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과 정토] 평화와 안락의 오아시스

[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23)] Oasis of Peace and Bliss

2021-12-22     현안 스님

이제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이때가 되면 제가 출가한 미국 위산사에서는 재가자들이 모여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밉니다. 사람들은 가족과 보내야 할 시간을 쪼개서 스님들과 사찰의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힘씁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크리스마스 특별 요리와 잔잔한 캐럴 음악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도 준비합니다. 한국인들에게 사찰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는 다소 생소하고 이상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문화적으로 의미가 커서, 사찰에서도 대중이 다 함께 파티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매년 12월은 위산사의 선칠 기간이라서 결가부좌와 단식 수행 등으로 괴롭고 힘들 때입니다. 이런 때 평화와 사랑의 상징인 크리스마스는 수행자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이 오랜만에 웃고 즐길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수년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되면 절이 텅 비었습니다. 선칠에 참여하더라도 대부분 연휴엔 가족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점점 해가 지나면서 명상 수행과 불교 공부를 하는 부모와 자식, 형제, 연인, 부부가 생겨났고, 그래서 가족과 함께 연휴를 위산사에서 보내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게다가 올겨울은 더 특별할 것입니다. 미국 위산사에 많은 한국인 수행자들이 머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칠 수행은 부처가 뽑히는 장소(선불당)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불자들은 용감하게 미국으로 갔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마시고, 행복하게 인생을 즐기는 대신 아픔과 괴로움을 참고 견뎌야만 하는 선칠 수행을 택했습니다.

미국 위산사 영화 스님 법문 모습.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인다. 사진 현안 스님.
위산사는 교회 건물을 2017년 매입해서 리모델링했다. 사찰 2층 유리창엔 예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아직 남아 있다. 사진 현안 스님.

이들은 왜 즐거움 대신 괴로움을 견디기로 선택했을까요? 영화 스님도 “선칠은 깨닫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곧바른 방법”이라고 하셨듯, 선칠법은 불교 역사상 이미 수천 년 동안 많은 이들이 깨달은 장이 되어왔습니다. 선칠은 본래 고(苦)의 법(法)입니다. 괴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 속에서 여러분이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한 수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여러분이 인내심을 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아픔에 대처하고 견디면, 그 과정에서 인내심을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칠에 참여하면 가장 먼저 가부좌 자세에서 오는 다리의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그만두거나 계속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냥 그만둔다면 우린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면해서 견디기로 결심한다면, 더는 아프지 않을 때까지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그뿐입니다.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뭘 하든 일단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것도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레 무엇이든 더 많이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결가부좌나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서 그 통증을 참고 견디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아상, 즉 에고는 그런 걸 용납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픔을 참는 것이 참을성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자진해서 스스로에게 준 고통을 참아낼 수 있다면, 다른 이가 주는 고통 따위는 훨씬 견디기 더 쉬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과정으로 우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출처 셔터스톡.

선칠 수행은 우리의 성격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더 많이 참을 수 있고, 회복 탄력성도 향상됩니다. 힘도 키울 수 있습니다. 어떤 힘을 키울까요? 육체적 정신적 힘을 둘 다 키워줍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더 잘 참고 견딜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의 두려움도 줄어듭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일상으로 돌아가면 놀라운 변화를 볼 것입니다. 명상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일에 더 참을성 있고, 더 잘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집중 수행에서 얻은 이런 놀라운 변화를 자신의 일상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무작정 오래 앉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앉아서 아픈 걸 참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분이 바른 지혜를 열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각자 개인 수행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지혜를 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는 수행은 선(善, Goodness)함에 그 기반을 두고 힘을 키웁니다. 물론 악(惡, Evil)함에 기반을 두어도 힘은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수행하는 환경이 어떤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명상을 배울지 잘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지혜를 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스님은 오래전 당신의 도량을 “평화와 안락의 오아시스(Oasis of Peace and Bliss)”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명상과 수행을 위한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오아시스는 사막 한복판에 물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목이 말라서 생존을 위해서 물이 필요할 때, 물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을 뜻합니다. 누구나 찾아와서 한 시간 또는 30분 앉았다가 나가면 기분이 나아지고, 마음이 더 차분해질 수 있는 곳을 뜻합니다. 어떤 다른 동기나 다툼, 탐욕, 분노 없이 오직 평화와 안락을 구할 수 있고, 지역을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화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돈이 더 생기거나, 더 많은 사람이 오거나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 건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도량에 온 사람들이 평화와 안락, 청정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런 영화 스님의 말씀에 따르고, 그런 도량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정진합니다. 그래서 누구든 수행하고자 한다면, 세상의 모든 이가 거부한 그런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갖추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세상 어디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저는 여러분이 여기 영화 스님의 도량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선칠 법문(2012년 12월 25일)

 

현안(賢安, XianAn) 스님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법을 소개해왔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불광미디어 홈페이지 연재를 비롯해 미주현대불교, 브런치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청주 BBS불교방송 라디오 ‘4시의 불교산책’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