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품은 지리산] 지리산을 노래하는 사람

스치듯 작은 소리에 큰 울림이 있어요 싱어송라이터 박문옥

2021-12-28     송희원
광주 포크음악의 산실 ‘소리모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박문옥 씨. 그는 아름다운 노랫말과 선율로 <지리산>을 작사·작곡했다. 

“반야봉의 새소리
백무동의 물소리
지친 영혼 어루만져주는
(…)
달궁의 별빛따라
반달곰 울음따라
너의 사랑 찾아 헤맨다
그대 이름 지리산” 
__ <지리산> 박문옥 작사·작곡, 정용주 노래

안치환의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와 박종화의 〈지리산〉이 상실과 죽음, 저항과 투쟁이라는 가슴 아픈 지리산의 역사를 노래한다면, 박문옥이 작사·작곡한 〈지리산〉은 서정적이고 친숙한 모습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쉬운 노랫말과 경쾌한 리듬은 이 노래를 처음 들어본 이들도 금방 흥얼거리게 만든다. 

노래를 만든 박문옥 씨를 만난 곳은 광주 주월동의 한 아파트 상가 2층 ‘소리모아 스튜디오’. 털이 복슬복슬한 곰 발 실내화를 신은 그가 반갑게 맞아줬다. 연식이 오래되고 해가 잘 들지 않지만, 이곳은 광주 최초의 전문 녹음이자, 광주 포크음악의 산실이며, 음악가들의 오랜 사랑방이다. 그는 1986년부터 현재까지 이곳을 ‘겨울곰’처럼 지키며, 수많은 곡을 노래·작사·작곡·편곡·연주·연출·기획해 왔다. 

시작은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였다.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 페블즈가 대상을 탔던 그해, ‘전남대 트리오’로 출전한 그는 〈저녁 무렵〉이라는 곡으로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후 사범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해 교사로 일하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를 몇 개월 앞두고 5・18 광주항쟁 소식을 듣게 된다. 제대 후 카세트테이프로 민중가요를 제작해 노래패나 운동권 학생들에게 힘을 보탰다. 다시 섬마을 교사로 2년간 교편을 잡았지만, 사표를 내고 음악 인생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시기에 그가 ‘음악적 도반’이라 부르는 범능 스님을 만나게 됐다.

“84년부터 계속 광주에서 활동했어요. 80년대 중반은 광주 민주항쟁 관련해 5월을 노래한 시, 노래가 많이 나올 때에요. 그때 범능 스님을 처음 만났죠. 출가 전이라 민중가수 정세현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노래를 아주 걸출하게 잘했어요.”

범능 스님의 입적 전까지 30여 년에 걸쳐 인연이 이어졌다. 스님의 출가 전 민중가요부터 스님이 된 직후 발표한 불교명상음악까지 모두 20장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8남매 중 막둥이로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불자셨어요. 셋째 형도 한때 불가에 몸을 담았고, 다섯째 형도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에요. 절에 다니진 않지만 제 핏속에 불교가 흐르는 것은 확실하죠.” 

〈직녀에게〉, 〈운주사 와불 곁에 누워〉, 〈목련이 진들〉, 〈누가 저 거미줄의 나비를 구할 것인가〉, 〈꽃잎 인연〉 등 그의 수많은 대표곡에는 서정성, 시대성과 함께 자연의 순리가 담겨 있다. 제목에서부터 불교적 색채가 담긴 〈운주사 와불 곁에 누워〉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천만년 나를 기다려온
저 별빛을 바라보네
별들은 깜박이며 묻네
왜 이제야 왔냐고
얼마나 화려한 불빛 있어
나를 잊고 있었냐고”

“제 노래가 클라이맥스가 있다거나, 높은 가창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서 심심하다고들 해요. 하지만 살짝 읊조리는 것에 큰 울림이 있어요. 스치듯 작은 소리일지라도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면 그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인상적으로 들리거든요. 작은 것에도 가만히 시간을 가지고 오래 들여다보세요.”   

지리산 노고단에서. 사진 박문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