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세계의 변호인, 지장] 동물천도와 지장신앙

뭇 생명 위로하는 현덕사 동물 천도재

2022-01-24     현종 스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가치는 똑같이 소중하다. 목숨이 오직 하나뿐이기에 한 번 죽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사랑하는 이들과 두 번 다시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이 영원히 이별하는 게 죽음이다. 그러니 죽기 싫어하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살아 있는 누구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때가 되면 반드시 찾아오는 손님이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이나 파충류 등을 키우며 함께 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난이나 화초 등 식물까지 포함하면 전 국민이 동식물과 서로 사랑을 주고받고 교감하며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남에는 이별이 있고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정을 나누고 살았던 반려동물이 죽음으로써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큰 고통이고 괴로움이며 슬픔이다. 이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는 게 곧 천도재고 제사다. 

 

어린 시절 죽인 제비에 대한 참회

현덕사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매년 가을에 동식물 천도재를 지내고 있다. 인간의 탐욕으로 죽어간 뭇 생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사다. 처음에는 동식물 천도재를 대부분 낯설어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죽음의 고통과 슬픔은 죽은 자의 몫이 아니고 산 자의 몫이다. 누군가의 죽은 날을 기억해 제사나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결국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를 위해 하는 것이다. 물론 망자의 영혼에도 좋지만 먼저 보낸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그리워하고 추억한다는 점에서 자기위안이고 자기만족이다.  

현덕사의 동식물 천도재도 필자의 출가 전 어렸을 때 빨랫줄에 앉아 지저귀며 놀고 있던 새끼 제비를 죽인 죄책감에서 시작됐다. 출가했어도 봄에 제비가 날아오면 파르르 떨며 죽어가던 새끼 제비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마음을 괴롭혔다. 생각하면 부끄럽고 잘못한 짓이었다. 음력 칠월 보름 백중날 사찰에서 위패를 모셔놓고 갖가지 음식을 차려 천도재 지내는 것을 봤다.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인 제비를 위해 재를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이 아닌 동물을 위해 지내는 제사는 보지 못했다. 

현덕사를 개원하고 그 이듬해 백중 천도재에 ‘합천 제비 영가’라 위패를 쓰고 사람들 위패 옆에 놓아 같이 지내기로 했다. 신도들이 봤을 때 상상이 안 가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상 위패를 내리고 현덕사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히 자기 조상들 위패 옆에 제비위패를 함께 모시는 게 절대로 용납 안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누구도 시비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현덕사 지장단에는 사십구재를 지낼 할머니의 영정, 고양이 영정사진과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그리고 ‘망 애견 노뙈지 영가’라고 적힌 위패도 놓여있다. 가족의 품을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넌 뙈지의 1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죽인 동식물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 필자처럼 철없는 시절 놀이 삼아 죽이기도 하고 먹고살려고 살생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도 있다. 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수로 죽이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운전하다 보면 도로에 수많은 사체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차를 세워 콘크리트 바닥에서 사체를 꺼내 흙이나 수풀로 옮겨 준다. 가능하다면 묻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짧게라도 원한을 거두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축원을 한다. 차에서 못 내리고 그냥 지나치며 본 죽음에도 지장보살을 불러 축원을 올린다. 죽음은 흉하고 보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어떤 사람은 더럽다고 침이라도 퉤 뱉고 지나간다. 그러나 불자라면 짧게 염불이라도 하는 게 좋다. 인간들 때문에 죽어간 귀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현덕사에서 동식물 천도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동참했다. 온갖 사연들을 가지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허리가 아픈데 고양이를 고아 먹으면 좋다고 해서 여러 마리를 먹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먹었지만 낫지 않고 여전히 아프다는 것이다. 오히려 죄 없는 고양이를 삶아 먹었으니 죄업만 더 쌓은 거라고 후회만 한가득이라고 했다. 몸에 좋다고 뱀만 보면 잡아먹었다는 사람도 천도재에 동참했다. 그 사람들이 천도재를 지낸 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제사나 천도재는 잘못된 죄업을 뉘우치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나부터도 제비를 위해 천도재를 지낸 후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해마다 봄이면 오는 제비를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다.  

 

천도재 곧 불성이자 대자비심

예전 사람들은 그래도 생명을 귀하게 여긴 듯하다. 속가의 모친은 뜨거운 물을 버릴 때도 꼭 뜨거운 물 내려가니 빨리 피하라고 말을 한 후 버렸다. 그리고 새끼를 가진 것은 절대로 잡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고 일러줬다. 

우리 집에는 20년을 산 검이라는 개가 있었다고 했다. 큰형님이 태어날 때 검이도 태어났는데, 큰형님 스무 살 때 검이가 죽었단다. 그때 술과 오징어를 장만해서 일꾼을 시켜 앞산 양지쪽에 묻어줬다는 것이다. 왜 검이냐고 물어봤더니 털이 검은 색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옛날 사람들도 반려견에게 이름을 지어 불러줬고 한 가족처럼 여기고 살았다. 그리고 죽으면 정성을 다해 양지바른 곳에 묻어줬다. 

현덕사에는 흰둥이와 현덕이가 함께 살고 있다. 흰둥이는 나이가 많아 한 스무 살쯤 됐을 거다. 흰둥이가 젊고 건강했을 때 항상 필자를 따라 산에 같이 가고 포행 길에도 길동무가 됐다. 나를 위해 온갖 재롱을 다 부리고 살았다. 사찰에 오는 신도들을 맞이해서 같이 놀아 주기도 했다. 흰둥이는 이제 나이가 많아 아픈 데가 많다. 얼마 전에는 슬개골 수술을 했다. 수술 후 관리를 잘 못 해 재수술을 했다. 이제는 완치될 때까지 큰 동작을 못 하게 집안에 가둬 놓고 시간 맞춰 산책하고 운동을 시키고 있다. 보험이 안 돼서 병원비가 비싸다. 그렇다고 아파 걸음도 못 걷는데 치료를 안 해줄 수 없다. 돈이 많이 들어도 오랜 세월을 함께 산 가족인데 당연히 해줘야 했다. 흰둥이의 영정사진도 진즉에 찍어 놨다. 너무 나이가 많이 들면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구는 인간만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동물들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고 했다. 우리하고 모습만 다를 뿐이지 따뜻한 마음은 똑같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곧 불성이고 대자비심이다. 현덕사에서 천도재를 지내는 이유는 이렇게 보편적이고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됐다.  

 

현종 스님
현덕사 주지를 하고 있다. 현덕사에 오는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반려견 흰둥이 현덕이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