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진정한 사부에겐 비밀이 없다

[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46)]

2022-06-01     현안 스님
영화 <일대종사> 스틸컷

여러분들은 무술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무술 영화에 보면 마스터가 학생에게 제일 중요한 기술을 하나 감춥니다. 그래서 만약 학생이 배신하고 마스터를 치려 하면, 그때 이 비밀스러운 기술, 필살기를 써서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영화에서만 그런가요? 전 무술은 못하지만 무술 영화에 보면 이것이 주요 레파토리인 듯합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선 수행을 하면서 쿵푸 영화가 더욱 흥미롭게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너무 잘 만들어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보통 계승자로 점찍어놓았던 학생이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지막 한 동작을 남겨놓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 가차 없이 그 배신자를 죽여버립니다. 심지어는 영화 <쿵푸 팬더>에도 이런 맥락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영화 <쿵푸팬더>의 주인공 포. 포는 쿵푸 마스터가 되기 위해 시푸 사부에게 훈련받는다.   

혹시 <쿵푸 팬더>를 보셨나요? 그 영화에 보면 시푸(사부)가 ‘비밀의 문서’를 숨겨놓지 않았나요? 보통 제자가 둘 있습니다. 한 학생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리고 사부가 나와서 “너희는 내 제자다. 너희는 내가 뭘 아는지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사부님이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한 가지가 남아 있다. 그건 비밀이다. 왜냐면 언젠가 너희가 세계 일인자가 되고 싶다면 날 배신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선의 훈련에서는 그런 관습이 없습니다. 사부들이 뒤에 아무것도 감추지 않습니다. 절대 감추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승의 선(禪) 수행에선 선지식이란 비밀스러운 개념이 있습니다. 오직 선에서만 그런 게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나요? 왜냐하면 선에선 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쿵푸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쿵푸를 합니다. 그리고 결국 세계 일인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선의 세계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선지식은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싶어 합니다. 전 그렇게 들었습니다. 선지식은 전부 가르쳐주고 싶지 않아 한다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식은 아는 것을 다음 세대로 넘겨줘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쿵푸팬더>의 포(좌)와 시푸 사부.

그래서 우리는 그를 조사(祖師)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대승에 조사라고 불리는 개념이 있습니다. 대승에서 우리는 조사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조사는 그가 아는 모든 것을 전수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물을 다음 세대에게 확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들은 절대 뒤로 감추지 않습니다. 그런 정신을 갖고 있으므로 그들은 여러분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만 있다면, 그게 누구이든 가르칩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태국인이든, 스위스인이든, 한국인이든 차별하지 않습니다. 조사 스님들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누구든 이해할 수 있다면 훈련할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어려운 시험을 줄 것입니다. 그 시험에 통과하면, 그건 여러분이 그들의 가르침을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때 다음 시험, 그다음 시험, 또 다른 시험을 줄 것입니다. 그게 그들이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진전하면 할수록, 시험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계속 더 어려워집니다. 그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그들은 뒤로 감추지 않습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학생에겐 무슨 일이 생길까요? 그때 스승님이 다 안 가르쳐 준다고, 뒤에 뭘 감춘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걸 해내지 못하고, 다루지 못한 것은 바로 학생입니다. 여러분이 시험에 통과만 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더 어려운 시험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부는 학생에게 감출 게 없습니다.

영화 <쿵푸팬더> 스틸컷.

전통적으로 선을 가르치는 스승은 제자들을 호되게 훈련합니다. 아주 힘든 시험을 줍니다. 그리고 그들 중 준비된 학생들은 산으로 보내서 선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모두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남보다 더 낫다고 느낄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늘 시험을 겪는 중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선에서는 스승이 여러분에게 모든 걸 가르쳐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은 아닙니다. 선 수행에선 비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설명해주는 걸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걸 비밀로 여깁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알기 쉽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선지식을 만나서 스승님이 안 가르쳐주실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받을만한 그릇이 되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진정한 선지식은 모든 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선지식을 만났을 때, ‘난 이미 불교에 대해서 충분히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우리는 늘 더 겸손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지식을 만났을 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승의 복을 지으십시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출가 전 2012년부터 영화(永化, YongHua) 스님을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매년 선칠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명상 모임을 이끌며 명상을 지도했으며, 2019년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했다. 스승의 지침에 따라서 2020년부터 한국 내 위앙종 도량 불사를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상주하며,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