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고통 속에서 살다 죽어가다

그림 속에서 찾은 사성제 이야기 고통 속에서 살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다_반 고흐

2022-05-20     보일 스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수행자 같았던 화가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느낌이 있다. 작품에서 받는 감동만큼이나 그가 살았던 외로움과 절망에 대한 연민이 겹쳐진다.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장엄할 수 있는지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가 동시에 떠오른다. 

우리는 반 고흐의 그림에서 세상이 품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그의 삶에서 인생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고, 그 삶의 굴곡 속에서 대비되는 색상과 명도, 채도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제각각인 삶의 굴곡에서도 누구나 고통은 피하고자 하고, 행복과 안락을 바란다. 어둠은 걷어내고 밝음만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런 몸부림에도 아랑곳없이 인생의 캔버스 안에는 행복과 고통이 나란히 자리한다. 그 고통과 행복이라는 게 원래 한 뿌리인 것은 아닐까. 어둠과 밝음도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어두워지고 밝아질 수 있듯이 말이다. 반 고흐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누군가가 가장 불교와 닮은 화가를 묻는다면, 반 고흐라고 대답하겠다. 반 고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수행자와 닮아있다. 아니 시선뿐만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두타행을 하는 고행승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산책을 꾸준히 하고 한결같이 자연을 사랑해야지. 바로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보통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야. 화가 중에는 좋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어. 평범한 사람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똑같은 화가들이 있어.” 

부처님 가르침의 큰 뜻은 복잡한 경전이나 고도의 수행법에 있는 게 아니다. 마음속에서 나쁜 일을 멀리하고 좋은 일을 하는 데에 있다. 반 고흐가 세상을 보고 예술을 이해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반 고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불법의 대의를 묻는 시인 백낙천의 질문에 중국 당나라 도림 선사가 했던 대답이 떠오른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__ 『출요경(出曜經)』 

사실 알고 보면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하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한 화가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내 그림이 거기에 사용한 물감보다, 내 인생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살아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불멸의 위대함 그 자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반 고흐가 그렇다. 다들 알다시피, 반 고흐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가 천재이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경이로운 작품을 남기고 요절한 화가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맏아들이었지만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반 고흐는 스스로 형 대신 살아간다고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반 고흐는 항상 자신의 삶에 죽음의 그림자를 겹쳐놓고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된다. 

반 고흐는 정식으로 미술을 전공하거나 훈련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청년기에 어학교사, 화랑의 점원, 신학 연구생 등으로 전전했으나 자리 잡지 못하고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다. 

한 마디로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기 전에도 그의 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난과 예술은 늘 함께 하는 친숙한 단어조합이지만, 반 고흐의 삶은 심하다 못해 안쓰럽다. 자신도 오죽 답답했으면 테오에게 푸념하듯 말한다. “왜 내 그림은 팔리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림을 팔 수 있을까?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반 고흐의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내용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어쩌면 매일 매 순간 이런 좌절과 절망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나는 안될까. 왜 나만 이러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몸부림치는 그림이 인류 예술사 최고가의 가치를 갖게 될 줄은 반 고흐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반 고흐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서 반 고흐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이 잘 드러난다. 농사일이 한참 분주해진 농촌에서 호르트라는 농부의 집에 들렀다가 목격한 광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온종일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식탁에 모여 감자를 먹는 모습이 사실적이다. 어둡고 갑갑한 느낌이지만, 희미한 램프의 불빛은 서로를 알아보고 음식을 더듬어 쥘 수 있게 한다. 흙이 잔뜩 묻은 그들의 투박한 손으로 포크를 쥐고 잔을 집어 들거나 차를 따르는 모습이 따뜻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환한 램프의 불빛과 농부들의 투박한 손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반 고흐는 호르트 가족의 가난과 고된 일상을 느끼면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듯하다. 현실은 고단하고 힘겹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과 위안을 찾아내듯…. 아마 반 고흐는 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해바라기(Sunflowers)>

 

시든 해바라기, Vanitas

반 고흐는 친구인 고갱의 권유로 남부 아를로 내려간다. 반 고흐의 눈에 비친 아를의 자연 은 실로 아름다웠다. 밝은 빛이 가득했고 그 빛이 비치는 자연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반 고흐는 아를의 드넓은 평원을 걷고 또 걸으면서 영원과 마주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림 속 주인공처럼 내내 걸어 다니다가 캔버스를 펼쳤다. 

아침은 아침대로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는 오후대로, 석양이 질 무렵은 그 어슴푸레함 느낌 그대로 아름다웠다. 하늘, 땅, 신선한 공기 그리고 태양이 예술적 영감이 되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반 고흐는 홀린 듯 붓질을 이어갔다. 

자연과 함께 생각하고 자연과 함께 움직였다. 아마도 반 고흐에게 아를은 궁합 맞는 동네였던 것 같다. 바로 이곳에서 반 고흐는 <해바라기>와 <밤의 카페 테라스> 2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그리게 된다. 

그 많은 작품 중에서도 유독 눈길은 끄는 것은 <해바라기>이다. 꽃과 벌레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현실의 모습, 혹은 시들거나 줄기가 꺾여서 이미 꽃이 바닥에 닿기 직전의 모습도 함께한다. 반 고흐의 모국, 네덜란드 특유의 ‘바니타스(Vanitas, 허무함을 뜻하는 라틴어)’ 전통의 영향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반 고흐 내면의 종교적 감성이 잘 드러난다. 반 고흐는 삶 속에서 죽음을, 행복 속에서 고통을, 영원 속에서 유한함을 들여다보고 그것들이 사실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드려준다. 

<밤의 카페 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

별을 향해 걸어가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서 간다는 거다.”

1890년 7월 27일, 반 고흐는 그의 나이 37세에 생을 마감한다. 과연 반 고흐가 정말 자살을 시도했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 반 고흐는 테오의 품에 안겨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다.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어.” 그렇게 반 고흐의 고통은 끝났다. 반 고흐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희망과 위안을 세상에 선물하고 떠났다. 

일체개고(一切皆苦). 붓다는 다시 태어남이 괴로움이고 태어나지 않음이 행복이라고 설했다. 살아있는 생명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괴로운 느낌은 사라지기를 바라고, 행복하고 평온한 느낌은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갈애(渴愛)’에 평생 사로잡혀 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데도 변하지 않고 영원하기를 집착하는 한 고통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한다. 바로 반 고흐가 <해바라기> 속에 묘사한, 싱싱한 해바라기와 시든 해바라기가 한 화병 속에 담겨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사람과 돈과 명예 등의 욕망에 집착하고, 그 집착하는 대상에 수시로 옮겨 다닌다. 그 변화는 우리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끊임없는 욕망과 무시무시한 집착 그리고 고통. 절망과 좌절을 반복하면 살아간다. 사람뿐이랴.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나고, 늙고, 병들어 죽어가면서 고통을 겪는다. 인생이란 게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달관한 듯 쉽게 내뱉지만, 사실은 그 고통의 쓰라린 깊이와 좌절의 가파른 기울기를 헤아리기 어렵다. 반 고흐가 남긴 수많은 그림과 편지에서 삶의 좌절과 고통을 헤아리고, 희망과 위안을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보일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경전과 논서를 강의하며,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붓다의 지혜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