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 스님, 고려시대의 불화는 어떻게 지금까지 남았을 수 있을까?

2021-11-01     불광미디어

독자 여러분께 묻습니다. 우리 불교에서 가장 신앙시되는 보살을 꼽는다면 어떤 보살을 이야기하시겠습니까? 아마 가장 먼저 ‘관음보살’을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는 영향력을 가진 보살이 있습니다. 바로 ‘지장보살’입니다.

(타임라인)

00:00 문화재의 영험함

01:59 동아시아 문명의 차이

06:04 문화재의 가치

10:07 고려불화의 아우라

13:55 오래된 문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장보살은 지옥의 신인 시왕(十王)을 거느린 사후세계의 주관자, 지옥 중생의 구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장 신앙은 조상 천도를 중심으로 한 49재나 천도재 등을 통해 지금도 그 입지가 굳건하지요.

그런데 지장보살에게는 우리가 아는 이러한 내용보다 더 깊은 역사적 지문(指紋)이 남아 있습니다. 인도에서 시작되어 서역에서 성립되고, 중국을 거쳐 우리 땅에 도달한 지장 신앙은 그 오랜 시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방위 불교 지식인’ 자현 스님의 이번 신간은 방대한 지장 신앙의 역사를 파고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지장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경전은 물론 오래된 기록, 현존하는 유물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며 경전이나 신앙의 성립 시기를 추론하고, 내용상의 특징은 물론 신앙의 변화 양상에 관해 분석하지요.

스님과 함께 떠나는 고‧중세로의 여행길에서 우리는 지장보살에 대한 의외의 구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후 구제’를 중심으로 하는 지장 신앙이 사실 ‘현세 수호’를 중심으로 한 신앙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그 근거가 되는 경전의 표현은 더 의외입니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 있는 ‘무불(無佛)시대의 주관자’란 표현이 그렇습니다. 이를 통해 석가모니불과 미륵불 사이에서 이 세계를 주관하는 지장보살의 위상이 다른 어떤 보살보다 높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 탐방로 위에서 스님은 또한 지장 신앙의 특징이 현존하는 지장보살도에 어떻게 투영되는지에 대한 도상 분석으로 나아갑니다.

사실 사찰에서 만나는 여러 불화를 관심 있게 살피다 보면 지장보살이 등장하거나 주인공인 불화가 그 어느 보살의 경우보다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현존하는 불화 지장보살도 가운데는 관음보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존도’가 있고,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두고 불도(佛圖)에서나 볼 수 있는 권속들을 배치한 ‘권속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어느 보살도 권속을 거느린 모습으로 표현되는 불화가 없는 것을 보면 지장보살의 높은 위상은 물론 지장 신앙의 막대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려불화의 경우를 중심으로, 언뜻 보면 동일한 도상을 배껴 넣은 것 같은 이 불화들이 경전이나 신앙의 어떤 내용을 반영해 태어난 것인지, 또 각 불화 도상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 불화 속에 표현된 지장보살의 복색, 자세, 지물은 물론 협시, 권속, 병립 구도 등 불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점을 파헤칩니다.

불교미술은 종교미술로서 사상과 신앙의 맥락을 담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의 이 연구서는 얕게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나친 불화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깊게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지장 신앙과 도상의 미스터리를 속 시원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