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국민 미녀들의 출가와 깨달음

2022-04-15     동명 스님
1)인도 최고의 미녀로 손꼽히는 국민배우 아이쉬와라 라이(Aishwarya Rai). 붓다 시대 최고의 미녀 루빠난다나 케마가 바로 이런 외모가 아니었을까?
2) 2017년 미스 유니버스 인도의 마누시 크힐러(Manushi Chhillar).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By Bollywood Hungama
3) 2021년 미스 유니버스 인도의 미녀 하르나즈 카우르 산두(Harnaaz Kaur Sandhu). 

 

나라를 대표하는 미녀들의 출가

출가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여성 출가자의 감소 추세는 더욱 가파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오히려 여성 출가자가 많았다. 그 시대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2025년 무렵에는 성인 여성 10명 중 1명은 독신이 될 것이라고 한다. 독신 여성이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도 출가자는 줄어들고 있다. 독신으로 살지라도 출가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붓다 시대에는 여성 출가자들이 참으로 많았다. 출가한 비구니 스님들 중에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미녀들도 있었다. 카필라국의 루빠난다(Rūpananda), 마가다국의 케마(Khema) 왕비, 왓지국의 기녀 암바빨리(Ambapālī)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출가 전 그들의 존재 이유는 곧 미모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출가해 비구니들의 모범이 됐다.

 

석가족 최고의 미녀 루빠난다의 깨달음

자나빠다 깔랴니 난다(Janapada Kalyānī Nanda)는 미모가 뛰어나서 ‘아름답다’라는 의미의 수식어 ‘루빠(rūpa)’가 붙어서 ‘루빠난다(Rūpa-Nanda)’라고 불렸다. 그녀는 붓다의 이복동생 난다(Nanda)의 약혼녀였다. 결혼식이 예정돼 있던 날 난다가 출가했기 때문에 혼자가 됐다. 남편 난다는 아라한이 됐기 때문에 세속으로 돌아올 일은 없었다.

루빠난다는 먼발치에서라도 난다를 보고 싶어 출가했다. 그러나 난다를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붓다의 승가에 출가했지만, 붓다의 설법을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붓다가 “아름다운 형상은 무상하며”,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일지라도 똥이 가득 담긴 가죽부대와 같은 것이라고 설법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붓다가 자신을 보면 그도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루빠난다는 이렇게 자신의 용모에 대한 자신감을 넘어서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다. 

루빠난다는 붓다의 설법을 들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일부러 피했다. 붓다가 비구니 승원에 오는 일이 있어도 그녀는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설법을 들은 비구니들이 환희로운 표정을 짓고 오거나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다 보니 붓다의 설법이 점점 궁금해졌다.
비구니들이 붓다의 설법을 듣기로 한 날 루빠난다도 비구니들 사이에서 붓다가 알아채지 못하게 설법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루빠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설법 장소로 향했다. 

붓다는 멀리서 다가오는 루빠난다를 보고 생각했다. 

‘루빠난다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외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수행한다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이번에 외모에 대한 집착을 없애주어야겠다.’

붓다는 신통력으로 빼어난 미모를 갖춘 열여섯 살의 처녀를 만들어 당신에게 부채를 부치게 했다. 물론 그 모습은 루빠난다만 볼 수 있게 했다. 루빠난다는 처녀를 보고 그만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어쩜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단 말인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라곤 한 군데도 없었으며, 그녀의 몸 어디를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 나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였다. 여인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20대의 성숙한 여인처럼 변하더니, 중년 여인으로 변했다. 점점 살이 찌고 배도 불룩 나오더니, 다시 살이 빠지고 허리가 기역자가 돼 지팡이 없이는 설 수 없는 할머니가 됐다. 입을 벌릴 때 보니 성한 이가 거의 없었고, 머리는 하얗게 셌는데, 그 머리카락도 몇 가닥 되지 않았으며,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뒤틀리곤 했다. 

‘아, 그 아름답던 모습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루빠난다가 변해가는 여인의 모습에 깊이 상심하고 있을 때, 붓다는 그 여인을 병들게 했다. 여인이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쓰러진 몸에서 똥오줌이 흘러나와, 그녀는 질펀한 배설물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붓다는 그녀를 아예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녀의 몸이 부패하기 시작하더니, 아홉 구멍에서 누런 고름이 흘러나오고, 구더기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까마귀가 몰려들었고, 동네 개들이 몰려와 시체를 뜯어먹었다. 루빠난다는 더 쳐다볼 기운도 없어졌다.

‘저 아름답던 여인이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렀듯이, 나의 몸도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이다. 그렇게 죽어가고 마는 것을 왜 이리 집착했던가.’
루빠난다는 자신의 몸도 무상(無常)한 것임을 깨달았다. 변화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괴로웠지만, 차츰 평정을 되찾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그 괴로움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루빠난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차린 붓다가 가르침을 설했다.
“난다여, 그대의 몸에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몸은 삼백 개의 뼈들의 무더기일 뿐이다. 시간이 되면 뼈들의 무더기는 흩어져 사라진다.” 
붓다는 이어서 게송을 읊었다.

이 몸은 고기와 피로 덮여 있고 
뼈로 쌓아올린 하나의 성곽. 
그 안에 교만과 비방 
늙음과 죽음이 함께 머무르고 있구나. 
-『법구경』 제150송

예전에 이 게송을 들었다면 루빠난다는 큰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용모에 대한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루빠난다였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여인의 일생을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 관람한 루빠난다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게송을 듣자마자 루빠난다는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마가다국 최고의 미녀 케마 왕비의 출가

케마(Khema)는 마가다국 빔비사라 왕의 세 번째 왕비로 과거 전생에 큰 원을 세운 공덕으로 금생에 뛰어나게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지니고 태어났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의 빼어난 외모를 의식해 지나치게 교만했고, 자존심도 대단했다. 빔비사라 왕은 케마가 붓다를 만나게 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함께 죽림정사에 가자고 했으나 케마는 늘 거절했다.

“저는 그분의 가르침을 믿지 않아요. 당신 혼자 가세요.”

왕은 케마 같은 미모라면 콧대가 세도 용서된다고 생각하면서 허허 웃곤 했다. 케마는 여러 사람에게 ‘붓다는 미모 같은 것은 경멸하고 무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붓다를 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은 케마가 붓다를 만나게 할 좋은 계책을 생각했다. 음유시인들로 하여금 케마 왕비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죽림정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하면, 호기심 많은 케마가 죽림정사를 몹시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케마 왕비는 음유시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시인들이 저렇게 아름다이 노래하는 그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어느 날 케마는 한 시인을 불러 물었다.

“당신이 예찬하는 그곳은 도대체 어디입니까?”

“죽림정사입니다.”

“죽림정사라면 붓다가 계신다는 그곳인가요? 그곳이 그렇게 아름답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곳은 천상이나 다름없습니다.” 

죽림정사가 너무도 궁금해진 케마는 붓다가 탁발을 나가는 시간을 틈타서 죽림정사를 구경하기로 했다.

케마는 스님들이 모두 탁발을 나갔다는 것을 확인하고 죽림정사를 찾았다. 케마는 붓다가 눈치채지 못하게 죽림정사를 구경하려 했지만, 붓다는 케마 왕비가 올 것을 알고 탁발을 나가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붓다는 신통력으로 왕비보다 훨씬 아름다운 천상의 여인들의 모습을 케마의 눈에 보이게 했다. 그 여인들은 커다란 코코넛나무 이파리를 들고 붓다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케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까지 자신보다 아름다운 여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자신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있는 것을 봤으니 참으로 큰 충격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이 여인의 아름다운 용모를 경멸하신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그런데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들이 부처님께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다니, 부처님에 대한 소문이 거짓이었나?’

케마는 또 탄식했다. ‘아, 저 여인들에 비하면 나의 미모는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이런 보잘것없는 미모를 뽐내고 다녔으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었구나.’

붓다는 케마의 모든 관심이 여인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처녀들을 차츰 나이 들게 해 마침내 추한 노파로 변신시켰다. 케마는 처녀들이 나이 들어 늙어 죽어가는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아, 아무리 아름다웠다 해도 늙어 죽는 모습은 똑같구나. 저렇게 잠깐일 뿐인 아름다움이 도대체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이때 붓다가 케마에게 입을 열었다.

“왕비시여, 몸의 아름다움이란 그 누구에게도 잠깐일 뿐입니다. 이제 몸이란 영원하거나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는지요? 마땅히 몸을 네 가지 물질과 다섯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질병과 더러움이 흐르는 것으로 보고 더 이상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붓다의 설법을 들은 케마 왕비는 성자의 첫 번째 단계인 수다원과를 성취했다.

“왕비시여, 이 세상의 많은 중생은 욕망 때문에 죽고, 증오와 미움 때문에 타락하며, 어리석음의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욕망과 갈망으로 인해 윤회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고, 윤회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붓다는 이어서 게송을 읊었다. 

욕정에 빠져 있는 존재들은
거미가 자신이 지은 거미줄 안에 있듯이
자신이 일으킨 갈애(渴愛)의 
흐름 속에 빠져 있다.
현명한 자는 갈애의 족쇄(足鎖)를 끊고,
모든 괴로움(dukkha)을 뒤로 하고 
결연히 떠난다.
-『법구경』 제347송

이 게송을 들은 케마 왕비는 성자의 세 번째 단계인 아나함과를 성취했다. 아나함과를 성취한 후에 궁궐로 돌아오는 케마 왕비를 보고 빔비사라 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이 여인은 이제 나의 여자가 아니구나.’ 그녀에게서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넘쳤고, 얼굴에서는 지극히 평화로운 미소가 넘쳤다. 다정다감하게 느껴지면서도 도저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품위에 눌려 빔비사라 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케마 왕비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는 붓다의 승가에 출가하겠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당장 황금가마를 대령케 해 왕비를 황금가마에 태워 죽림정사로 보냈다. 케마는 부지런히 수행해 금방 아라한과를 성취했고, 지혜가 출중하여 비구니 중에서 지혜제일로 통했다.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는 길, 출가

조민기 작가의 『부처님의 십대제자』(맑은소리맑은나라, 2016)의 부제는 ‘경전 속 꽃미남 찾기’다. 붓다의 최고 제자들이 모두 외모가 꽃미남이었다는 얘기인가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 꽃미남의 조건은 학식과 지성, 청정하고 자비로운 마음, 바른 생각과 언행, 대중친화적인 법문 실력 등이었다. 

비구니 스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나라를 대표했던 미녀들이 출가했다는 것은, 미녀라는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세속을 버리고 감행할 정도로 출가는 멋지고 값진 일임을 말해준다.

출가라는 멋진 모험의 길에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 붓다 시대 국민 미녀들의 경우를 살펴보건대,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이라 하겠다.

붓다가 루빠난다와 케마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을 끊어주기 위해 사용한 신통은 천상의 최고 미녀들을 보여주고, 또 그 아름다움의 무상(無常)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들은 외모가 아름다운 여인에서 깨달음의 경지와 성품이 아름다운 수행자로 거듭났다. 젊었을 때만 아름다운 여인에서 전 생애에 걸쳐, 아니 생애 이후에까지 아름다운 성자가 됐다.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승가에서도 비구니 스님들의 역할이 매우 커졌다. 여성 출가자가 감소하고 있음은, 한편으로 기회가 늘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더 많은 루빠난다나 케마 같은 비구니 스님들의 출현과 활약을 기대해본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산문 『인도신화기행』, 『조용히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