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탐방] 불갑사 조실 지종 스님

"스스로의 입과 마음과 몸을 잘 다스리면 능히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2007-09-17     사기순

*1922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 1938년 백양사에서 법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 서옹 스님을 법 사로 수행하였다. 백양사 강원을 수료하였으며, 정혜사 만공 스님 회상과 나주 다보사 선방 에서 인곡 스님을 모시고 3년 동안 결제에 들었다. 백양사 주지, 정광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 하였으며 현재 불갑사 조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으로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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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 가는 길목에는 진리의 빛살이 흩뿌려져 있었다. 불갑리, 불갑교, 불갑운전면허학원, 불갑 슈퍼에 이르기까지 불법이 가장 먼저 전해진 곳임을 기리는 으뜸사찰(佛甲)의 이름과 혼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 불갑의 형용할 수 없는 뜻을 음미하며 차창 밖으로 펼쳐진 벌 거벗은 산과 들을 보노라니 알 수 없는 미소가 새어나왔다. 저 자연이, 흐르는 세월이 그토 록 곡진하게 일러주는 것도 알아차릴 수 없는 이가 어찌 선지식의 깨달음을 그려올 수 있을 까하는 자괴감이 솟아올랐다.
그렇듯 부끄러움 속에서 찾아뵌 불갑사 조실스님은 잔뜩 움츠려진 기자의 기를 살려주셨다.
스님의 일동 일정에 자비가 흘렀다. 스님께서 손수 달여주시는 녹차를 마시며 이 따뜻함, 이 향기, 이 맑은 정취로 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스님,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으신지요?
"8년 전 내 사제인 혜담이 죽어서 다비장에 갔다가 돌아온 다음날 '죽을 사람은 안 죽고 청 춘이 구만리같이 젊은 사람이 먼저 갔구나'하는 망상이 자꾸 드는데 갑자기 허리가 삐끗해 서 한 걸음도 못 뗄 정도가 되었지요. 한 달 동안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뼈를 맞췄는데 도 한쪽 다리가 짧아져서 조금씩 다리를 절어요.
지금도 아프긴 하나 그 아프다는 놈에게 속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오라는 데는 더 열심히 다 니고 있습니다. 하루에 30분씩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데 아주 좋아요. 나이가 들수록 가벼 운 운동을 해서 몸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스님, 아무리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해도 당 장 아픔 것은 참을 수가 없는데, 그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꾸 상(相)을 버리는 공부를 하다보면 나중에는 아픈 놈에게 속으려해도 속지 않게 될 것 입니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인욕선인이셨을 때, 산중에서 수행하고 계신 인욕선인을 많은 이 들이 흠모하자 이를 시기한 가리왕이 선인의 신체를 낱낱이 자르며 얼마나 참는지를 시험하 였으나 인욕선인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마디마디 사지를 베일 때에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으면 응당 성내고 원망함을 내었으리라'고 하시며 고통을 당하면 서도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던 것은 상이 없었기 때문임을 명확히 밝혀 놓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늙었다는 생각 등의 사 상(四相)에서 떠났기 때문에 단순한 참음이 아니고 고통의 상 그 자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나 역시 사상을 떨쳐버리지는 못했고, 부처님께서 체득하신 경지를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아프다는 그놈에게 끄달리니 않으려고 하면서 '아, 나도 없는데 아픈 몸뚱아 리가 어디 있겠는가'하고 자문자답하곤 합니다."

스님, 결국 세상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모든 문제들을 상만 떨쳐버리면 극복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요. 상만 떨쳐버리면 그대로 불국토에서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났다. 니가 못났다.
나는 오래 살아야겠다. 나는 별볼일 없는 존재다'하며 괜스레 잘난 척하기도 하고, 허둥지둥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재물 모으는 데만 힘쓰는가 하면 쓸데없이 위축되기도 하는 게 인생입 니다.
인생의 희비애락이 사실은 꿈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을 모르고 헤메고 있지요.
상에 찌든 욕망으로 물든 세상이기에 그렇듯 시끄럽고 복잡다단한 것입니다. 상을 버리고 이 생각 저생각 갖은 분별심을 여의는 그 도리를 깨닫는 데 수행의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라만상의 실상을 밝히 보여준 금강경의 도리와 참선의 도리는 같은 맥락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님, 금강경을 잘못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라는 금강경의 말씀은 짐짓 불교신자들을 세상사에 소극적으로 만드는 듯합니다. 이 를테면 몰지각한 타종교인들이 훼불을 해도, 스님들이 공권력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국공립 초등학교에서 선교를 해도 점잖게 바라보기만 하는 불자가 많습니다.
"그것은 금강경을 잘못 받아들인 것이고 불교를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불교는 이 세상의 이치를 확연하게 보여준 진리 그 자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무엇에도 끄달리지 않고 자 기 스스로가 주인공되어 사는 길을 밝혀놓았습니다.
이 세상이 헛것이나 그럭저럭 살자는 게 불교가 아닙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밝게 인생을 사 는 방법이 금강경 안에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목이 금강반야바라밀입니 다. 다이아몬드같이 밝고 단단한 반야의 등불로 세상을 구석구석 밝히며 살아가자는 도리인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반야의 지혜로, 파사현정의 기치로 뿌리뽑는 원력을 갖고 살 아야 진정한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금강경의 진면목을 비로소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 위패상좌로 출가하셨 다고 들었는데, 출가 이야기가 좀 특별할 것 같습니다.
"버리데기라고 아나요? 나는 3남 1녀의 막내였는데 우리 집안이 나를 낳고부터 가세가 기울 어지기 시작했다 해서 구박을 많이 받았지요. 게다가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있던 맏형 님이 학교 다니다가 갑자기 죽어서 집안이 다 뒤집혀졌어요. 아버님은 홧병으로 술만 드시 고 어머님도 병석에 누워계셨지요.
그렇게 집안이 오그라지더니 내 나이 열 일곱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아버님 3상 치루기가 무섭게 어머님도 돌아가시니 난데없이 고아가 돼버렸지요. 집안어른들로부터 '너 낳고부터 집안이 몰락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 세상에 내가 뭐 하러 왔던고, 집안을 망하게 한 인간이라니, 나는 인간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나는 인간의 종자를 두지 않겠다'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자꾸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머리 속에 어머니따라 다녔던 절이 그려지고 혼자 살며 수행 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그려지더군요. 그래 어머님의 소상 대상 다 치루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백양사로 갔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도 부모형제 인연이 박하더니 중이 돼서도 부모인연이 없어 위패상좌가 된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스님의 위패를 모셔놓고 그 스님과 사제의 인연을 맺는 위패상좌이셨는지라 은사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을 듯 싶습니다만...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만암 스님이 우리 노스님이셨는데 은사스님의 얘기를 자주 들려주시 며 주구보다도 훌륭한 스님이셨으니 중노릇 잘해야 한다고 독려해주셨습니다.
법안 스님은 원래 평양 숭실전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신학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목사였 는데, 25년 동안 목회활동을 하다가 당시 일본사람들이 번역한 금강경을 읽고 큰 감명을 받 았다고 합니다.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분이 아니라 늘 진리를 탐구하던 분인지라 기독 교에 한계를 느끼던 중 금강경을 보고 발심을 한 것이지요. 그후 만암 스님을 자주 찾아뵙 다가 출가하였다고 합니다. 스님이 되고나서 용맹정진하는 한편 전국 각지를 다니며 포교하 시고 <예수교와 불교>라는 책도 펴내시어 문서포교도 하시는 등 치열하게 사신 선지식이십 니다."

만암 노스님의 손주상좌에 대한 사랑과 깨우침도 무척 크셨을 듯합니다.
"일년 동안 노스님 시봉을 들었는데 그렇듯 훌륭한 스님을 모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쁘 기 한량없습니다.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길, '중(僧)은 일찍이 사람된 게 중이다. 그런데 요새 는 사람도 못된 게 중이 돼서 큰일이다. 너는 참중이 돼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모쪼록 중노릇 잘 해야 한다. 니가 전생에 못 닦고 복을 못 지어서 이 세상에 태어 나 파란곡절이 많았느니라. 허나 복 없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냐. 니가 부모복 많고 형 제복 많았다면 그 속에 푹 빠져서 이렇듯 자성을 깨닫고 중생구제 할 대도를 공부할 수 있 었겠느냐.'라고 하시며 채찍질해 주셨지요.
또 스님께서는 시주의 은혜와 사중돈 쓰는 것을 아주 무섭게 여기셨습니다. 보시하는 사람 도 청정해야하고 물건도 청정해야 하고 받는 나도 청정해야 함을 한없이 강조하셨습니다.
당신께서도 백양사 주지 소임 보실 때 사중에서 30원을 타 쓰셨는데 15원은 일본 유학 중이 었던 서옹 스님 학자금으로, 5원은 순회포교사들에게 용돈으로 주시고 10원 갖고 쓰셨지요.
나를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까이 여기셨지요. 저는 법당의 부전을 보면서 그 보시금으로 강원 에 다녔습니다. 이모저모 노스님께 받은 감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백양사 주지를 네 번이나 하시는 등 살림 잘 사시고 도량 외호하는 데 원력이 장하시기로 유명하신 것도 다 초발심 때부터 익힌 훈습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인과가 분명한데 어찌 삼보정재를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전생 일을 알고자 할진대 지 금 내 모습을 보고 내생 일을 보려면 현재 자신의 행을 보면 될 정도로 삼세 인과가 뚜렷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한생각 잘못으로 말미암아서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생각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는데 어찌 업을 또 지을 수 있겠습니까.
'이 뭣고', 나고 죽는 일대사를 해결하는 데 골몰하면 자연히 탐진치 삼독심은 멀어져 갑니 다. 육신에 애착이 붙어서 어디서 오는 줄도 모르고 죽어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헐 떡거리고 살려면 당장이라도 산을 내려가야지요."

종립학교인 광주의 정광중고등학교 이사장으로 계실 당시 전체 학생들에게 직접 계를 주시 고 설법을 해주시는 등 청소년 포교에 큰 열의를 보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스님, 요즈음 청소 년문제가 심각합니다.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청소년들보다 어른들, 특히 위정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청소년들을 기른 게 누구입니 까. 지존파니 막가파니 해서 이제 갓 스물 넘은 청년들이 인생을 자포자기하며 포악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 청소년들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책임이 어른들에게 일차적 으로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을 길러야 하는데, 요즈음 에는 따뜻한 사람보다는 마치 컴퓨터같이 아는것만 많은 냉정한 이기주의자를 양성하고 있 는 듯해보입니다.
사회전반적으로 허영지심과 욕구불만이 가득차고, 탐진치 삼독심이 기승을 부리는 데다 빈 익빈 부익부 현상이 첨예화되다 보니 문제 청소년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부 모들도 자식 교욱보다는 돈벌기에 급급한 사정이고 보면 참으로 큰일입니다.
게다가 지금 배운 사람들 하는 양을 보십시오. 미국이니 유럽이니 유학갔다 왔다는 권력자 들을 보십시오. 그이들이 못배워서 그렇게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일삼고 있습니까. 총체적인 비리라는 말들을 쓰고 있던데, 사람되는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알음알이 쌓는 공부만 많이 한 사람이 권좌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위정자라는 사람들이 제 나라 전통은 하나도 모르면서 그저 외국 것만 쫓 아 가고 있어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이구요. 미국의 저질문화에 흡수되는 걸 세계화라고 착 각하는 이가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미국에 내장도 쓸개도 다 빼주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아,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분단 국가라는 이 기막힌 우리의 현실을 통철하게 느껴야 합니 다. 우린 반쪽이입니다. 남북이 대치되어 아웅거리면서 또 그 반쪽 속에서도 서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아우성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 남북통일을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있도록 역량 을 결집해야 합니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 불자라면 누구든지 참사람 되는 길을 설해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믿고 참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맑혀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처한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살면서 마침내 부처님의 깨달음을 증득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스님 끝으로 저희들이 살아가면서 항상 간직하고 스스로를 경책할 수 있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기에 있네요.(방안의 항아리를 가리키신다) '수구섭의신막범(守口攝意身莫犯)이면, 여시행 자능득도(如是行者能得道)라, 그 입을 지키고 뜻을 거두어들이며 마구 범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능히 도를 이루리라.'
진리는 먼 데 있지 않습니다. 평소에 자기의 입을 잘 다스리고 마음을 잘 다스리고 몸을 잘 다스리면 도는 자연히 익게 되고 진리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