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습니다] 속지 않고 사는 법

2022-03-21     윤남진

시골마을 전통시장은 장이 서는 날이 정해져 있다. 대개 5일장이다. 구례, 곡성은 3, 8장이고 하동은 2, 7장, 남원은 4, 9장 같은 식이다. 각각 날짜의 끝자리 수가 장날이다. 이렇게 차례를 매기듯 장날을 정하면 서로 인접해 있는 지역에 상인들이 거의 매일 장을 돌며 물건을 팔 수 있게 하면서, 장마다 그 지역의 특색 있는 산물이 모여 지역 전통시장의 맛이 살아나게 된다. 

전통시장의 상인들에는 장이 열리면 늘 정해진 자리에 붙박이로 같은 종류의 상품으로 좌판을 펴는 부류가 있고, 지역의 산물을 가지고 오는 주민들이 있고, 또 가끔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나타나는 떠돌이(?) 좌판이 있다.

어느 날 장인어른께서 장에 다녀오시더니 자랑스럽게 내게 팔에 찬 시계를 보여주셨다. 

“이보게 이 시계가 얼마인 줄 아나? 아따, 이 좋은 걸 장에서 단돈 만 원 주고 샀어.”

나는 아마도 떠돌이 좌판에서 샀을 것이라는 미심쩍은 마음이 있었기에 더는 말씀드리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지 이삼일 후, 장인어른이 좀 안 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시계가 고장 났네.”

“네, 떠돌이 좌판에서 산 거라 수리도 안 되겠네요?”

결국 버리고 마는 것으로 마음을 접으셨다. 그 시계 장사꾼이 속여서 판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낭패를 본 것이다.

 

마음이 ‘혹’하면 속는 수밖에

젊은 시절 어느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스님은 시장에서 아주 좋은 삼베인데 정말 값싸게 준다는 말에 앞뒤 안 가리고 덥석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만 천연 삼베가 아닌 가짜로 밝혀져 모두 버려야 했단다. 그러면서 옛 어른들 말에 ‘군자는 속임수에 당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그렇더라고 했다. 겪고 보니 보통사람은 미혹해져서 속임수에 당하기 쉬운데 군자는 그렇지 않다는 뜻일 것이라 했다. 

누구든 살면서 혹(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상의 물건값보다 무척 값싸다거나, 우리의 일반 생각을 벗어나 쉽게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거나, 애쓴 것보다 크게 성취하게 된다거나 할 때, 우리의 마음은 ‘혹’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실정에서 많이 벗어난 것들에 혹할 때 우리는 속임수에 당하기 쉽다. 그러니까 현명한 사람(군자)은 그렇게 ‘혹’하지 않기 때문에 속임수에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도 속임수에 당하는 수가 있다. 『맹자』에 ‘군자(현명한 이)는 실정에 맞는 방법으로는 속일 수 있지만, 도리에 어긋나는 방법으로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를 그대로 읽는다면 현명한 사람도 실정에 맞는 방법으로 하면 속임수에 당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정에 꼭 맞게 속이면 속아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속는 것이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경우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리숙한 노인들에게 자식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들이대면서 돈을 뜯어내는 경우가 그렇다. 부모가 자식 걱정에 앞뒤 재지 않고 반응하면서 돈을 뜯기는 것은 부모의 자식 생각이라는 당연한 실정에 맞춘 속임수라 하겠다.

많은 인류학자는 사기꾼을 변별해 내려는 노력이 인간의 진화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인류로 번성하게 된 바탕에는 호혜적 이타주의가 큰 몫을 했는데, 호혜적 이타주의인 척하면서 나중에 보답하지 않고 이득만 취하는 사람, 즉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어떻게 탐지해 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진화의 숙제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자기 정당화에서 벗어나기

그러나 나는 최근 나의 지난날을 돌아봤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속이고 속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 더 구별하기도 어렵고 더 근본적인 문제를 낳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가장 흔한 경우가 자기 정당화다. 나 또한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의를 주장하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간혹 불의와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냈던 적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 반복되면, 자기 자신에게 속는 줄도 모르고 계속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을 하게 된다. 이미 자기 정당화로 사람이 뿌리부터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이 다 나의 틀어진 생각대로 바뀌어 보이게 되고, 그러면 세상 모두가 다 틀어진다. 세상 모든 사람을 속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죄가 가장 무섭고 큰 죄라고 한 것 같다. 깨달았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확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속인 허물이 자기 자신만 아니라 자신에게 속아 자신을 따르게 된 수많은 사람도 망치게 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죄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이라. 결국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 그것이 근본적으로 속고 속이는 일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아닐까?

장인어른께 시계 구입에 대한 조언을 드렸다. 

“아마 중고등학생들이 시험 볼 때 필요해서 손목시계를 살 텐데요. 그런 값싼 용도로 쓰는 시계는 문구사에 가면 있습니다. 그게 쓸 만할 겁니다.” 

장인어른은 그 말이 옳은 듯하면 바로 실행하는 성격이시라, 다음날 읍내 가장 크고 유일한 문구사에서 시계를 사 오시고는 좋다고 하며 다시 내 것까지 사주셨다. 나는 2년 보고 쓰시면 된다고 너무 큰 기대감을 누그러뜨렸다. 

속임수를 방비하는 하나의 방법은 실정에 맞는지를 평소에 잘 알아두는 것, 세상 물정에 어둡지 않은 것도 필요하리라. 세상은 종종 실정이 변하면 따라서 도리조차 변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윤남진
동국대를 나와 1994년 종단개혁 바로 전 불교사회단체로 사회 첫발을 디뎠다. 개혁종단 순항 시기 조계종 종무원으로 일했고, 불교시민사회단체 창립 멤버로 10년간 몸담았다. 이후 산골로 내려와 조용히 소요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