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세계의 변호인, 지장]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장신앙으로 본 18지옥

2022-01-24     현주 스님
<지장시왕18지옥도(地藏十王18地獄圖)>, 1575~1577년, 일본 지은원(知恩院) 소장

2021년 12월 ‘인류의 눈’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마침내 발사됐다. 100억 달러(11조 9000억 원)라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만든 이 망원경은 빅뱅 직후 생성된 빛을 추적해 우주의 기원을 밝히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외계행성을 찾는 일 등에 활용될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 인류의 시각은 지구 안에서 머무르던 시기를 지나 머나먼 우주로 확장됐다. 이렇게 발전한 과학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지옥이 실존하냐고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현대교육을 받은 이들 중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과연 지옥은 존재할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팔열八熱 지옥의 모습

지옥의 인도 말은 나라카(Naraka)며, 중국어로 음차해 나락(奈落)이라 불린다. 지옥은 업과, 윤회와 마찬가지로 고대 인도의 관념이 이른 시기에 불교에 수용된 사례다. 때문에 『맛지마 니까야』를 비롯해 『숫타니파타』, 『법구경』 등 초기경전에 자주 등장한다. 지옥의 관념은 초기경전에서 대승경전으로 갈수록 체계화됐으며, 『구사론』과 『정법념처경』에서는 팔대지옥과 각각 큰 지옥에 속해있는 16개의 별처지옥으로 정리됐다. 따라서 지옥은 총 128개인 셈이다.

이들 경전에 의하면 지옥은 우리가 사는 염부제의 깊은 땅속에 있으며, 큰 지옥이 8개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등활지옥(等活地獄)으로 살생의 죄업으로 떨어지는 곳이다. 이 지옥의 죄인들은 항상 서로 해치려고 하며, 만나면 서로의 쇠 손톱으로 붙잡고 할퀸다. 싸움은 피와 살이 다 흩어지고 뼈만 남았을 때 끝나게 되는데 이때 옥졸들이 “살아나라, 살아나라”라고 노래를 부르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 다시 살아난다. 그러면 다시 서로 해쳐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고통을 받는다. 

두 번째 흑승지옥(黑繩地獄)은 검은 쇠줄로 온몸을 묶고 도끼나 톱, 칼 등으로 베고 끊어내는 고통을 받는 지옥이다. 이 지옥은 도둑질했던 죄업으로 가게 된다. 

세 번째 중합지옥(衆合地獄)은 큰 철산 사이에 죄인을 끼워 넣어 압사하는 지옥으로 주로 삿된 음행의 죄업으로 가게 된다. 

네 번째는 고통으로 울부짖는다는 뜻의 규환지옥(叫喚地獄)이다. 이곳은 술과 관련된 죄업을 짓게 되면 가는 곳으로 쇠집게로 입을 찢고, 구리 쇳물을 마시게 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다섯 번째는 고통으로 인해 규환지옥보다 더 크게 울부짖는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이다. 이 지옥은 입으로 짓는 죄업을 범하게 되면 떨어지는 곳이다. 이 지옥은 구업(口業)과 관련되기 때문에 대부분 혀에 형벌을 받게 된다. 옥졸이 길게 뽑힌 죄인의 혓바닥에 뜨거운 쇳물을 들이붓는다든지, 혀를 칼로 베어 버리는 등의 형벌을 가한다. 

여섯 번째는 부처님의 진리를 무시하고 삿된 소견을 믿는 자가 떨어지는 초열지옥(焦熱地獄)이다. 이 지옥의 죄인들은 자신의 죄업이 다할 때까지 불타는 형벌을 받는다. 

일곱 번째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은 오계를 범한 죄인이 가는 곳이다. 이곳의 죄인들은 큰 불구덩이에서 몸이 익어 터지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이다. ‘아비’는 ‘아비치(Avīci)’를 음사한 말로 간격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고도 한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통 또한 가장 극심한 곳이다. 아비지옥은 부모를 살생하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거나, 삼보를 비방하고, 사찰의 재물을 훔치거나, 절 안에서 음행이나 살생하는 등의 죄를 지으면 떨어진다. 이 지옥의 죄인들이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는 다른 지옥의 중생들이 듣기만 해도 자신의 고통을 잊고 두려움에 떨 정도라고 한다. 아비지옥은 불꽃 다발이 가득 차 있는데 죄인들은 온몸이 타면서도 죽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불꽃 부리를 가진 새가 죄인의 살을 먹고 뼈를 부수지만 이내 다시 살아난다. 또 불꽃 바퀴가 온몸을 부수는 고통을 받기도 하는데 이러한 형벌로 받는 괴로움이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무간지옥이라고 불린다. 이상과 같은 8개의 지옥을 팔열지옥(八熱地獄)이라고 하며, 각각의 팔열지옥 옆에는 추위로 고통받는 팔한지옥(八寒地獄)이 짝하고 있다. 그러나 지옥의 교설이 성행했던 인도나 서역의 사막지대 문화에서는 팔한지옥의 고통이 체감될 수 없었기 때문에 팔한지옥은 명색을 갖추는 정도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교학적으로 지옥은 『구사론』이나 『정법념처경』 등을 통해 팔대지옥으로 정리됐지만, 조선시대에는 확고히 자리 잡은 지장신앙으로 인해 『지장보살본원경』에 근거한 18지옥이 널리 알려졌다. 

 

18지옥의 모습

조선시대 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여성을 꼽자고 하면 단연 문정왕후를 떠올리게 된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계비로 아들인 명종이 즉위한 후 수렴청정을 통해 불교중흥을 도모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드물게 국가 권력을 손에 쥐었고, 불교중흥을 꾀했다는 점에서 조선의 측천무후로도 불렸다. 그런 문정왕후의 조카였던 숙빈 윤씨 또한 인종의 후궁으로 입궐해 고모였던 문정왕후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여성 불자로서 다양한 불사를 일으켰다. 숙빈 윤씨가 발원하여 자궁정사(慈宮淨社)에 봉안했던 지장·시왕과 18지옥을 그린 그림은 현재 일본 교토의 지은원(知恩院)에 있는데 조선시대 지옥 그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1. <지장시왕18지옥도> ‘아비무간지옥(阿鼻無間地獄)’ 부분.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통 또한 가장 극심한 지옥.
2.   <지장시왕18지옥도> ‘추장발폐지옥(抽腸拔肺地獄)’ 부분. 창자를 빼내어 자르는 지옥.
3. <지장시왕18지옥도> ‘설경지옥(舌耕地獄)’ 부분. 혀를 뽑혀 쟁기질 당하는 지옥.
4. <지장시왕18지옥도> ‘흑암지옥(黑闇地獄)’ 부분. 지옥의 문이 크게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낸 것처럼 묘사됐다.

이 그림의 화면은 상하 2단으로 구성됐는데 위쪽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을 그렸고, 아래쪽에는 지옥중생들이 18가지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 그림의 18지옥 가운데 『지장보살본원경』에서 살필 수 있는 지옥은 아비무간지옥(阿鼻無間地獄), 창자를 빼내어 자르는 추장발폐지옥(抽腸拔肺地獄), 혀를 뽑혀 쟁기질 당하는 설경지옥(舌耕地獄), 쇠 매가 눈을 파먹는 쇠매지옥(鐵鷹地獄), 뜨거운 구리기둥에 묶이는 동주지옥(銅柱地獄), 온몸에 못 박히는 정신지옥(釘身地獄)이다. 이 외의 지옥들은 여러 경전이나 설화에서 설해지는 유명한 지옥들로 이 그림의 18지옥은 지장신앙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불자들이 상상하던 지옥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옥의 문이 크게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낸 것처럼 묘사된 흑암지옥(黑闇地獄)은 『정법념처경』에서 설하고 있는 암명지옥(暗冥地獄)이다. 암명지옥은 외도들이 염소나 거북이 등 산짐승을 죽여 재를 지낸 업으로 가는 곳으로 항상 큰불이 타고 있으며, 지옥중생들은 한량없는 세월 동안 어두움 속에 사는데 바늘 끝만큼의 조그만 광명도 없어 자기 몸의 털에 불을 붙여 빛을 보려 하지만 결국 자기 몸을 모두 태우게 된다. 현대적으로 보자면 소나 돼지를 제물로 잡아 굿을 한 죄업으로 가는 지옥이라 할 수 있다. 

5. <지장시왕18지옥도> ‘도산지옥(刀山地獄)’ 부분. 칼날로 이루어진 산에 올라가는 지옥. 

흑암지옥의 밑에는 칼날로 이루어진 산에 사람들이 올라가는 도산지옥(刀山地獄)이 펼쳐져 있다. 도산지옥 역시 살생한 죄업과 관련이 있다. 『정법념처경』에는 도륜지옥(刀輪地獄)으로 설해지고 있으며, 남의 물건을 훔치려 칼로 목숨을 해친 죄업으로 가게 된다. 그 지옥에는 숲이 있는데 나무의 잎이 모두 칼로 되어있다. 그 칼잎은 아주 날카롭고, 칼머리는 모두 밑으로 향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 숲은 푸르고 즙이 있어서 물과 비슷해 굶주리고 목마른 지옥 사람들이 서로 부르면서 달려간다. 그러나 그들이 그 숲으로 들어가면 숲의 칼날들은 그들의 몸을 사정없이 쪼개는데 지옥 사람들은 몸이 찢기면서도 죽을 수가 없다. 이들은 악업의 과보로 몸이 베이면 이내 살아나 계속해서 칼로 몸을 베이는 고통을 받게 된다. 

이처럼 지옥의 가장 큰 특징은 생로병사의 괴로움 가운데 ‘생(生)’이 가장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지옥의 진정한 무서움은 ‘죽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가장 큰 고통으로 생각하지만 지옥중생들은 끔찍한 형벌을 받다 죽으면 이내 되살아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고통을 받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옥은 죽음이 없어 고통스러운 곳이다.

 

‘입시지옥’, ‘출근지옥’...현재진행형인 지옥 

대중들 사이에서 ‘지옥’이라는 주제가 뜨겁게 회자했다.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때문이다. 드라마 <지옥>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겪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혐오, 폭력, 집단의 광기를 그리고 있다. 이 드라마 말고도 지옥은 문학, 영화, 게임 등에서 활발하게 소환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또한 “부동산 시장이 아비규환이다”, “코로나로 의료현장이 아비규환이다” 등의 기사를 통해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은 현재진행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흔히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입시지옥’, ‘출근지옥’ 등 지옥이라 표현한다.

지옥은 악업을 지은 중생들이 가는 곳이다. 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악업은 무엇일까? 바로 계율을 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지옥일까? 어떤 이들에게는 현실이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현대인들이 극락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살생과 도둑질, 거짓말, 삿된 음행 등의 죄업에 대해서 우리는 과거보다 한 걸음 나간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전에서는 지옥의 죄인들에게 옥졸들이 꾸짖는다. “네가 본디 악업을 지은 것은 욕심과 어리석음에 끌린 것이다. 그때 어찌 참회하지 않았느냐. 지금 참회한들 어찌 그 죄에 닿겠느냐.” 이 옥졸의 나무람은 현대인들에게도 유효하다. 지옥이 주는 가르침은 악업에 대한 과보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옥보다 극락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행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참회가 필요하다. 

 

현주 스님 
동국대 미술사학과에서 「조선시대 신중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사무국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조계종 교육아사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