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는 세대의 꿈

빛의 샘/ 꿈을 펼치자

2007-09-17     관리자

'96년에 나는 춤평론집을 두 권이나 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사실 현실적으로 발간하기가 힘든 것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있다. 어떤이는 "일생에 한 권의 책을 갖는다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한 해에 두 권씩이나 책을 갖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라 며 축하의 말을 던진다.
나의 경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성취한 것은 별개, 그러니 남모르는 상처가 있다. 정말 뜻밖에 춤평론가가 되어 거의 매일 밤 춤이 공연되는 극장을 지키고, 이것을 담아 글을쓰고, 또 책을 만드는데 이 모든 것이 내가 꿈꾸어왔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연'이라는 단어 를 빌리지 않고는 춤현장을 기록하는 내 업(業)을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니, 정작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아스라한 꿈을 간직하며, 그것을 그리워하면 서 살아왔다.
그런데 2~3년 전부터는 내가 꿈꾸어왔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어버렸다. 나는 뭔가 꿈많 은 소녀였고 삶은 달걀 하나면 최고의 간식이 되던 궁핍한 우리 성장 시대를 살면서 정말 그 꿈을 향해 두 손을 모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폭발하듯 사회가 달라졌고 그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일상 에 쫓기면서 체바퀴 돌 듯 살게 되었다. 자기를 둘러볼 틈이 없으니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 이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성취한 것은 무엇이었는지조차도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 꿈이라는 것도 바뀌었다. 꿈이 없는 세대의 꿈이란 지금의 이 작은 안 락함이라도 깨지지 않고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전전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아진 탓이다.
좋은 친구를 잃고, 심지어는 죽음도 보았다. 그래서 '머피의 법칙'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주 목하게 된다. 그것은 '지금 무슨 일이 잘 되고 있다면 뭔가 어느 한쪽에서는 망가지고 있고, 지금 나쁜 상태일 때 가장 좋은 일이 벌어진다'라는 역설과 아이러니이다. 이것은 어쩌면 힘든 삶을 지탱해가는 현명한 해법일지도 모른다. 지금 희망찬 무엇이 진행될 때 이 순간이 지나면 가장 아두운 무엇이 찾아오니 늘 긴장하고 꼼꼼히 자기주위를 돌아봐야 한다. 그렇 게 한 발 한 발을 디디면서 하루하루를 사는 것 자체가 상실의 시대를 치유하는 것이 될 게 다.
새해가 또 밝는다. 이제 큰 꿈은 없지만 있는 그대로에서 한 가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 인가. 새해의 달력을 펴본다. 올해도 역시, 새해 달력에 내가 할 일들을 동그라미 치면서 치 밀하게 사는 것, 이것만이 허망(虛妄)을 극복하는 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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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님은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월간<한국연극>편집장 역임, 현재 춤평론가, 월간 <춤 >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동참과 방관 ><대립과 제휴><박수와 매도>가 있 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