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낮게, 아주 높게

빛의 샘/ 꿈을 펼치자

2007-09-17     관리자

고등학교 일 학년 때 국어 책에서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論語)의 문장을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울렁거렸고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 다. 그후 틈틈히 <논어>라는 잘 이해도 되지 않은 책을 밤마다 읽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 시대의 정치 사상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걸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대학졸업생이 회사 면접 시험 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전공선택 이유'일 것이다. 대개 전 공학과는 고3때 정하는데 그 나이에 전공분야에 관해서는 자세힌 알 수는 없다. 그렇게 한 것은 대부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알 수 없는 끌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구체적인 이유로 설명한단 말인가.
그렇게 알 수 없는 힘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어떤 분야의 일에 평생을 바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일이 세속적인 목표일지라도 평생토록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과업이 있을 것이다. 남들이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큼은 꼭 해보고 싶은 일과 목표를 추 구하는 것. 이것이 자기만의 꿈이고 이상이 아닐까. 필자도 우리 사상을 공부해보자고 매달 렸다. 대학원에 입학할 무렵, 한국에서 제대로 대학선생 노릇하려면 으레 다 가야 하는 외국 유학 대신 산 속에 있는 서당을 찾았다. 그것에 있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밖에 없다 고 결심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떨곤 했다.
결국 눈이 펄펄 쏟아지는 날, 서당을 떠나 다시 도시로, 대학원으로 되돌아왔고 또다시 서 당을 찾아갔던 방황이 10년 이상 지속되었다. 국제화를 말하는 이 시대엔 너무나 현실과 동 떨어진 공부를 한 덕분에 서른 아홉이 될 때까지 정식으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우리 문명사의 과제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는 벅찬 희망과 힘든 일에 봉착할 때마다 절망 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뒤범벅이 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럴싸한 논리로 자기를 변명하는 기술은 있어서 아직도 꿈을 머리지 않고 있다. <맹자(孟子)>에서 보았는데, 어떤 사람에게든 큰 고통과 시련이 있을 때는 그것은 바로 장차 하늘이 큰 일을 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말은 꿈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지금 필자의 희망은 돈을 많이 벌거나 남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이상 한 끌림 때문에 시작한 전통사상에 관한 공부를 평생토록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찬란한 사상과 문화를 이 시대에 복권시켜 보자는 것이다. 언제 이런 소망이 이뤄 질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일을 성취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 이다. 단지 노력할 뿐이다.
그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은 가끔 처절한 절망감을 주고 어떤 때는 아주 작은 성과로도 하늘 을 날 것 같은 기쁨을 줄 것이다.
이렇게 아주 낮게 그리고 아주 높게 사는 생활이 좋다. 평생토록 매달릴 수 있게 하는 꿈과 이상이 없는 삶은 싱거워서 싫다.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은 그 꿈을 더욱 굳게 하는 날로 삼 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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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철 님은 '58년 제주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정외과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도회(儒道會) 한문연수원 졸업, 한국정치사상을 전공하고 한국외대, 서울교대, 인천대 강사 를 역임하였다. 현재 영산국제산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조선시대 7인의 정 치사상>을 펴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