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스님] 전쟁 참여와 불살생계

비폭력과 살생, 불교에 던지는 화두

2022-03-29     한수진

살생에 대한 두 가지 계율

붓다는 비폭력을 강조하며 전쟁과 살생을 반대했다. 그의 전쟁 반대론은 경전 곳곳에서 나타난다. 붓다는 전쟁이나 싸움이 나면 중재해 폭력을 저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 예로 율장에는 꼬삼비에서 일어났던 승가 규율을 둘러싼 승가 내 싸움 중재를 위해 붓다가 비유한 디가부 이야기가 있다. 붓다는 디가부와 그의 아버지를 통해 ‘원한은 원한에 의해 사라지지 않는다.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사라진다’라고 말하며,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악업의 연속성에 관해 설한다. 또한 붓다는 석가족을 침략하는 비류왕을 두 번이나 설득했지만, 중재는 실패로 끝나고 비류왕은 석가족을 침략한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처참히 살육당하는 석가족의 멸망을 묘사했다. 석가족은 적군이 원한을 품지 않도록 했다. 화살이 적군의 몸에 맞되 최소한의 상처만 입게 하고, 상투를 맞추되 머리를 다치지 않게 쐈다.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생의 악업을 피한 것이다. 

석가족과는 달리 임진왜란에서 조선승군은 호국을 위해 적과 싸우며 살생을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승군의 출정이 불살생계를 어긴 ‘파계’라고 말한다. 『아비달마순정리론』에서는 전시 상황이라고 해도 살생은 불살생계를 어기는 것으로 보고 예외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나는 오직 전쟁 따위의 인연을 제외하고만 능히 살생을 떠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계율을 지키는 것은 계율과 유사한 묘행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정을 차별해 계율이 차별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반면에 『유가사지론』에서는 보살이 무간업(無間業)을 짓는 도둑을 보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그가 무간고(無間苦)를 받지 않기를 바라며, 선심(善心)·무기심(無記心)·참괴(慚愧)로 도둑을 살생하는 것은 보살계를 범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보살은 이타를 행함에 있어 싫어하고, 한스럽고, 성내고, 괴롭히려는 마음을 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계율을 지키는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상황적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 대승보살계의 지범개차(持犯開遮) 논리다. 이에 비추면 승군은 백성을 지키고, 적군이 조선 백성을 살육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자비심으로 스스로 계율을 버리고 살생했으니 ‘파계가 아니다’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승군의 전쟁 참여 문제에 대해 각기 반대되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전쟁과 관련된 계율

우리가 오계를 지키지 않으면 때에 따라서는 세속법으로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불교 내에서 그에 상응하는 표면적인 처벌은 없다. 하지만 승가는 다수의 출가자가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에 출가자나 승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 행동이 발생할 때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출가자의 선행과 위의(威儀)는 청정하고 화합하는 승가를 만들고, 이런 승가의 모습은 재가자에게 신심을 굳건히 하게 하고, 불교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출가자에게만 적용되는 ‘계’와 ‘율’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출가자가 계를 범하면 율의 적용으로 오계보다 강력한 행위의 규제를 받는다. 계를 지키는 것은 자유의지이지만 율은 따라야 하는 의무다. 대승보살계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출가자의 생활 규범과 승가의 운영 방법을 규정한 승가 규범집인 율장에 나타난 불살생계와 전쟁에 관련한 조문을 살펴보자. 

생류(生類) 살생에 관한 조문은 사람의 목숨을 끊는 살계(殺戒)와 인간 이외의 생명체 살생을 금하는 탈축생명계(奪畜生命戒)가 있다. 전쟁에 관한 조문은 전장으로 출정하는 군대 행렬 구경을 금지하는 관군계(觀軍戒), 전장에서 기한이 넘도록 머무는 것을 금지하는 군중과숙계(軍中過宿戒), 전장 구경을 금지하는 관군진계(觀軍陳戒)등이 있다.  

살계를 제외한 나머지 4가지 계율을 범하면, 출가자는 다른 청정 비구 앞에서 자신의 죄를 드러내며 발로(發露)하고, 다시는 계율을 어기지 않겠다는 결심과 참회를 해야 하는데 청정 비구가 이를 받아들이면 참회가 성립돼 속죄된다. 반면에 살계는 가장 무거운 중죄 4가지 중 하나로 범계하면 비구의 자격을 잃고 승가에서 추방된다. 

다음으로 이들 계율이 제정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살계를 제정하게 된 인연은 붓다가 부정관(不淨觀) 수행을 권했더니 비구들은 자신의 신체를 혐오해 자살하거나, 다른 비구에게 자신의 목숨을 끊게 시켰다. 그래서 붓다는 수식관(數息觀) 수행을 가르친다. 이 사건 이외에도 비구들이 병자에게 죽음을 찬탄해 목숨을 끊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계기로 붓다는 비구가 고의로 살인·자살·다른 사람에게 교사 또는 청부하거나, 병자에게 죽음을 찬탄하고 안락사를 돕는 등 일체의 인명을 빼앗는 일을 금지한다.  

부정관(不淨觀)이란 육신이 더럽다는 것을 알고 관찰하며 탐욕을 없애는 수행법. 
수식관(數息觀)이란 호흡의 수를 세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행법. 

범계 기준은 살생 의도나 목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살생에 ‘고의성’, 다시 말해, ‘죽이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범계가 성립된다. 고의성이 없고 실수가 인정되면 중죄 처벌은 면한다. 

전쟁에 관한 조문 3가지 중 관군계를 보면, 고대 인도에서는 출정 중에 사문을 보면 불길하다고 여기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파사익왕은 비구가 군대 행렬을 구경하는 것을 꺼리면서 관군계가 제정됐다. 군중과숙계와 관군진계는 비구들이 군진에서 머물며 문제를 일으킨 것이 제정 요인이었다. 군진으로부터 설법 초청을 받은 비구들이 설법 후에 여러 날을 머물며 군진을 둘러보고 문제점들을 지적하자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비구가 첩자로 몰리는 일이 있었다. 이렇듯 율장에 의하면 출가자가 전쟁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사회는 출가자의 전쟁 참여보다는 전쟁이 승리하도록 기원해주기만을 원했을 뿐이다. 

 

공업共業의 굴레를 벗어나야

조선승군의 입장에 서서 이들 율의 적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승군의 출정은 국왕의 명도 있었지만, 승가가 수락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이기도 했다. 

승가는 국가와 백성을 위해 파계를 자처했으므로 승군에게 범계의 죄를 물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계율을 버린 승군의 출정은 불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승가를 발전시키는 기회가 됐다. 앞서 율장의 살계와 『유가사지론』의 개차법에서 중요시한 건 살생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승군이 적을 향해 휘두른 칼날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가 중요하다. 승군은 그 마음가짐과 행위로 업을 받으므로 승군의 살계에 대한 파계 유・무는 그 누구도 아닌 승군 자신만이 그 업의 결과로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장에서 살생은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전쟁 시작의 배경이 무엇이든 상대가 내게는 적군이지만, 그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기도 하다. 단지 전쟁이란 상황과 적군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나의 입장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유정으로 만든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적군이어서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생하면 여기에는 살생의 고의성이 있으므로 살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의로 왜적을 살생한 승군이 있다고 해도 희대의 살인자로 불리는 앙굴리말라처럼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고, 정진하고, 선을 쌓았다면 파계는 했을지언정 악업에서 조금은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율장에서 범계의 처벌로 발로참회를 강조하는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승군의 살생은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에서 기인한 것이며, 파계와 지계의 판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는 왜적의 침탈을 받지 않을 만큼 강대한 국가를 만들지 못했고, 칼 대신 불법으로 적군의 마음을 돌려놓을 만큼 불심의 힘도 키워 놓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그 공업을 계속해서 상속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역사를 나침판과 거울삼아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준비해 공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다. 

 

 

한수진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佛敎戒律에 나타난 食文化硏究』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계율을 바탕으로 불교문화를 연구하고 있으며, 동국대 불교대학 강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