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품은 지리산] 지리산 학교

지리산의 눈으로, 지리산의 마음으로, 지리산의 깨달음으로

2021-12-28     이해모

20대 초반, 불교학생회 도반들과 첫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부터 30년 전이니 아주 오랜 추억이다. 기어도 없는 자전거로 떠난 여행. 객기 부리기 딱 좋은 나이에 우린 4박 5일간의 자전거 라이딩을 떠났다. 광주에서 출발해 곡성과 구례를 거쳐 지리산이 있는 하동과 남원을 지나 다시 광주로 돌아오는 코스로 잡았다. 하동을 반환점으로 잡은 이유는 화개장터를 보기 위해서였다. 장날에 맞춰 출발했다. 

가수 조영남의 노래 제목이 〈화개장터〉이니만큼 엄청난 장이 설 것이라는 기대를 담뿍 받아안고 떠났다. 섬진강에서 목욕도 하고, 마침 모내기 철이라 농부한테 사정해 밥도 얻어먹었다. 그리고 도착한 지리산 화개골 화개장터는 아주 작디작은 몇 가지 약초와 산나물을 파는 그냥 말 그대로 시골 장터였다. 내심 큰 장터를 기대했건만 우리는 적잖이 실망했다. 

“보기엔 그냥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어쩜 그리 가사와 잘 맞는지 우린 다들 헛헛한 웃음만 지었다. ‘그래,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하나도 없네. 그러니까 화개장터지.’ 우린 이렇게 위무했다. 그래도 첫 자전거 여행인데 광주에서 구례를 거쳐 경상남도 하동 지리산 화개골까지 자전거로 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이 생겼다. 다시 화개에서 남원으로 방향을 틀어 지리산 재를 넘어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젊음의 열정으로 넘을 수 있었다. 재를 오를 땐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가는 ‘끌바’를 하면서 겨우 올라갔다.

 

청소년지리산마음캠프

본격적으로 지리산과 조우하게 된 것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를 2008년 창립하고 다양한 어린이·청소년캠프를 진행하면서부터다. 어린이 캠프로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청소년들 캠프도 요청받게 됐다. 

그래서 기획한 게 2012년 ‘청소년지리산마음캠프’다. 열정이 넘치는 청소년들과의 캠프는 좀 더 역동적으로 운영해보고 싶었다. 지리산을 걸으며 지리산의 웅혼한 기운을 보듬어 안는 시간이고자 했다.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 캠프를 계획했다. 하지만 이내 난관에 부딪쳤다. 

많은 인원인지라 여름방학 때 지리산 대피소 예약이 어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리산 달궁 야영장을 예약했다. 야영장에다 행사용 큰 천막과 텐트를 쳐서 숙소로 삼고 가까운 코스를 잡아 지리산을 걸었다. 청소년들과 낮엔 걷고 저녁엔 야영을 즐겼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정령치에서 운봉까지 걸었다. 이후 해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2박 3일간의 캠프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10년 차를 맞이했다. 10년 동안 한결같이 지리산을 걷고 또 걸었다.

지리산을 걸으며 인상적인 몇 장면을 되뇌어본다. 첫해와 두 번째 해만 야영장에서 캠핑하고 그다음부터는 지리산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을 넘어서 하산길을 선택했다. 산청 중산리에서 법계사까지 산행해서 법계사에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보낸 뒤 새벽 3시 30분에 주먹밥을 싸서 손전등에 의지해 천왕봉으로 치고 올라갔다. 법계사에서 천왕봉까지는 최단코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이었다. 별빛과 달빛에 의지해서 걷다 보면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손전등에 의지해 오로지 앞만 보며 걸으면 저 멀리서 붉은 여명이 번져왔다. 여명의 붉은 빛 또한 일출 전의 잔잔한 무대배경이다. 늦을새라 서둘러 천왕봉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3대가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아침 일출, 그 장엄한 모습은 직접 현장에 서야지만 느낄 수 있다. 8월의 한여름이지만 지리산 천왕봉의 아침 공기는 겨울처럼 차가웠다. 바람은 또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붉은 태양은 땀방울을 흘리고 올라온 청소년들에게 감동을 한 아름 선사했다. 

 

꿈엔들 잊으리. 지리산 종주

청소년 때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장엄한 일출을 받아안은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청소년들과 힘들고 어려운 새벽 산행을 필자가 지금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장애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인내하면서 당당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이들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장애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공부이자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단단한 내면의 힘이 생긴다. 이렇듯 청소년들과 지리산을 걷는 것은 ‘수행길’이라 할만하다.

청소년들과 지리산을 걸을 때는 조금 힘든 산행을 한다. 새벽 3시쯤 출발해 백무동계곡에 도착하면 오후 2시쯤 된다. 거의 10시간을 하루 내 걷는다. 어느 때는 태풍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 천왕봉을 오를 때도 있었다. 힘들고 고단한 산행길이라서 몸도 마음도 지친다. 그럼에도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 누구도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 힘든 산행 뒤 천왕봉에서의 멋진 운무와 아름다운 일출은 고단한 산행에 대한 특별한 선물이다.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코스, 뱀사골코스, 피아골코스, 서북능선코스, 지리산 어느 코스를 걷더라도 평균 10시간은 족히 걸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걸어야 지리산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10년을 걸으면서 지리산 곳곳을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음의 향훈(香薰)을 보듬어 안았다. 이렇게 지리산은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좋은 배움의 공간이 돼 줬다.

지리산을 걸으며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한껏 품어 안는다. 그 과정 속에서 결국 자신을 만난다. 이렇듯 지리산은 자신을 만나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지리산의 눈으로, 지리산의 마음으로, 지리산의 깨달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 누구든 지리산에 안기면 된다. 지리산은 차별 없이 너른 품으로 안아준다. 2022년, 다시 지리산 종주를 떠날 채비를 한다.  

 

이해모
1988년 불교와 첫 인연을 맺은 후 ‘불교의 사회참여’라는 화두를 붙들고 정진해왔다. 2003년 ‘평화실천광주전남불교연대’를 창립해 불교의 대사회 참여 활동에 마음을 모았다. 2008년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를 창립해 현재까지 시민사회 공익활동가로서 ‘자연과 조화로운 삶, 세상과 함께하는 삶’을 위한 활동에 매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