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이 사라지면

풍경소리

2007-09-17     관리자

골프장 은 비명을 지른다. 만원 사례를 빚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골프를 즐기려 모여드는 이유이다. 골프를 모르면 문외한이라도 되는 양 졸부들은 물론 하다못해 평범한 주부들까지 가세하는 실정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이제 골프는 더 이상 신사 숙녀들만의 스포츠가 아니게 된 것 같다.
늘어나는 골프장만큼이나 그 곳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웃지 못할 행태 또한 적지 않은 것 같 으니 말이다.
점 당 백만 원의 내기 골프를 하다가 수세에 몰리자 무자비하게 클럽을 휘둘러 상대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졸부들이 있는가 하면 상대가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슬그머니 공을 홀 가까이 에 옮겨 놓는 등의 치사한 속임수를 쓰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철면피는 골프장 내 외진 곳 에서 끙끙대며 큰일을 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는 캐디의 몸의 예민한 부분에 손을 대기도 하다가 그녀가 곰살맞게 굴지 않는다고 욕지거리를 하는 비열한 색한(色漢)도 있다는 것이 다.
우리는 한때 매스미디어에 의하여 재벌이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산뜻한 레저웨어를 몸에 걸치고 푸른 잔디도 말쑥한 넓은 풀벌을 멋진 폼으로 거닐며 공을 치거나 여유 있게 담소하 는 모습을 너무도 자주 대하곤 했었다.
재벌 회동이나 정치 회동이 혹여 도시 근교의 산이나 테니스장이나 하다 못해 바둑을 두는 기원 같은 곳이면 안 되고 꼭 골프장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 만 그래도 그들의 그런 모습은 그럴 듯해 보이기도 했었다. 정치에는 낙제생들이었던 것만 같은데도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여기저기 경관 좋은 골프장을 찾아다닐 때마다 골프라는 구기(球技)스포츠의 인기가 치솟았고 개발이익에 눈이 어두운 땅부자들은 다투어 멀쩡한 산을 허물고 계곡을 따 돌려 굘프장을 건설하고 위락 시설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다 골프장의 싱그러운 풀 벌 관리를 위해 독한 농약 살포도 주저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수려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이 사라지거나 그 산의 맑은 정기가 흩어지거나 순수한 물이 오염되는 것은 물론 감안되지 않는다. 그 자연에 기대어 그 산의 정기를 마시 고 그 물을 섭취하는 생명체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물론 무감각하다. 다수의 소박한 사람들 의 농경지를 부식시키고 사람의 정서를 약화시키며 몸을 병들게 하는 경제적이며 정신적이 며 육체적인 피해에는 물론 무관심한 것이다.
골프는 원래 그 경사가 완만한 스코틀랜드의 초원에서 양떼를 몰던 목동들이 심심풀이로 즐 기던 놀이이다. 그러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골프 경기 개최를 오랫 동안 금지했던 적이 있다.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기에는 경사가 급하고 굴곡이 많은 우리 나라 지형적 특성을 감안해 볼 때 자연스럽지가 않다. 결코 한가하거나 화려하지 않 은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어울리지도 않는다. 시절이 가기 전에 부지런을 떨며 곡식 을 경작해야만 하는 농경민으로서의 환경적 특성을 생각해 볼 때에도 그렇다. 드넓은 초원 에서 소떼나 양떼를 방목하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골프놀이나 즐길 수 있는 한가한 유목 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놀이의 즐거움 뒤에는 폐악 또한 숨어 있는 법이다. 더구나 개항(開港)이래 오늘에 이르기까 지 우리가 서양 문물을 무저항으로 받아들였으며 심취해 있는 현실에도 서양에서는 내로라 하는 지성인들이 동양의 문화와 사상과, 심지어 놀이 문화와 관련된 풍습까지도 자연의 본 성을 깨닫게 하고 자연으로 회귀하게 하는 문화이며 사상이며 풍습이라고 판단하고 앞으로 의 세계 질서는 동양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에 주목할 일이다. 그 의미를 생 각해 볼 일이다.
나는 이미 여러 해 전에 내 어린날의 동화의 배경이었던 산 하나를 골프장에 빼앗긴 적이 있다. 바사리고개라는 이름의 산이다.
신라의 혜소 국사에 의해 중창된 이래 조선 시대에는 인목대비의 원찰(願刹)이었으며 그 후 수십 년간 궁중 여인들의 사찰이기도 했던 칠장사라는 고찰(古刹)이 들어앉은, 수려하고 아 름다운 칠현산의 일부분이었다. 강력하고 무자비한 어떤 힘에 의해서 어느 날 문득 마치 무릎이라도 꿇듯 무참히 허물어지더니 시야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그 산을 오르면서 그것이 법문인 줄도 모르고 들었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흐르는 물 소리를. 그리고 스치는 바람소리를. 나는 그 산을 오르면서 그것이 법문인 줄도 모르고 젖었 었다. 풀꽃들의 향기에. 내 작은 이마를 들여다보던 눈부신 아침 햇살에. 그리고 내 작은 뺨 을 물들이던 저녁 노을에. 그리고 그림처럼 그 산에 깃들던 흰 옷 입은 소박한 사람들에게. 나는 그 산을 오르면서 그것이 법문인 줄도 모르고 기꺼웠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 해지던 아득한 전설에. 은하 같은 설화에. 그리고 칠장사의 일곱 현인들의 꿈 같은 신화에. 나는 그 산을 오르면서 그것이 법문인 줄도 모르고 잠기었었다. 그림처럼 그 산에 깃들던 흰옷 입은 소박한 사람들의 끝이 무딘 말소리에. 그리고 흰옷 입은 소박한 사람들의 물빛처 럼 맑았던 눈빛 속에. 그 산이 사라진 후 내 어린날의 동화는 산 그림자에 잠겨 쓸쓸할 뿐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산이 시름에 잠겨 있다. 어쩌면 내 영혼들의 스승일 산 하나가 그늘에 잠겨 있다. 어쩌다가 그런 무모한 발상이 수용되었고 계획 추진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 름 아닌 골프장 건설 계획 때문이다.
예로부터 해동(海東)의 십승지로 알려져 있는 빼어난 명산인 가야산이다. 대승경전의 최고봉 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도 일컬어지는 화엄사상을 받드는 대법보 사찰인 해인사가 덜어 앉은 산이다.
더구나 해인사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무려 77년에 걸쳐 조성된 국 보 32호의 팔만대장경각을 보존하고 있으며 국가의 위난이 있을 때마다 분연히 일어서 호국 호민의 사명을 다했던 천년 민족의 성지이다.
학계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오늘 날 가야산에는 300여종의 천연 및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 하고 있는 천연녹지이며 자원의 보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산만이 아니리라. 오염되는 것은 물만이 아니리라. 생명의 꿈이 사라지리라.
생명이 오염되리라.
우뚝한 산이 거기 그대로 있고 흐르는 물이 거기 그대로 있다면 다만 소박한 사람들이 오며 가며 우뚝한 산의 법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뚝한 산이 사라진 자리에, 흐르는 물이 사라진 자리에 골프장이 있다면 다만 한가 하거나 화려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우뚝한 산의 법문도, 흐르는 물의 법문도 아닌 골프 놀이 를 즐길 수 있을 뿐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