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스님] 나라 위해 칼 든 스님들 충무공의 애국충정 기려

2022-03-29     최호승

하삼도(下三道), 즉 충청도와 전라도 그리고 경상도에는 수군(水軍)이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총지휘했고, 하삼도에는 각 지역 수군을 통솔하는 절도사가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 전라좌도 수군 총책임자, 절도사로 임명됐다. 순천, 흥양, 광양, 낙안, 보성 등 수군을 지휘했는데 이때 진영(陣營, 군대가 진을 친 곳), 곧 전라좌수영이 여수다. 여기서 ‘임진왜란 종결자’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웠던 스님들, 승군(僧軍)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승수군(義僧水軍)이다. 이순신 장군은 왕에게 보고하는 문서인 장계(狀啓)에서 “힘든 전쟁에 편안 대신 의로운 기운을 발휘해 나라의 치욕을 씻으려 했으니 진실로 칭찬할 일”이라며 “부지런함과 힘든 모습은 군관들보다 곱절이나 더하며, 적을 무찌를 때는 공로가 뛰어났고, 나라를 위한 의로운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았다”라고 했다. ‘임진왜란 종결자’ 이순신 장군이 극찬한, 의롭게 일어나 나라를 지켰던 그 많은 스님은 어디에 있었을까?

여수 충민사(忠愍祠)는 충무공 이순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을 모시는 사당으로 충무공을 기리는 사당 중 최초로 세워졌다. 인접해 있는 석천사는 의승수군으로 활약했던 자운, 옥형 스님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충민사 옆에 세웠다. 

이순신을 기리는 도량 석천사

“…(상략)…이 공이 전사한 후에 충민사 곁에 정사를 짓고 80여 세까지 수직하고 소제했다. 해상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공이 꿈에 나타나니 어찌 이 공의 영이 잠들었다 하겠는가. 그는 갔으나 그의 애국충정은 죽지 않았음이다. 뒤에 스스로 군민들이 옥형 스님의 의리를 사모해 재물을 내어 암자를 중창하고 승도들을 수호케 했으니 절 이름을 석천이라 하고 옥형 스님의 영정이 동쪽 벽에 모셔져 있음도 법사의 감응이라 하겠다.”  
__ 『여수읍지』 

종종 전쟁의 선봉에 섰던 의승수군들은 노량해전에서 숨을 거둔 이순신 장군을 잊지 못했다. 아니, 잊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 7년을 함께 한 승장(僧將) 자운 스님은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렸다. 노량에서 쌀 600석으로 수륙재를 지냈다. 이순신 장군과 생사를 넘나들었던 승장 옥형 스님은 충민사 옆에 초당을 짓고 수십 년 추모 제사를 올렸다. 이 초당이 지금 충민사(忠愍祠) 옆 사찰, 자운과 옥현 스님이 창건했다는 석천사(石泉寺)다. 옥형 스님은 평생을 석천사에 머물며 충민사에서 이순신 장군과 의승수군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의 미비한 순천 부분을 보완한 『승평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충민사에 옥형이라는 승려의 일화가 있다. 그는 본시 충무공의 배를 타고 전쟁을 하던 이요, 언제나 공의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공이 전몰한 뒤에 공의 인격과 충절을 잊을 수 없어 충민사 사당 곁에 조그마한 정사(精舍)를 짓고 거기에 수직하고 있으면서...(하략)...”

그래서다. 석천사에는 의승당이 있다.   

여수 흥국사는 의승수군이 주둔했던 주둔지다. 선당 상량문에 자운, 옥형 스님 등 의승군의 기록이 남아있다. 
1. 흥국사 홍교(虹橋), 조선시대 세워진 다리 2. 흥국사 대웅전 천장 3. 흥국사 대웅전, 1624년(인조 2)에 세웠다.

스님 수군 300명 지냈던 흥국사

이순신 장군이 직접 챙겼던 절이 여수에 있다. 영취산 흥국사다. 흥국사가 소실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건 계획을 세우고 박춘양을 감독관으로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왜 이순신은 흥국사를 챙겼을까? 스님으로 구성된 의승수군이 지냈던 주둔지, 곧 주진사(駐鎭寺)가 흥국사(興國寺)다. 

흥국사는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이 절이 잘되면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잘되면 이 절도 잘된다”라면서 창건한 절이다. 1988년 중창 불사 중이던 흥국사에서 놀라운 문건이 발견됐다. 선당과 적묵당, 심검당 등 전각에서 나온 상량문이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의승수군 이야기를 입증한 것이다. 군사의 조직은 물론 “의승 300명(義僧 三百名)”이라는 문구, 300명의 명부가 나왔다. 

현재 흥국사 승병수군유물전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전시관에는 임진왜란 당시 스님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칼, 창, 철퇴 등의 무기 그리고 승복 등 20여 점도 있다. 특히 전시관에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현판 공북루(拱北樓)가 있다. 공북루는 북쪽 성문인데 ‘임금이 북쪽에 있으므로 예를 갖춘다’라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은 수시로 공북루에서 의승수군을 훈련했다. 이밖에 대웅전과 봉황루 사이, 법왕문(法王門)은 의승수군이 참석하는 의식 때 계급 혹은 승가의 위계상 어른들이 자리한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