까?” 말했고, 윤이가 스님 눈치를 살피며 “끝나고 놀자.” 속삭였다. 헤어지는 날에야 친해진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조금 더 주기 위해 회향 후 찬이의 엄마 아빠와 함께 다원에서 차를 마셨다. 

윤이가 템플스테이 사은품으로 받은 수첩을 한 장 뜯어 거기에 자기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자 찬이는 그걸 그 자리에서 다 외워버렸다. 그러곤 자기는 중학교 1학년이 되는 5년 후에야 휴대폰이 생긴다는 말을 했다. 윤이가 템플스테이에서 돌아와 ‘5년 후에 만나’라는 글을 썼던 걸 보면 어쩌면 윤이와 찬이는 어른들이 차를 마시는 동안 그게 약속이라는 의식도 없이, 서로 약속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년이면 그때로부터 5년이 된다. 나는 그 후로도 윤이와 윤이 친구를 데리고 전등사 템플스테이에 갔다. 어쩐지 다른 절이 아니라 전등사로 마음이 갔고, 하루 나들잇길에 들러서는 볼 수 없는 것들, 전각 지붕이 어스름에 서서히 덮여가는 순간이라든가 해가 뜨면서 성곽을 따라 빛띠가 둘러지는 걸 보게 되는 순간을 많이 좋아하게 됐다. 

다음 템플스테이는 어느 절로 갈까 물으면 윤이는 또 전등사라고 말한다. 전등사는 여러 번 갔으니까 다른 절을 가볼까? 하면 말한다. 지난번에 친구랑 갔을 때 스님과 같이 쑥을 심어놓고 왔기 때문에 그게 잘 자랐는지 봐야 한다고. 이유는 얼마든지 많고, 나는 언제든 환영이다. 

윤이가 스무 살이 되고 스물다섯 살이 되어도 나는 윤이와 전등사에 가겠지만, 윤이는 알까. 내게 전등사와 삼랑성은 좀처럼 다시 만나지 못할 어느 한 순간을 계속 살게 해주는 곳이라는 걸. 온수리시장으로 내려가는 팻말이 있고 개가 컹컹 짖던 그 산중턱에서 나의 윤이는 언제나 열한 살이라고. 

언젠가 윤이와 찬이가 자라 유년의 템플스테이를 떠올릴 때, 풀 끊기 게임을 하며 놀던 전등사를 어떻게 기억할지, 나는 그 애들의 다음 얘기가 못내 궁금하다.  

 

최은미
소설가. 2008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눈으로 만든 사람』,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중편소설 『어제는 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