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시작과 끝, 경주 남산] 한동식 석장

1,300년 전 신라의 장인정신 잇는 외동석재 대표 한동식 석장

2022-04-28     송희원
“우리 일은 돌 속에 부처님을 찾는 거예요. 원래 돌 속에 계셨는데 누구도 보지 못했던 그 부처님의 형상을 정과 망치로 찾아 들어가는 거죠.”

오늘날까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은 불상 130여 구, 탑 100여 기, 연화대 19점 등 700여 점에 이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위에 부처를 새기는 소리가 골골마다 울려 퍼졌을 1,300년 전 남산. 오래전 신라인들의 정과 망치질 소리가 이명(耳鳴)으로 들리는 듯하다. 신라 석공의 정신을 이어나가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남산 석으로 불교조각을 하는 외동석재 대표 한동식 석장을 찾았다. 

 

부탁하기 좋은 남산 부처님 

경주 남산 인근 외동읍 말방리에는 불교조각부터 건축·토목공사 등 규모가 큰 공사를 하는 석재전문건설기업 외동석재가 있다. 이곳은 2005년 경상북도 기능경기 석공예 부문 금상, 2015년 경상북도 석공예 부문 최고장인에 선정된 한동식 석장의 작업장이다. 진입로에서부터 남산에서 채집한 거대한 화강암 석재가 차곡차곡 쌓여있고, 불그스름한 빛을 내는 조각상들이 일렬로 늘어서 햇볕을 받고 있다. 작업장 안에서는 한창 돌을 가는 그라인더 소리와 돌을 부딪치는 소리가 쉴새 없이 울린다.

경주 포석정이 고향인 한동식 석장은 1969년 16살이 되던 해 우연히 석재 작업을 보고 석공이라는 직업에 매료됐다. 무보수 수련생으로 시작해 1972년 외동석재를 설립하고 5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손에서 이 일을 놓은 적이 없다. 53년 내공의 석공 손에서 복원되고 보호된 문화재는 월정교, 읍성, 불국사 석가탑 해체복원 및 의성 탑리 5층석탑, 그리고 경주 국립박물관 석조유물 내진공사 등이 있다. 

조각 중인 원효대사상 

최근에는 불국사 석가탑을 만들었다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경주 외동읍 괘릉리 영지저수지 영지설화공원 조성작업에 한창이다. 특히 석공 최대 명인이었던 아사달 뜻을 기려는 추모탑 ‘아사달의 혼(아사달 아사녀 사랑탑)’ 건립공사 때는 후원회장으로 나서 전국 석공과 경주시로부터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한동식 석장은 이렇게 굵직굵직한 복원 작업과 건립공사를 맡을 수 있었던 이유를 국내 최고 수준의 석재분야 장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석산이 없는 경주 남산에서 전국의 석공예 장인들이 찾는 경주 남산 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전국의 많은 석장들이 경주 남산 석을 찾아요. 질감과 색 자체가 한국인의 불그스름한 얼굴과 닮아서 따뜻하고 친근감 있어요. 무슨 부탁을 할 때 얼굴빛이 하얀 사람하고 ‘부뚜그레한(발그레한)’ 사람이 있으면, 뭔가 ‘부뚜그레한’ 사람한테 부탁하기가 쉽잖아요. 경주 남산 돌은 1,3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도 돌 색 자체가 온화해서 뭔가를 호소하면 곧 들어줄 것만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 애 요번에 대학 좀 붙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곧 ‘어 알겠다’라고 곧 말해줄 것만 같은 질감과 빛깔을 가진 돌이 경주 남산 돌로 만든 부처님이에요.”

그렇다고 경주 남산 석이 모두 불그스름한 빛이 도는 것은 아니다. 한동식 석장은 세 종류의 남산 석이 있다고 말한다. 입자가 고와서 섬세한 표현하기 좋은 돌과 석가탑처럼 약간 희면서 중간 정도의 입자를 가진 돌, 그리고 마사(磨沙) 성분이 있어서 입자가 거칠고 엉성한 돌이 있다. 작업에 앞서 이런 다양한 돌의 재질과 질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보통은 손으로 만져보거나 직접 돌의 모서리를 깨서 결을 알아본다. 지금이야 다이아몬드 톱을 이용해서 5m 크기의 돌을 한 번에 자를 수 있지만, 그 옛날 신라 석공들은 결의 방향을 찾아 돌을 깨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잘 깨지는 결을 찾아 정으로 일일이 바위에 구멍을 뚫은 후 참나무를 꽂아 거기에 물을 부어 벌리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석공을 하는 50년의 세월 동안에도 기술이 정말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는데, 1300년 전과 오늘의 차이는 더 엄청나겠죠. 요즘은 거대한 돌을 잘라서 나르고 거친 면을 다듬는 데 기계를 사용해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섬세한 부분은 손으로 작업해야 해요.”

한동식 석장이 앞으로 조성될 경주 영지설화공원에 놓일 아사달 조각 앞에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한동식 석장은 지금의 평가보다는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래 이것은 천년 후에 보여줄 작품이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1,300년 전, 그리고 천년 후 

‘조각은 대리석 원석 속 숨어있는 인물 형상을 해방하는 일’이라 말했던 미켈란젤로처럼, 한동식 석공에게 불교조각은 본연의 부처를 가리고 있는 돌을 걷어내는 일이다.

“우리 일은 돌 속에 부처님을 찾는 거예요. 원래 돌 속에 계셨는데 누구도 보지 못했던 그 부처님의 형상을 정과 망치로 찾아 들어가는 거죠.”

틈날 때마다 찾는 경주 남산을 찾는 한동식 석장은 경주 남산 석불 중에서도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제일 완전하고 온화한 조각으로 꼽는다. 

“석공의 입장에서 보면 남산 불상들이 모두 다 잘 된 조각만은 아니에요. 배동 삼존입상은 석공들이 조금만 더 뒤를 파서 손을 조금 더 앞으로 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 있죠. 하지만 남산 불상들 하나하나가 각각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어요. 옷고름이 섬세하고 예쁜 불상을 보면, ‘다음 작업에서는 이렇게 해볼까’하고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신라 선조들의 숨결이 담긴 경주 남산에서 석공으로 활동하는 소감을 묻자, “부인을 따라 영지못에 목숨을 던진 아사달처럼, 사나이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며 작업을 의뢰한 분들이 만족하고 인정해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초석을 놓고 있는 석공에게 그의 부인이 물었다. 

“여보 이 일을 왜 하고 있어요?” 

그러자 석공이 대답했다.

“여보, 주춧돌 놓는 내 일이 당신은 하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자체가 천년 후에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받을지 모르잖소.” 

경주 남산 석은 전국에서 알아준다. 빛깔이 불그스름해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이 있어 특히 조각가들이 많이 찾는다. 

 

사진. 정승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