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가래떡 뽑는 황산 스님

울산 도심에 황룡사를 세우다

2022-04-04     김남수
‘떡공’이라는 이름의 방앗간을 세운 황산 스님은 매일 가래떡을 뽑아 먹기 좋게 자른다. 

2020년 코로나19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을 때, 무료급식센터를 운영하던 스님은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방역 수칙을 따르면 급식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절간 인심은 떡에서 난다’고 떡을 나눠주기로 했다. 

떡을 만들기 위해 절간 주차장에 컨테이너로 ‘방앗간’을 만들었다. 불단에 떡을 올리기 위해 방앗간을 운영하는 사찰은 들어 봤지만, 무료급식을 지속하기 위해 방앗간을 짓는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떡공 스님

황룡사가 지금의 터를 잡은 지 6년이 넘었지만, 절에 필수적인 공양주 보살님은 뽑지 않았다. 그래서 스님은 새벽 일과가 끝나면 떡을 찧기 위해 떡방앗간으로 향한다. 매일의 일상이 된 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방앗간에도 전담하는 직원이 없다. 스님과 새벽 예불에 참여한 신도가 매일 80kg의 떡을 찧고 있다. 이렇게 급식센터는 운영될 수 있었다. 하루는 가래떡, 하루는 백설기, 토요일에는 김밥으로. 일요일을 제외하고 운영한다. 그래서 황룡사 신도들은 쌀을 많이 보시한다고. 

“제가 선방에 있을 때 인절미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발우공양 때도 인절미를 먹는 스님은 처음 봤다고 ‘떡공 스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때는 지공이라는 법명으로 불릴 때였어요. 그 인연이 여기까지 왔네요.”

2015년 12월 현재의 자리로 신축 이전하면서 황룡사는 직원 한 명 없이 스님의 원력과 자원봉사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인터뷰하는 중에도 자원봉사자들은 화장실을 청소하고 내일 뽑을 쌀을 씻고 있다. 

황룡사 1층의 꽤 넓은 공간이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신도들의 지대방이지만, 스님의 집무 공간이기도 하다. 따로 집무 공간을 만들지 않았기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스님은 늘 이곳에 앉아 있다. 여기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신도들과 상담하고 일을 논의한다. 인터뷰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도심 포교를 진행하는, 신도들을 상대하는 스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황산 스님은 ‘떡공’에서 직원 하나 없이 새벽예불에 참여한 신도들과 매일 떡을 빚고 있다.

 

적멸보궁에서의 1,000일

황산 스님은 2004년부터 통도사 적멸보궁에서 1,000일 기도를 올렸다. 선방에 들어갔으나 기도와 인연이 닿았다. 기도하는 스님을 찾는다기에 두말없이 자원했다고. 이때 아니면 적멸보궁에서 언제 기도하겠냐는 마음이었다. 

하루에 네 번, 두 시간씩 사분정근을 빠지지 않고 진행했다. 기도를 진행하는 특별한 절차가 없었기에 스님이 요령껏 준비했다고. 여기서 기도와 합송(合誦)의 힘을 얻었다. 보현행원품은 매일 독송하고 참법, 관음예문, 입보리행론까지 몇백일씩 돌아가며 독송했다. 기도에 동참하는 신도들이 늘었고, 합송 기도를 꾸준히 진행했다고.

“제가 수도암에서 출가했는데 그 시절 기도하는 스님이 계셨어요. 또 선방에 계신 사형 사제 스님들이 하루 16시간씩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을 봤어요. 8시간 하는 것은 그분들 옆에서 보고 배운 것이 컸지 않나 싶습니다.”

적멸보궁에서 기도하면서 미래를 꿈꿨다. 옛 선지식들이 신라 고도 경주에 세운 황룡사를 도심 한가운데 만들자는 발원을 했다. 인연이 돼 울산의 빌딩 한 모퉁이에서 시작해 몇 년의 발원을 거쳐 태화강 변에 자리 잡은 것이 2015년 12월.

통도사 적멸보궁에서 1,000일 기도를 하던 황산 스님은 옛 선지식들이 경주에 황룡사를 세웠듯이 도심 한가운데 포교당을 세우겠다는 발원을 했다.
황룡사는 울산 태화강 변,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했다.

 

보현행원 기도

스님은 불광의 광덕 스님을 롤모델로 생각했다. 어려운 시기에 도심 한가운데 사찰을 세우고 도심 포교를 개척해나간 점을 존경한다고. 그런데 스님이 도심 포교 발원을 세울 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요즈음 10개 개원하면 9개가 자리 잡지 못한다”며 다들 말렸다.

스님은 포교당을 준비할 때, 딱 하나의 조건을 생각했다. ‘가진 것은 없지만 땅은 도심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 어린이 청소년 법회 운영, 불교대학 운영 두 가지는 꼭 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어떻게 인연이 돼 지금 공간을 마련했는데, 스님은 큰 어려움 없이 진행했다고 회상한다. 

“올해가 임인년입니다. 축년에서 임년으로 넘어갈 때 큰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인시가 시작하는 시간이에요. 저에게도 한 번의 사이클이 다시 시작하는 해죠. 앞으로 12년의 사이클은 보현행원품을 독송하면서 보현행원을 기도 목표로 삼을 예정입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냐고 물었더니 나온 대답이었다. 스님은 『보현행원품』 1만 권을 제작해 신도와 주변인들에게 나눠 줄 예정이다. 그리고 신도들과 보현행원품을 합송하면서 독송 기도를 진행할 계획이다.

스님은 코로나19로 ‘어린이 청소년 법회’가 조금 침체한 게 못내 아쉽다. 이를 조만간 정상화하고 지역과 어른들을 위한 일도 해 보고 싶다는 원력을 밝힌다.  

스님은 포교당을 준비할 때, 딱 하나의 조건을 생각했다. ‘가진 것은 없지만 땅은 도심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 어린이 청소년 법회 운영, 불교대학 운영 두 가지는 꼭 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