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의 나 찾기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 한국화가 박소영

2007-09-17     관리자

"갈 길이 바쁩니다. 이생을 다하고 저승에 가면 무엇인가 하고 왔다는 말을 해야 할지 모르 겠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통해서나마 내 자신 속의 나를 찾아갈 수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보면 그것에 이끌려 들어가곤 하지요.
자연과 사람이 다함께 어우러져 자연인답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해요. 제가 그림을 통해 보 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글쎄요. 아직은 하나의 과정을 가고있는 중입니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현상들은 그저 겉껍 데기에 불과 합니다. 제가 본 것을 마음에서 정화시켜서 그림으로 내보였는데 그것이 과연 원래의 그것이었던가 하는 의문을 자주 가집니다. 제 나이 예순은 되어야만 걸러지고 걸러 진 상태에서 좀더 진실해 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1942년생.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는 쉰 여섯이 되는 박소영 씨는 얼마 전 손녀를 본 할머니 다. 장성할 대로 장성한 두 아들은 "족쇄를 두 개 차고는 걸음이 더디니 이제 그만 빼세요" 하며 엄마의 삶을 찾아주려 애쓰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직장생활하는 며느리를 그냥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예쁜 손녀딸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마 음 같아서는 작업실에 꼭꼭 박혀 그림만을 그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어찌 인생살이가 하고 싶은 일들만을 하고 살 수 있는가.
요즈음은 그나마 세상이 좋아져서 여자들도 자기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 만 자신이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그렇지가 못했다. 여자가 미술대학이라고 갈라치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시대였다. 그래 갈 수 있었던 곳이 그 당시에는 가정대학 안에 있었던 생활미술과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세상의 흐름대로 또 부모님 이 원하는 대로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영영 자신의 길이라고는 막혀버렸던 것이 당시의 현 실이었다.
박소영 씨 역시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살림을 하다보니 자신의 삶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듯 싶었다. 그러나 마치 해야할 숙제를 남겨놓은 것처럼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자신 의 머리속에 남겨져 있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면 옆에 앉아 함께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 다. 그러나 그림이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그렇게 20여 년을 보냈다. 아이들도 얼만큼 장성하고 보니 자신이 되돌아보아졌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다시 잡은 것이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오fot동안 미루어두었던 숙제를 꺼내어 하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영어공부부터 다시 시작해서 입학을 하고 공 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한국화로 접어들게 되었다.
"늦게 하는 공부가 참 어려웠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가닥도 잡게 되었어요. 짜여진 공간 속에 무엇인가를 가득가득 채워 가는 서양화는 답답함을 줍니다. 그리고 우선 서양화 물감냄새가 싫었고요. 그러나 간결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주는 한국화가 정서적으로는 제게 맞는 것 같아요. 채울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것은 편안함을 주지요. 내 속의 나를 찾을 수 있는 것이 한국화예요. 가능한 사물을 단순화시키며 본질에 가까워지려고 합니다. 자연이 내 뿜는 생명의 박동소리를 들으며, 그와 함께 호흡하고 그로부터 오는 메시지의 본질을 그림 으로 내보일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것이 없겠지요."
박소영 씨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되는 것은 갈대와 연꽃이다. 우선은 간결하고 조형적인 아름 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꽃은 가장 많이 그리는 자연물이다. 한 때는 그것을 채색화 기법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고 최근에는 우리의 닥지 바탕에 역시 채색한 한지를 꼴라 쥬하는 형식으로 해 연꽃의 조형미를 간결하고도 추상에 가깝게 표현해보고 있다.
박소영 씨의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과 정화된 분위기를 준다.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쉽게 다가온다. 보여지는 사물들이 가장 본질적인 모습으로 가슴속에 그려질 때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그런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도 오히려 혼돈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허구적인 겉모습들의 껍질이 벗겨지지 않으면 안 돼요. 제가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문화적으로 경험된 자연의 허구적 이미지들을 걸러냄으로써 보다 실체적인 리 얼리티에 접근해 보려는 과정입니다. 현대의 복잡한 메커니즘 속에서 자칫 상실되기 쉬운 인간성을 회복해가기 위한 작은 시도로 이해되었으면 해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편안한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능인선원에 다니며 불교공부를 하기도 한 박소영 씨는 늘 할머니 홍련화 보살을 떠올리곤 한다. 부산 범어사에 열심히 다니셨던 할머니는 참으로 신심이 장하셨다. " 물건 값을 깎지 말아라. 배운 사람이 아량이 넓어야지." 어렸을 때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씀 들이 요즈음에야 비로소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부(富)는 지니셨으면서도 여러 사람들에게 보시공덕을 심어주어야 한다시며 백 집을 일일이 시주하여 부처님전에 올리는 정성을 보이 시기도 했다. 그리고 법복을 입으시고 공양미를 드신 채 원효암까지 걸어가시던 모습이 지 금도 선연하다.
"한국에서는 미처 못 느꼈는데 미국에 가 있으면서 어려운 절들을 많이 보았어요. 특히 절 에 단청을 하거나 탱화를 모시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돕고싶다는 생각을 했어 요. 함머니만큼은 못하더라도 인연이 주어진다면 세가 할 수 있는 그림으로나마 공양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나이 60쯤되면 웬만한 세속사는 다 놓아진 채 또다른 자신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욕심이 조금씩 조금씩 비워지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한창 젊었을 때는 좋은 물건 들을 남이 다 사가면 어쩌나 싶어 한 달에 몇 번씩은 백화점에 가봐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며 감사하게 되었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면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그림도 잘 안 그려진다. 그저 마음을 턱 놓아야 한다.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며 정리해나가도 보면 그 때는 자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적인 작품으로 귀결이 되리라 그는 생각한다.
완전히 비워지고 걸러지는 자신 속에 차오르는 기쁨은 얼마쯤이 되어야 가능할까. 모든 자 연물들이 자신의 멋과 아름다움을 지녔듯이 사람 또한 자기다울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박소영 씨. 그의 일상이 그림과 더불어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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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 숙명여자대학교와 경원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공부. 결혼 후 20여년이나 지난 뒤 공백기를 개고 춘추회 창파회 창조회에서 그룹활동을 하고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양한 모색과 실험을 통해 한국화의 해로운 장르를 개발해가고 있다. 작품의 주요 테마는 자연과 인간의 조형적 변증'으로 인간 속에서 자연을, 자연 속에서의 인간성을 찾아가는 작 업을 필연적인 과제로 인식하고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