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소확행#] 지리산 화엄사 구층암

모과나무와 기둥, 곶감 저마다의 시간이 흐른다

2022-01-31     최호승

 

다향사류 지붕을 받치고 사는 모과나무 기둥 곁에서 곶감이 익어간다. 

간혹 절에 들렀다가 뜻밖에 시간이 느리게 가는 모습을 본다. 나무 기둥이다. 세월이 단청을 벗겨낸 나무 기둥의 담백함, 제멋대로 휜 자유로움, 그런데도 저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는 책임감과 신기함…. 넋 놓고 바라보는 이의 시간도 더디 간다. 나무 기둥이 곱게 늙은 절집을 찾았다. 지리산 화엄사 산내 암자 구층암이다. 

완성하지 않은 늙음, 모과나무 기둥

화엄사 대웅전 뒤쪽으로 난 오솔길 끝에 구층암이 있다. 구층암 현판 걸린 요사채 앞에 삼층석탑 하나 놓였다. 요사채와 탑, 모두 곱게 늙었다. 겨울 오후 햇볕에 탑의 몸에 가부좌한 부처님이 도드라졌다. 1961년 9월 주변에 흩어진 돌조각들을 맞춰 올린 게 이 탑이다. 

암주 덕제 스님은 이미 차를 내리고 있었다. 차 향기가 사방으로 흘러나갔다. 다향사류(茶香四流)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과거 이곳은 선방이기도 했다. 화엄사 주지였던 도광 스님이 구층암에 선원을 개설했고, 일타 스님 역시 방부를 들이기도 했다. 정찬주의 소설 『인연』을 보면 일타 스님이 정진했던 도량이 구층암이었다. 

덕제 스님은 화엄사와 구층암 일원 야생차밭에서 딴 찻잎으로 차를 내렸다. 1995년 10월 마지막 밤 열차 타고 화엄사에 들어온 스님은 18년째 차를 만드는 내공으로 차를 내렸다. 뜨거운 찻물에 공기가 차분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저 절에 가면 저절로 느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반올림[#]할 수 있는 사찰을 쓴다는 ‘저절로 소확행#’ 연재를 설명했다. 그러자 스님은 “마음 편안해지려고 오는 거야”라며 따뜻한 차 한 잔 더 내렸다. 예사롭지 않은 이름, 내비게이션에도 유일한 그 이름, 구층암(九層庵)부터 물었다. 스님은 숫자 ‘9’에 담긴 의미를 들려줬다. 

“(인도에서)9는 완성의 의미가 있어요. 『화엄경』의 극락정토인 구품연대도 그렇고, 연화장(蓮華藏, 큰 연꽃 속의 불국토)이에요. 천불보전에 토불 1,000기가 있고, 천불보전 서까래 곳곳에도 연꽃을 만들어놨어요”

완성은 또 다른 시작이랬다. 비유에 찻잔이 쓰였다. 흙이 모양을 갖추고 불로 단단해져서 찻잔으로 완성됐고, 찻잔으로 새로운 삶을 산다고 했다. 쓰임이 다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만, 어떤 형태에서 완성과 시작 그리고 끝을 이어간다는 뜻이었다. 

구층암 모과나무도 그랬다. 모과나무로 한 생을 완성하고, 기둥으로 새 삶을 시작한 셈이다. 모과나무 기둥도 완성하지 않은 늙음이었다. 

 

업보와 공덕 그리고 시간의 뒤틀림

뒤틀린 놈은 뒤틀린 대로, 곧은 놈은 곧은 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쓴 사례는 더러 듣고 봤다.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은 달랐다. 가지만 쳐낸 나무 생김새 그대로, 자연목 모양대로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썼다. 조선 후기 살림집과 사찰 등에서 많이 썼던 ‘도랑주’라고 한단다. 모과나무 기둥은 마루와 지붕을 연결하는 결구(結構, 못 등을 사용하지 않고 부재를 조립하는 이음과 맞춤) 부분만 칼이 닿았다. 

다향사류 기둥 2개와 건너편 요사채 기둥 1개가 모과나무 기둥이었다. 굵기만 봐도 족히 100년은 넘어 보였다. 1936년 태풍 때 쓰러진 모과나무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님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에 새로 지었을 테니, 300년은 넘게 봤다. 오랫동안 모과나무 기둥을 바라본 스님의 생각을 물었다.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편안함이에요. 전혀 불편하지 않죠. 지혜 있으신 분이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쓰지 않았을까요?”
기묘한 동거였다. 천불보전 앞 모과나무 두 그루는 이 기둥으로 쓴 모과나무가 다시 자랐다고 한다. 생사가 한 도량에 있었다. 스님은 잘라 말했다. 분별심이라고. “가지는 잘렸지만, 기둥으로 살고 있는데 그걸 죽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요?” 스님은 각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했다.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위에도 시간이 흐른다고 했다. 천천히 풍화됐다가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다시 바위로 완성되는 시간을 과연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스님은 각자의 시간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생명력’이 있다고 했다.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멈춰 있고, 죽어 보이는 저 모과나무 기둥이. 

“만져봐도 돼요?” 스님은 웃기만 했다. 볕이 드는 쪽은 껍질이 떨어져 반질반질했지만, 반대쪽은 모과나무 껍질의 거친 질감이 닿았다. 한 개의 모과나무 기둥에서도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모과나무는 구층암에서 기둥으로 산다. 강화 전등사의 벌거벗은 나부상이 떠올랐다. 지붕 더 받친 모과나무의 시간은 업보일까, 공덕일까. 최두석 시인도 이 모과나무를 노래한 적이 있다. “죽어 장작으로 불타거나/ 옻칠한 장롱이 되지 않고/ 지붕 받치는 기둥이 되는 것이 과연/ 보람인지 업보인지 생각한다”라고 했다. 궁금했다. “그냥 자기 삶을 사는 거지.” 쓸데없는 생각 말고, 불편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대로를 보란 뜻이었다. 

다향사류 맞은 편 요사채에도 모과나무 기둥이 있다. 늦은 오후 겨울 볕 아래 덕제 스님과 마주 앉았다. 

 

겨울 볕 아래 곶감과 산골 고양이

다향사류와 건너편 요사채에 곶감이 넉넉했다. 구층암 감나무에서 수확한 감이 곶감으로 익어가는 중이었다. 감나무 위쪽 가지에 매달린 까치밥도 넉넉했다. 겨울, 12월, 늦은 오후, 구층암이라는 인연이 맞물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밤으로 달리는 겨울 볕 아래 모과나무 기둥을 사이에 두고 스님과 앉았다. 말라가는 곶감의 시간은 안팎이 다르게 흘렀다. 밖은 흰 가루가 앉기 시작했고, 안은 쫄깃해져 갔다. 스님이 무심히 곶감 2개를 따서 건넸다. 시간이 덜 익은 곶감의 달콤함도 아직이었다. 

예스러운 해우소 옆에서 그날 남은 볕의 온기를 쬐는 산골 고양이 한 마리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지리산이 밤을 불렀다. 구층암을 내려가야 했다. 스님은 미뤄둔 약속이 있어 먼저 내려갔다. 배웅은 고양이가 했다. 고양이는 탑 옆에 남은 조각 볕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눈을 감았다. 

구층암을 내려왔다. 마음은 아직 따라오지 못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했던 행복은 구층암에 남았다. 소확행의 시간도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사진. 유동영

 

나무 기둥 곱게 늙은 절

 

서산 개심사 심검당

서산 개심사 입구에는 돌 표지석이 있다. 세심동(洗心洞). 절 이름은 개심사(開心寺)다. ‘마음 씻는 골짜기’에 있는 ‘마음 여는 절’이 개심사다. 개심사는 시간이 쉬어가는 공간이다. 범종각 기둥은 휘고 굽은 채로 지붕을 받치며 범종을 품고 있다. 심검당(尋劍堂)과 대웅전 나무 기둥은 나무 생김새 그대로 세월을 머금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보려거든 영주 부석사를 가야 한다.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백미다. 천왕문부터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으로 이어지는 극락정토의 길을 오르다 보면 마주한다. 한국의 미(美) 순례자 혜곡 최순우 선생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남긴 그곳이다. 나무 기둥의 몸이 가장 큰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곁에서 천년 세월에 기대볼 일이다. 

 

안동 봉정사 만세루

무명이었던 안동 봉정사가 주목을 받는 것은 1972년부터다. 극락전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1363년 지붕을 중수한 사실이 적힌 묵서가 발견되면서, 적어도 1200년대 초반 건립된 건물로 추정됐다. 그때부터 부석사 무량수전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 명성이 옮겨왔다. 극락전도 극락전이지만, 누각 만세루의 기둥부터 보시라.

 

구례 화엄사 보제루

구례 화엄사 대웅전 앞, 탑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누각이 보제루다. 보제루를 지나지 않으면 대웅전도, 탑도, 석등도, 각황전도 볼 수가 없다. 통과의례다. 보제루에 멈춰 서면 막돌로 초석을 놓고 올린 민흘림(기둥머리보다 뿌리의 지름이 큰 양식) 나무 기둥이 시선을 붙잡는다. 봄, 화엄사 매화를 보려거든 보제루를 외면하지 않길….

 

안성 청룡사 대웅전

대웅전 기둥에 반해 여러 사람이 찾는 도량이 안성 청룡사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겨내고 본래 나무 형태를 그대로 살려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한국 건축의 멋이 스며 있다. 대웅전 좌측 나무 기둥은 곧기나 굵기가 제각각이다. 위아래 굵기가 다른 나무로 기둥을 세워 무게 중심을 나눴던 목수의 세심함마저 느낄 수 있다. 

 

완주 화암사 우화루

「화암사중창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절이 들어선 골짜기는 넉넉하여 만 마리 말을 감출 만하며,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해묵어 늠름하다.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 둔 복된 땅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불명산화암사(佛明山華巖寺)’라는 현판이 걸린 고즈넉한 누각을 마주한다. 우화루(雨花樓), ‘꽃비 내리는 누각’이라는 이름부터 아름답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해남 미황사도 세월이 씻어낸 대웅전 나무 기둥이 멋이다. 달마산의 기암괴석을 펼쳐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이번 겨울 미황사의 중심 대웅보전이 천일 간의 해체보수 작업에 들어간다. 세월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무게가 되니, 예불할 때 스님들 위로 흙이 떨어질 정도란다. 아직 미황사 대웅전을 못 봤다면 3년 뒤를 기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