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소확행#] 마당엔 푸른 바다, 도량엔 부처님

‘코로나19’ 떠난다! ‘바다로, 저절로’ 떠나자!

2022-06-08     최호승
해광사. 남해와 동해의 경계, 부산 기장군에는 해광사가 있다. 그리고 바위 위 홀로 참배객을 기다리는 용왕단이 있다. ⓒ해광사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 오세영, 〈바닷가에서〉 전문

죽도암. 관음전이 전부인 죽도암은 꼿꼿한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감추사

5월이 떠났다. 봄날이 연출한 연초록 ‘신록의 바다’는 이제 없다. 아쉬워할 새도 없이, 6월의 초여름이 신록의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채웠다. 진짜 바다다. 마침 코로나19가 떠날 채비다. 방구석 1열에서 감상하던 랜선여행도 끝물이다. 6월의 초여름으로, 진짜 바다로, 저절로 떠날 때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다. 동쪽, 서쪽, 남쪽 어디로 달려도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셀 수 없다. 여기에 사찰이 빠지면 섭섭하다. 기암절벽, 바다, 푸른 바다, 일출과 일몰 등 갖가지 풍광에 그림처럼 앉은 사찰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관음도량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강화 보문사는 패스! 6월의 초여름이 초대 엽서를 띄운 지 오래다. 맞다! 동해, 서해, 남해를 품에 안은 부처님 도량이 기다린다. 

휴휴암

동해-감출 수 없는 푸르름

동해는 감출 수 없는 푸른 빛깔을 가지고 있다. 물이 맑고 바다 밑 모래가 주로 하얀 모래이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단조로운 해안선은 차 안에서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여행의 묘미는 이게 끝이 아니다. 고즈넉한 사찰 참배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강릉 괘방산 중턱에는 천년고찰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 율사가 처음 세웠고, 수다사(水多寺)라고 했다. 자장 율사가 석탑 3기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했다는데, 그중 석탑 1기만 남아있다. 약사전 앞에 서면 오층석탑 너머로 푸른 바다가 일렁인다. 석탑 사이로 일출까지 본다면 더할 나위 없다. 

등명낙가사

에메랄드빛 여름 바다도 함께 보고 싶다면, 죽도암(竹島庵)과 가본 사람만 안다는 숨겨진 사찰 감추사를 참배하면 된다. 인구해변과 죽도해변 사이에 죽도(竹島)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 있다. 지금은 육지인데, 대나무가 울창해 죽도다. 돌아보는 데 30분이면 넉넉하다. 소나무를 곁에 두고 산책로 따라 걷다 죽도 정상에 있는 죽도정에 오르면, 인구해변을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다. 바로 옆이 죽도암이다. 도량은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전각, 관음전이 전부다. 바닷가 절 만행을 월간 「불광」에 글로 남긴 승한 스님은 “죽도암은 곤궁하지만 곤궁하지 않은 조선 선비 같은 기개와 품격이 느껴진다”라고 했다. 양양 홍련암에서 절제된 관능미를 봤다면, 선비의 기개와 품격이 궁금하다면, 이곳 양양 죽도암이 제격이다. 

동해 감추사(甘湫寺) 역시 단출하다. 묵호역에서 4km 떨어져 있는데, 손바닥만 한 공간에 도량이 자리했다. 작은 공간에 관음전과 삼성각, 용왕각, 요사채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고생하다 여기 동굴에 불상을 모시고 3년간 정성껏 기도해서 나았다는 전설이 서린 석굴이 있다. 바로 아래 감추해수욕장이 있을 정도로 명소에 자리하고 있다. 

넉넉한 바라를 바라보며 ‘쉬고 또 쉬어가는’ 양양 휴휴암(休休庵)도 죽도암과 가까운 곳에 있다. 연화대라 불리는 너럭바위와 그 입구의 작은 해변, 오랜 세월 파도가 만든 기기괴괴한 바위들이 인상적인 도량이다. 

간월암. 간월암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서해-붉은 낙조를 부른다 

서해는 수심이 얕다. 밀물과 썰물 차이가 커서 너른 갯벌이 펼쳐지는 곳이다. 동해보다 빛깔은 푸르지 않지만, 해 질 녘 수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붉은 낙조가 일품이다. 서해에는 바위섬 자체가 절 그 자체인 곳이 있다. 바닷길이 열려야만 갈 수 있는 도량, 서산 간월암(看月庵)이다. ‘달을 보는 암자’라는 이름처럼 간월암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고려 말 무학 대사가 창건할 때 이름을 무학사라 했다가, 쇄락한 이곳을 만공 스님이 중창하면서 간월암이라고 했다. 절은 관음전, 산신각, 용왕각, 범종각이 아담하게 모여 앉았다. 관음전을 등지고 서면 고요한 서해가 앞마당에 펼쳐진다. 

낙조에서 김제 망해사(望海寺)를 빼놓을 수 없다. 기암괴석 벼랑 위에 망망대해가 일렁이는 모습이 눈에 담기는 곳이다. 보광명전, 낙서전, 칠성각 그리고 4개의 부도가 있는데 범종루가 유명하다. 새만금 간척지로 바닷물을 막았지만, 지는 해가 범종루에 걸리는 낙조는 여전히 일품이다. 수령 400년을 넘긴 보호수, 팽나무도 볼거리다.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에는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는 물론 아름다움의 화룡정점, 도솔암(兜率庵)이 있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권의 명량대첩 승전 이후 왜구가 불태웠고, 다시 암자가 세워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2002년 월정사의 법조 스님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도솔암 터가 꿈에 3일 동안 나타났고, 이후 지은 게 지금의 도솔암이다. 도솔암 입구에서 제법 숨이 차는 1km 길을 걷다 보면, 장관을 만날 수 있다. 기암괴석과 탁 트인 남도의 평야와 다도해 모두 도솔암 앞마당이다. 

망해사. 지는 태양이 범종루에 걸리는 모습이 일품이다. 
도솔암

남해-섬과 바위 그리고 바다 

남해는 서해처럼 섬이 많다. 약 2,000개의 섬이 있는 다도해(多島海)다. 거제도에서 여수까지 곳곳이 한려해상국립공원이며, 여수시에서 신안군까지 곳곳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그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고, 천혜의 자연이 뿜어내는 절경 속에 고찰이 많다. 

남해하면 흔히 보리암을 떠올린다. 하지만 경남 고성에서 남해를 내려다보는 고찰 문수암도 보리암 못지않게 유서 깊은 도량으로, 여수 향일암·남해 보리암과 함께 남해안 3대 기도도량이다. 고성 무이산 바위 곳곳에 전각이 자리한 문수암은 신라 성덕왕 5년(706) 의상 스님이 창건했다. 산이 수려해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였다. 화랑의 전성시대에는 국선 화랑들이 무이산에서 수련했다고 전한다. 문수암은 의상 스님과 만난 문수와 보현보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 문수상이 뚜렷이 보인다. 무엇보다 문수암에서 빙 둘러 앞을 내다보면 수려한 산세와 한려수도가 그림처럼 내다보인다. 

해동용궁사 ⓒ해동용궁사

남해와 동해 경계에 있는 부산 기장군에도 바다를 마주한 바위 위에 도량이 있다. 기장군은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일출명소라는 오랑대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사찰이란 별칭이 붙은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가 있다. 나옹 스님이 이 자리에서 “푸른바다로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에 복을 받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며 토굴을 짓고 정진했다는 말도 전한다. 최근 구례 화엄사 말사로 등록된 해동용궁사는 경내를 새로 정비하면서 관광사찰에서 기도와 수행, 성지순례 도량으로 사격을 높이고 있다.

오랑대 일원에 조성된 오랑대공원 입구에는 작고 소박한 해광사(海光寺)가 자리했다. ‘부처님 말씀이 바다처럼 넓고 깊어[海]’ ‘중생의 길을 밝히는 빛[光]’이라는 뜻의 사찰이다. 오랑대공원은 공원이라지만 특별한 시설물은 없다. 하지만 고산 윤선도가 푸른 바다와 산세의 절경에 취해 시를 읊을 정도란다. 그래서일까. 바다를 바라보면 기암절벽 위에 우두커니 있는 법당 한 채가 있는데, 바로 용왕단이다. 신심 깊은 신도뿐 아니라 사진작가에게도 핫스팟이다. 

기장은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이라 물살이 세서 해안 절경은 물론 생동감 있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더구나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나무만 116그루에 달하는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15만 7,000여 평의 숲에 있어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해광사. 부처님 말씀이 중생의 길을 밝히듯, 용왕단 옆 뜨는 태양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해광사

시인 오세영은 〈바닷가에서〉에서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라고 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면 아득히 지는 일몰을 봐도 좋다”고 했다. 또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도 바닷가에 있다”라고 노래했다. 그동안 마스크 속에 감춰왔던 미소를 숨길 필요가 없다. 6월, 여름, 바다 그리고 저절로 가면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도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