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소확행#] 산사 길목에 진분홍 치맛자락, 진달래

[저절로 소확행#] “아름 따다 뿌리니 사뿐히 즈려밟고…”

2022-04-01     최호승
연꽃 떨어진 곳에 다섯 개 절을 지어 오련산으로 불린 강화 고려산의 진달래 ⓒ강화군

봄을 기다리는 꽃이 있다. 먼저 피지 않고, 잎도 없이 꽃이 핀다. 가을부터 봄에 꽃 만들 에너지를 저장하는 ‘겨울눈’을 만들고, 겨우내 견디고 봄이 오면 빠르게 꽃을 피운다. 잎 없이 꽃을 피우니 벌과 나비들이 찾기 쉬워 반긴다. 꽃가루도 잎에 걸리지 않아 수정도 효율적이다. 봄과 함께 오는 ‘봄의 전령’ 매화처럼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진달래다. 

진달래는 간혹 오해를 받기도 한다. 철쭉, 영산홍과 비슷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오해는 금물! 꽃 피는 시기와 잎의 유무, 그리고 색이 약간 다르다. 일본에서 철쭉류를 개량한 원예종 영산홍은 4~5월, 철쭉은 가장 늦은 5~6월에 핀다. 진달래는 그보다 가장 이른 3~4월에 잎 없이 꽃이 핀다. 참꽃 또는 두견화(杜鵑花, 두견새가 밤새 피 토해 울어 그 피로 분홍색이 됐다는 설화에서 유래)라고도 하는데, 진달래는 먹을 게 없던 시절에 꽃잎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어 참꽃이라고 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독성 탓에 먹지 못하는 철쭉은 개꽃이라고 불렸다. 꽃이 연분홍이고 잎이 둥글면 철쭉, 꽃이 작고 화려한 색깔을 뽐내면 영산홍이다. 

국립수목원이 발표한 봄꽃 만개 예측지도를 보면, 진달래는 4월에야 50% 이상 활짝 필 것으로 보인다. 5월이면 산에 진달래는 지고 없다. 봄꽃을 본다면 대개 철쭉이다. 4월이다. 벚꽃엔딩도 좋지만, 봄꽃으로 ‘꽃대궐’ 차린 동네에서 진달래 찾아 산사로 가벼운 나들이는 어떨까? 

 

연분홍 진달래와 다도해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제 대금산 ⓒ거제시 

산등성이에 흐드러진 진달래 군락

봄에는 ‘꽃길’만 걷자. 대한민국 꽃길 중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 많다. 3대 군락지로 불리는 여수 영취산, 거제 대금산, 창원 천주산이 대표적이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는 곱기로는 제일로 꼽힌다. 4월이면 산 중턱이 진달래로 뒤덮인다. 정상 북동쪽 450봉과 인근의 작은 바위봉우리, 서래봉 등에 두루 진달래가 피는데 매년 진달래 축제 땐 450봉이 인기다. 거제 대금산은 산에 핀 진달래 그리고 바다를 동시에 감상하는 뷰 맛집이다. 쉽게 등반 가능한 나지막한 산이라 많은 상춘객이 찾는다. 대금산 북쪽 8부 능선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진달래 군락지 능선 따라 정상에 오르면 잊지 못할 추억을 찍을 수 있다. 연분홍 진달래로 치마를 입은 산과 다도해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을 뒤덮는 진달래 자생지로 유명한 곳으로 창원 천주산도 있다. 용지봉에서 천주봉에 이르는 진달래 군락지는 6,000 규모에 이른다. 말 그대로 꽃동산이다. 진달래가 져도 그 자리에 피는 철쭉과 야생화를 찾는 이들이 많다. 

3대 군락지로 불리는 곳 외에 빠지면 섭섭한 군락지가 많다. 창원은 진달래 천지다. 

천주산 말고 백두대간 낙남정맥의 최고봉, 무학산 역시 진달래 명소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듯한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 붙은 무학산은 학의 머리에 해당하는 학봉과 양쪽 어깨 부분인 능선에서 진달래가 장관을 연출한다. ‘밀양 8’경으로 꼽히는 종남산도 있다. 팔각정 주차장에서 30분만 걸어서 갈 수도 있어 진달래 꽃길 산책으로 좋다. 밀양 시내 주변 산 가운데 가장 높아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대견사를 거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운 대구 비슬산의 진달래 군락 ⓒ대구시 달성군 
드라마 <허준>을 촬영했던 대표적인 진달래 군락지 창녕 화왕산 ⓒ창녕군

꽃대궐 차린 동네에 절도 있더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한 번쯤은 불러봤을 동요, <고향의 봄>이다. 고향이든 사랑이든 행복이든 봄꽃은 그리움과 함께 핀다. 그리고 진달래 꽃대궐 차린 동네엔 절이 있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의 동요 <고향의 봄> 아기 진달래 무대가 바로 창원 천주산이다. 진달래 군락지로 가는 산행길에 작은 암자 천주암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후반에 산문을 연 범어사 말사다. 매년 진달래 축제 때면 상춘객들이 다과를 즐기는 도량이다. 

‘대구의 어머니 산’ 비슬산은 장쾌하게 솟은 기암, 강처럼 흐르는 암괴류, 진달래 군락지 명소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스님의 수행지로 알려진 비슬산은 봄이면 온산이 진분홍으로 물든다. 그곳에 굽이치는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신라시대 사찰 대견사가 있다. 깎아지를듯한 벼랑 위에 선 대견사는 낙동강 굽이치는 들판을 앞마당으로 뒀다. 뒤로는 거대한 바위들을 병풍처럼 둘렀다. 이 바위들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면 산 정상 100만m2의 진달래 군락지를 만난다. 대견사를 거치지 않으면 환상의 꽃길은 걸을 수 없다. 부처님이 진달래를 굽어보는 곳도 있다. 창녕 화왕산이다. 화왕산성 주변과 관룡사로 이어지는 능선, 옥천계곡과 드라마 <허준> 촬영 세트장이 대표적인 진달래 군락지다. 

십리 억새밭과 분홍빛 진달래의 조화가 장관인데, 관룡사에서 관룡산 정상을 거쳐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6.5km 능선이 진달래 꽃길로 좋다. 관룡사에서 용선대에 오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용선대에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자 보물 석조석가여래좌상이 관룡사와 화왕산을 굽어보고 있다. 

진달래 3대 군락지에서 곱기로는 제일로 꼽힌다는 여수 영취산 ⓒ여수시

여수 영취산도 빼놓을 수 없다. 영축총림이 있는 영취산 통도사처럼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했던 인도의 영취산과 이름이 같다. 특히 임진왜란 때 백성과 나라를 지키고자 이순신 장군을 도와 칼을 들었던 의승수군(義僧水軍), 스님들이 머물던 흥국사가 있다. 흥국사 옆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르면, 영취산 자락을 장엄하는 진달래 회상이 펼쳐진다. 여수에는 동백으로 유명한 오동도, 관음기도도량 향일암, 이순신대교 등 들를 곳이 많다. 

경상도와 전라도에만 진달래 있으랴. 수도권에서도 산사를 참배하고 꽃길을 걷는 곳이 있다. 인천 강화도 고려산이 백미다. 4월 중순이면 산허리에 분홍색 치마를 두른다. 정상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1km가 꽃길이다. 고려산은 이름부터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옛 이름이 오련산(五蓮山)이다. 고구려 때, 사찰 터를 보던 인도의 덕 높은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오색 연꽃이 핀 오련지(五蓮池)를 발견, 오색 연꽃을 공중에 날렸다. 떨어진 곳에 색깔 별로 적련사(지금의 적석사), 백련사, 청련사, 황련사, 흑련사를 세웠단다. 현재 적석사, 백련사, 청련사만 남았는데, 진달래를 보려거든 보통 이 세 절에서부터 들러야 한다. 가장 가까운 도량은 백련이 내려앉았다는 백련사다. 도보로 30분이면 진달래 군락지에 다다른다. 능선 나무 데크길에 서면 흐드러진 진달래가 분홍빛으로 산자락 물들이는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경기도 이천 설봉산도 4월 중순이면 진달래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설봉산 진달래는 영월암과 장승마을을 잇는 고개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에 무리 지어 핀다. 2003년 세계적으로 희귀한 흰색 진달래가 발견되면서 유명해진 설봉산에 자리한 영월암(暎月庵)은 이름부터 빼어나다. ‘달빛이 비치는 암자’. 진달래만 보고 대웅전 뒤편 큰 바위에 새겨진 약 10m에 달하는 마애여래입상(보물)을 놓친다면 두고두고 아쉬울 일이다. 

서울 서초구와 경기 과천·의왕·성남시 경계에 자리한 청계산 진달래능선도 인기다. 2007년부터 관리되는 900개의 진달래능선 따라 옥녀봉에서 의왕 청계사를 참배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북한산 대동문 코스다. 북한산의 4월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능선에 가려면 백련사를 거쳐야 한다.

시인 김소월은 그랬다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고,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린다던 진달래. 아쉽게도 코로나로 대부분 진달래 축제는 취소됐다. 축제는 없지만, 진달래 나들이에 사찰도 참배한다면 봄 가실 때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