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체크인,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의 맛, 맛, 맛!

템플스테이 체험기 1. 사찰음식

2022-06-28     진옥현

풀떼기 음식? No! 사찰음식의 진면목

사찰음식은 풀떼기라 먹을 게 없다, 배가 쉽게 꺼진다는 편견이 있다. 맛없다, 허기진다는 다른 표현일 거다. 노(No), 모르는 말씀! 풀떼기 자연식으로 먹는 즐거움을 찾고 덤으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 현대인의 말 못 할 고민인 소화불량, 화장실 문제 해결까지. 고만고만한 나물, 채소뿐인데 매번 입맛 당기는 비결은 뭘까? 오신채는 물론 화학조미료를 안 쓰고도 말이지.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휴식형, 체험형으로 확장되고 사찰을 찾는 사람들도 늘면서 음식 맛도 집밥 못지않다. 절밥깨나 먹은 신도라면 어느 절에 음식이 맛있더라 그런 소문쯤은 익히 안다. 물론 밥맛 쫓아 절에 가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거기 김치찜이 끝내줬는데 이번에도 나올까?’ 그런 생각 정도는 한다. 인상에 남은 음식이 머물 당시의 단상과 함께 따라올 때는 말이다. 산초장아찌의 쌉싸름한 단맛, 진짜보다 입맛 돋우던 가짜탕수육(버섯탕수육), 엄마 손맛 떠올리게 했던 동치미 등…

백양사 천진암에 갈 땐 호박 식혜를 연상하고, 해인사 삼선암에 갈 땐 수제 김밥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사찰요리의 대가로 글로벌 스타가 된 천진암 정관 스님은 십수 년 전 나를 사찰요리에 반하게 한 장본인이다. 직장을 관두고 요리사로 진로를 바꿔볼까 고민할 정도였다. 오십이 넘으면 손맛이 바뀐다는 말에 포기하고, 취미로 해볼까 하는 의지도 직장생활에 쫓겨 과거가 되고 말았다. 

최근에 건강이 나빠져서 이십 일간 해인사에 머물게 됐다. 먹고, 쉬고, 멍때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평소 출근에 쫓겨 아침은 굶기 일쑤고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한 끼 때우는 거지 별 기대가 없다. 하지만 사찰에서는 다르다. 서두르지 않고 먹는 거에만 집중하는 단순한 시간이지만 왠지 기다리게 된다. 서너 가지 이상 나물 반찬과 국, 종종 떡과 과일 디저트가 나오는 사찰식 뷔페. 먹을 만큼 개인 접시나 대접에 덜어다 먹는다. 가끔 길게 줄이 늘어서면 오늘 찬은 뭐가 나왔나 궁금해서 기웃하기도 하니 내가 공부하러 온 건지 밥 먹으러 온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물론 야채는 걸러내고 고기만 골라 먹는 사람에겐 예외다. 야채 샐러드마저 온갖 소스로 맛을 내야 겨우 먹을 둥 말 둥 할 텐데 말이다.

적당히 먹어야지 다짐해도 막상 음식 앞에 서면 결심은 흔들린다. 수행 공부를 하면 욕심 끊어지는 순서가 식욕, 수면욕, 성욕, 명예욕이라는데, 나는 첫 장애물부터 걸린다. 소리 없이 소식하는 수행자들을 보면 무심한 듯한 태도부터 범접 불가다. 뷔페식은 발우공양은 아니지만 개인 접시에 담은 음식은 안 남기고 다 먹는 게 불문율이다. 다행인 건 배부르게 먹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음 끼니때까지 대충 소화가 되니까.

소화가 안 되면 자진해서 울력, 즉 설거지를 하면 된다. 사찰식 뷔페가 좋은 점은 손님이 많아도 각자 밥과 찬을 떠서 식사하고 끝나면 쓴 식기는 자기가 씻어 놓는 거다. 제사나 큰 행사를 치를 때 합리적이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자기들끼리 조를 짜서 돌아가며 설거지하기도 한다. 안 그러면 스님이나 공양주 보살님이 공양간을 벗어나지 못할 거다. 그런 사정으로 조용히 설거지를 자처하는 보살들을 자주 본다. 

문제는 매끼 셰프의 식단일 때다. 해인사 일대에서 삼선암 주지스님의 요리 솜씨는 소문이 났다. 오신채는 물론 화학조미료를 일절 안 쓴다. 맛은 최고급 셰프의 성찬. 해인사에서 직접 기른 배추로 만든 김치 하나로도 밥 한 그릇 뚝딱인데, 매번 변주돼 나온다. 김치, 두부와 버섯을 넣은 김치찜이나 김치전골, 시래기찜, 뭇국 등이 심심찮게 나온다. 특식으로 나오는 무전, 콩가스(콩으로 만든 돈가스), 수제 김밥까지 입 안이 황홀해진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이런 건가? 

이러니 공양 때마다 번뇌에 시달린다. 비우러 와서, 쉬러 와서 음식 욕심이 웬 말인가!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나중에는 결심 따위 잊고 일단 먹는다. 그래도 공양주 보살님이 많이 먹어라, 찬이 없어서 어떡하냐 그런 겸손한 말씀을 하신다. “아휴 집밥보다 훨씬 맛나요. 최고예요.” 엄지척!

여기에 공양 후 마시는 곡물로 끓인 물은 구수하다는 말이 아깝다. 아홉 가지 곡물을 넣어 만든다고 하니, 물이 아니라 영양제인 셈. 텀블러에 담아두었다가 아침 공복에 마시니 목을 타고 퍼져가는 기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알싸하다. 

매번 배부르게 먹지만 오히려 뱃살이 빠지고 슬림해진다. 입은 호강하고 몸은 건강해지는 게 사찰음식의 진면목인가 싶다. 사찰에서 직접 키운 고랭지 채소와 채취한 산나물로 만든 그야말로 화학조미료 일도 없는 유기농 자연식. 공기 좋고 에너지 좋은 산사에서, 긴장할 일도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함께 식사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자연인이 된다. 이게 바로 건강 조미료이자 슴슴닝닝한 쓴맛을 깊은 단맛으로 바꾸는 비법이 아닐까? 

무엇보다 음식을 대하는 스님들의 자세도 한몫한다. 삼선암 주지스님만 봐도 그렇다. 평소 온화하지만 막상 음식 준비에 들어가면 진지한 표정에 매의 눈이 된다. 뚝딱뚝딱 금세 요리하며 차려 낸 밥상은 감탄사가 절로 난다. 공양간은 요리도구나 그릇들이 정갈하게 정돈이 잘 돼 있다. 여러 사람이 공용으로 쓰지만 누가 써도 헷갈리지 않게 명찰을 달아 쓰고 제자리에 놓게 돼 있다. 하루 삼시세끼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반복하는데도 주방 싱크대는 물기 없이 말끔하다. 어느 세계나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되는 건 아닌 거다. 

주로 일반 신도나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공양간에 가는 시간은 밥때로 한정된다. 나는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가끔 깰 때가 있는데, 커피를 마실 때다. 요즘은 절에서도 차 대신 커피를 마신다. 믹스커피가 비치돼 있고, 원두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밥 먹고 나서 습관적으로, 때론 기분 나른할 때 신도들끼리 모여서 커피 한잔하면서 수다를 떤다. 

간혹 특별대우로 스님들이 커피를 내려주신다. 그것도 커피콩을 갈아서 드립으로다가. 연하게? 진하게? 주문대로 만드니 옆에 앉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긴 주전자 주둥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휘휘 돌며 후원 가득 커피향이 퍼진다. 커피 맛은 말해 뭐해? 블루보틀 안 부럽지. 폐부까지 시원해지는 산 공기도 함께 마시는 힐링 커피. 떠나고 싶어 산속에 들어와도 사회에서 멀지 않은 안도감, 커피 덕분에 격리된 기분이 안 드는 이율배반, 커피가 부리는 마술이 아니고 뭘까!

그림. 김진이

 

슴슴하면 슴슴한대로

사찰식 식문화는 제대로 먹는 방식을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먹는 순간을 즐기고, 매사 감사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회복하는 의식. 천천히, 느리게 씹으면서 먹는 데 집중하고 음식이 목에서 가슴, 배로 퍼지는 기분을 느껴 본다. 속도가 중요하다. 소처럼 오래 씹고 천천히 넘기는 거다. 입안에 음식 맛이 골고루 스밀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먹는 게 처음엔 어색하지만 익숙해지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느긋해진다. 때운다는 기분은 사라지고 평온해진다. 자연스레 소화도 잘되고 화장실 가는 게 편해진다. 

처음 내가 사찰을 접한 건 마곡사 템플스테이였다. 절에 가면 쉴 수 있다는 친구 말만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스님 보고 합장할 줄도 모르던 생초보였는데, 첫날부터 발우공양이었다. 게다가 매끼를. 엄격하기까지 했다. 거의 굶다시피 했다. 삼일 정도 지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공양 후 그릇 치우러 가니 공양주 보살님이 “배고프죠?” 하면서 떡 한 개를 손에 쥐여줘 얼른 입에 넣은 게 생각난다. 

십 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엄격한 발우공양은 피하고 싶다. 열 명이든 백 명이든 먹는 속도를 맞추고, 빈 그릇 닦은 물을 모아서 고춧가루 한 개라도 나오면 그 물을 다 같이 나눠 먹어야 하니까. 대신 약식 발우공양은 자발적으로 먹고 난 빈 접시에 물을 부어 남은 음식 찌꺼기까지 말끔하게 마신다. 비록 내가 쓴 그릇이지만 그걸 헹궈낸 물을 마시는 게 어쩐지 더럽다고 느낀 적도 있다. 하지만 평소 발우공양을 떠올리면 밥 한 톨도 소중하게 여기고, 잔반을 안 남기게 된다. 

발우공양이든, 뷔페식 밥상이든 방식은 달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대로 인 것 같다. 사람은 시간 속에 산다는 말처럼 흐르는 대로 따를 뿐.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경계를 안 내려 한다. 먹는 거 자체에 집중하는 그 순간처럼 나를 위해 먹고, 여유를 찾고 그러다 보면 자비심도 생기고. 인생 쓴맛도 단맛도, 슴슴하면 슴슴한대로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그렇게 지금 이 시간을 사는 거다. 

 

진옥현
이화여자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신용카드사 홍보 담당, 방송국 드라마 작가를 거쳐 현재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시장 인터뷰 자료, 강연 글을 썼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졸업 후 문화관광 분야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드라마 <유정> 공동 집필, 한국방송작가협회 작품집 『신사동 블루스』와 서울시 동인지 『이 놈 봐라』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