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시작과 끝, 경주 남산]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

남산에 빠진 이번 인생

2022-04-28     김남수

“남산의 불상은 부처님을 그리는데 바위마다 주제가 다 다릅니다. 남산에 부처님이 그렇게 많아도 다 다른 모양이고, 다른 주제입니다. 이 점이 인도나 중국과 다른 남산의 특징입니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은 1주일에도 몇 번씩 남산에 오르고, 남산과 경주를 주제로 강의와 모임을 진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남산에 미친 사람”이라고.

김구석 소장은 “남산의 불상과 탑은 자연과 조화로움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단언한다. 삼릉계곡 바위에 새긴 불상이 있는데, 얼굴은 바위 밖으로 삐져나왔는데 몸은 아직 바위 안에 남아있는 듯하다. 불상 바로 앞에서 보면 새기다 만 부처님이지만, 조금 떨어진 위쪽에서 보면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김구석 소장은 남산의 부처님은 모두 그렇다고 힘줘 말한다. 

“남산의 불상은 많이 파괴됐지만, 돌에 새긴 마애불은 파괴된 것이 별로 없어요. 불상은 파괴했지만, 그 파괴의 망치를 마애불에는 갖다 대지 못했어요. 마애불을 파괴하는 것은 곧 바위를 파괴하는 거죠. 바위에 대한 경외심에서 함부로 못 한 것입니다.”

김구석 소장은 경주 남산을 이런 식으로 소개한다. 예부터 남산은 신라인의 성지였다. 옛 신라인들은 그곳에서 산신을 만났고 바위에 대한 애경심을 가졌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산신을 만나던 곳에서 부처를 만났을 것이다. 

 

남산에 빠진 50년 세월

김구석 소장은 고등학생 때부터 남산에 빠졌다. 학교 수업도 땡땡이치면서 남산을, 서라벌을 돌아다녔다. 경주에 계셨던 도문 스님이 ‘민족 중흥은 불교 중흥부터’라는 교육에 그렇게 투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정토회 법륜 스님이 회장으로, 김구석 소장이 총무로 경주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던 시절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잠시 하다 1980년대 경주로 내려왔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부처님마을’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남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고, 『삼국유사』의 절터를 찾아다녔다. 일부러 사람들의 분심(憤心)을 일으키려 했다. 남산의 쓰러진 탑, 목이 잘린 불상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치던 시절이었다.  

남산의 부처님을 알기 위해 인도를 3번이나 다녀왔고, 공무원을 퇴직할 즈음 대학을 편입해 3년을 다녔다. 석사를 수료했고, 박사과정도 마쳤다. 그리고 공직을 퇴임한 1999년 그해, 남산연구소를 만들었다. 인터넷이 보급되던 초창기 홈페이지부터 만들었다. 환등기 하나 들고, 오라는 곳을 떠돌며 남산을 알렸다. 고청 윤경렬 선생을 모시고 ‘빛깔있는 책들’ 『경주 남산』(상, 하)’을 내면서 남산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남산은 바위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신라인에게 믿음의 대상은 산신과 바위였습니다. 부처님은 바위에서 막 나오는 듯하고, 탑은 바위 속에서 솟구치고 있습니다. 탑은 바위를 초석으로 삼아 하늘로 솟고, 불보살은 몸을 바위에 숨긴 채 삐죽 나온 환한 미소로 경주 들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선암 보살님은 구름 위를 떠돌고 있죠.”

이즈음 돼야 남산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다. 얼마 전부터는 『삼국유사』 읽기 모임도 시작했다. 번역된 책이 아니라 ‘목판 인쇄본’을 교재로 한다. 그래야 숨어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읽는 재미도 있다고. “삼국유사는 불교적 이해를 갖지 않으면 오해하기 쉬운 곳이 많아요. 판본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번역본이야 더 그렇겠죠?”라고 묻는다.

“조금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등산만 하시는 분들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허허.... 불자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지만, 일반인들에게도 남산은 정신 문화의 산물입니다. 만든 것도 우리 조상이고, 깨부순 것도 우리 조상들입니다. 후세에 물려줄 책임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남산에 오는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왔으면 하는지 물었는데, 될 수 있으면 오지 말란다. 그래도 부처골 자그마한 동굴에 앉아 편안하게 쉬는 ‘할매 부처’를 보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봤으면 한다고 덧붙이다. 

 

☞  경주남산유적답사

매주 토요일, 일요일과 공휴일에 무료 답사를 진행한다. 코스별로 전문 안내인이 함께하며, ‘경주남산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홈페이지. www.kjnamsan.org

전화.  054)777-7142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