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歸去來辭)

선심시심

2007-09-17     관리자

少無適俗韻 性本愛邱山
소무적속운 성본애구산

誤落塵網中 一去十三年
오락진망중 일거십삼년

 鳥戀舊林 池魚思故淵
기조연구림 지어사고연

開荒南野際 守拙歸園田
개황남야제 수졸귀원전

方宅十餘描 草屋八久間
방택십여묘 초옥팔구간
楡柳蔭後簽 桃李羅堂前
유류음후첨 도리나당전

曖曖遠人村 依依墟里煙
애애원인촌 의의허리연

狗吠深巷中 鷄鳴桑樹顚
구폐심항중 계명상수전

戶庭無塵雜 虛室有餘閒
호정무진잡 허실유여한

久在樊籠裏 復得返自然
구재번롱리 부득반자연

젊어서부터 세속 환경에 맞지 않고 성격이 본래 산을 좋아하였으나, 잘못하여 풍진(風塵)의 그물에 떨어져, 어느덧 13년이 지나갔다.
철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연못 속의 물고기는 자라던 못을 생각한다.
남쪽들(野) 기슭의 황무지를 일구고 전원으로 돌아가 우직(愚直)하게 살리라.
반듯한 3백 평 대지 위에, 초가집 8,9칸을 지으니, 뒤뜰에는 느름과 버들이 처마에 그늘지고 앞뜰에는 도화와 자두가 즐비하게 피어 있다.
멀리 인가(人家)들이 시야에 아른거리고, 한가한 마을엔 연기가 허공을 나른다.
골목 안 깊숙이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뽕나무 가지 뒤엔 닭울음소리 요란하다.
뜰 안을 말끔히 치워 깨끗하고 방안은 비어 더욱 한가롭다.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혀 있던 나는 이제 자연의 품으로 돌아올 수가 있게 되었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가운데 제1수에 해당하는 귀원전거(歸園田去) 20행이 다.
도잠(陶潛) 자신이 본의 아니게 오랜 세월 구속에서 해방되어 자연으로 돌아온 환희를 노래 하고 있다.
동진(東晋) 시대에 몰락한 사족(士族)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마침 군벌들이 대두하여 서로 흥망성쇠를 겨루는 판에 안으로는 농민봉기가 일고 밖으로는 외세 침략이 있어 백성이 도탄 에 빠져 있던 그토록 어지러운 시기를 살아야 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선비의 뜻을 세워, 벼슬 길에 나아갔으나 '나라에 도(道)가 없으면 물 러나야 한다' 는 유가(儒家)의 가르침에 따라 전원으로 돌아와 낫과 호미를 잡고 농사로 수 분지족하였다.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스스로를 '오류(五柳) 선생'이라 부를 만큼 그는 농촌 과 인연이 깊다. 41세에 관직을 물러나면서 그의 퇴관(退官) 선언이 되는 귀거래사는 그 사 람과 더불어 어린 기억 속에 오래 간직되고 있다.
"나는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향리(鄕里)의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힐 수는 없다."고 하며 상 관의 출영을 거절, 드디어 사표를 던졌다. 63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에게 정절(靖節)이 라는 시호가 내려진 것은 그 사람을 말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시대의 시인 묵객들이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궁핍과 가난 속에 생애를 마쳐야 했다. 이승을 떠나기에 앞서, 그가 지은 이른바 자제문(自祭文)은 "도자(陶子)는 장차 객사(客舍)를 떠나 영원히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인생살이 참으로 험난하구나. 죽은 뒤에 저승은 어떠할까. 아! 슬프도다!" 이리도 애절하여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언젠가는 우리도 도잠과 더불어 무상한 길손을 청산하고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가게 되리라.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