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독일의 불교

세계의 불교, 유럽편

2007-09-17     관리자

독일 최고의 대학과 고성으로 유명한 낭만의 도시 하이텔베르크의 중심지. 철학의 나라인 독일의 학계. 특히 대학에서의 불경원전 연구는 세계적 수준이다. 현재 독일은 불교협화가 창설되는 등 불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필자 에게는 독일 하면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언젠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맥도널드 햄 버거 식당에서의 일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기에 쟁반에 받아 들고는 카운터 테이블에 놓 여있는 냅킨 상자에서 무심코 평소대로 대여섯 장의 휴지를 뽑았는데 내 바로 뒤에 있던 자 그마한 체구의 독일 할머니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할머니는 내 얼굴과 냅킨 뭉치를 번 갈아 쳐다보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필자는 '아차 여기는 독일이었구나.'하는 생각을 가져야 했다. 성냥불하나도 일곱 사람 이상 모여야 켠다는 곳 아닌가 싶어 손에 든 휴지 뭉치가 부끄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 다. 테이블이 보이는 곳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사람들의 손을 관찰했다. 그랬더니 누구나 한 장씩만 뽑아 드는 것 아닌가. 찢어진 청바지의 긴 머리 펑크족 청년까지도 딱 한 장을 뽑아 드는 모습을 보곤 필자는 고개를 꺼덕여야 했다.
이런 독일 사람들이 불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어떤 모습으로 불교는 그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베를린 동쪽 교외인 프로나우의 풍광 좋은 숲 언덕 위에는 고풍서린 건물이 우람하게 서 있 다. 이름하여 '불교의 집'. 화강암으로 전면이 장식되어 있는 본채 건물 말고도 크고 작은 건물이 여러 채 있는 이곳은 베를린 최대의 불교 사찰이다.
1917년 독일 불교의 선각자인 파울 달케 박사(1865~1945)에 의해 창설된 이 곳은 한때 나치 치하에서 탄압을 받아 폐쇄되기도 했지만 독일 불교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기념비 적인 곳이다.
여기서는 불교 강연회, 법회, 참선용맹정진, 불교 관계 서적 및 유물자료 전시가 연중무휴로 열리고 있다. 본당 왼쪽에 증축된 도서관에는 수천 권의 불교 장서가 가득 차 있다. 이 사찰 은 이전에는 달케박사의 가족들 명의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스리랑카 불교 포교회인 '독 일 달마회' 소유로 되어 있다. 이 곳은 티벳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가 베를린을 방문할 때면 꼭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불교의 집에는 58년 이후 스리랑카 출신 스님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60년대 초에 증축 과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1992년 9월. 이곳에서 '단일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하에 유럽 불 교도 대회가 독일 불교 연합과 베를린 불교 협회 주관으로 열렸었다.
유럽 전역에서 4천여 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던 이 대회는 인간 상호이해를 위한 불교의 심 오한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면서 독일 통일 이후, 동유럽의 공산정권 붕 괴 이후 동서 냉전의 해빙에 불자들이 적극 나서자는 결의를 이끌어 냈었다. 이 대회는 독 일 제2 공영 방송인 체트데에프에서 크게 소개하기도 했기에 독일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기도 했었다.
이 베를린 불교의 집 말고도 뮌헨 슈투가르트, 프랑크푸르트, 쾰른등 독일의 주요 도시에는 사찰이라기보다는 회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불교 사찰이 하나씩은 건립되어 있다.
독일에서도 여타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종교는 환영받지 못한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반반 의 교세를 갖고 있는 기독교 국가로 분류되는 독일이지만 일요일 예배나 미사에는 연로한 노인들의 모습만 눈에 뜨일 뿐이다. 현재 독일에는 약 4만 5천여 명의 불교 신자가 있는 것 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중 2만 5천 명이 베트남 출신 이민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숫자상으 로는 독일 불교의 교세는 큰 편이 아니다.
모든 종파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는 베를린 불교의 집은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다는데 정식 회원은 3백 명 남짓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숫자와의 관계없이 사색을 즐기며 철학을 좋아하는 독일인들에게 생의 유한함 속에서 무한함의 인연을 설하는 불교의 가르침이 매력 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 할 수 없다.
철학의 나라인 독일의 학계, 특히 대학에서의 불경 원전 연구는 세계 수준이지만 일반인들 의 불교는 선(禪) 불교 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독일의 불교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집에 불상을 모실 정도로 불교에 심취해 있었으며, 불교 사상을 일반 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호혜적 소개를 바탕으로 헤르만 올덴버그, 칼 자이덴 슈티커 등이 중심이 되어 1903년 라히프찌히에서 '독일을 위한 불교 포교회'가 설립되었고, 1909년에는 '독일 팔리어 학회'가 결성되었으며, 이 명맥을 받아 1912년에는 '불교적 삶을 위한 연합'이란 단체가 결성되기도 했다.
이들 단체들은 '불교 세계' '불교 회지'등의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기도 했으나 1차 세계대 전의 발발로 활동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1차 대전 이후 게오르그 그림(1868~1945), 앞서 언그반 파울 달케 등의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독일의 불교는 다시 부흥했고, 불교협회가 활동을 재개했지만 또 다시 나치의 탄압과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활동이 중지되어야 했다. 나치는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동원하여 불교 단체 들의 모든 서류를 압수했고 그 활동을 전면 금지케 했다.
전후 독일 불교는 발터 페르지안(1905~1983), 크루트 슈미트(1879~1975) 등에 의해 다시 개 척되기 시작했는데 페르지안은 '불교 세계관'이란 잡지를 발간했고, 슈미트 박사는 '석가의 가르침' '불교학 사전'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1946년에 독일 불교 협회가 재건되었으며 '51년에 베를린 불교 협회가 창설되는 등 많은 불 교 단체들이 재건 또는 새롭게 발족되었다. 1960년 함부르크 출신 막스 글라호프에의해 당 시 16개로 나뉘어져 있던 불교 단체가 독일 불교도 연합회(DBU)로 통합했으며, 1984년에는 연방정부에 의해 불교가 '세계적 종교'로 인정받게끔 되었다. 여기서 정부로부터 세계적 종 교로 인정받았다고 하는 것은 공식적 정부 지원, 기금 사용등의 권리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의가 큰 일이다.
이같은 독일 불자들 스스로의 노력과 아울러 같은 시기 일본. 베트남. 태국. 중국. 싈랑??등 아시아 불교 국가의 이민자들에 의해 불교가 새롭게 소개되고 어울려지면서 독일 불교의 오 늘에 이르고 있다.
독일 불교도 연합회는 '85년 유럽 불교도 연맹(BUE)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국제 불 교도 협회(WFB)에도 가입해 14차 총회에서 자국 출신 칼 슐츠 씨가 12명의 부회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임되는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독일 역시 서구 사회의 고질병인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시달리고 있는 선진국이다. 서구의 종교, 철학으로서는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실망 위에서 그들은 적어도 이런 문제 들에 대한 해답이 불교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혜적 관심을 지니고 있다.
1982년 85년 두 차례에 걸쳐 달라이 라마가 독일을 방문해 티벳 불교의 명상법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한 불교의 역할을 역설했을 때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독일에서의 불 교의 발전 가능성의 잠재력을 보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양 철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이야말로 서구 정신문화의 가장 완고하고 전통적인 보루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성공은 서구 전체에서의 성공과도 통한다. 95년 말 현재 독일에 는 네 분의 한국 스님(비구 3, 비구니1)이 유학(3) 및 포교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를린에는 쌍계사 독일 분원 총지사가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국제불교문화원 보 문사가 한국스님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5천 명에 달하는 베를린 교포들과 독일인 신도들의 벗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와 함부르크동지에서도 유학 중인 스님 법사들에 의해 한국불교가 소개 되고 신행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이같은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 독일 불교를 이 야기할 때 한국불교가 반드시 앞자리에 거론되는 그런 역할과 성과가 있게 되기를 기대한 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