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비를 아십니까?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09-17     관리자

우리의 옛 민속에는 하늘과 땅의 신령(神靈)을 배알(拜謁)하여 복을 기원하는 매개체로서 향(香)을 피우거나 향을 묻는 의식이 있었다. 실제로 지금도 우리는 차례나 제사 때 향로에 향을 피워 돌아가신 조상들의 신령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처럼 향은 우리의 생활에서 어떠 한 고유의 영역을 수천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매향(埋香)이란 내세의 복을 빌기위하여 물에 잠기는 침수향을 강가나 바닷가에 묻는 일이 고 그 내용을 바위에 새겨 후세 사람들의 참고가 되도록 남겨 놓은 비문이 매향비인 것이 다. 이렇게 향을 묻고 몇백년이 지난 후 그 향나무가 자연적으로 물위로 떠오르면 새로운 세상(이상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당시의 민족 종교인 불교와 접목되어 미륵불이 나타난다 는 것으로도 해석되었다.
매향비문에는, 어떠한 무리들이 언제 어디에 매향을 하고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되었으면 한 다는 기원의 내용이 적혀 있다. 대부분 다듬지 않은 자연석 위에 전문 석공이 아닌 그들 자 신들이 서투른 솜씨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문들은 잊혀진 우리의 옛 민속을 알려주 고 고려 말기 사회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발견된 것 중에서 많은 수가 남해안을 중심으로 고려말에 제작되었는데 당시의 부패하 고 타락한 정치, 잦은 왜구의 침략과 약탈, 그로 인한 어려운 생활고 등을 개탄하며 의식 있 는 승려가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을 적게는 몇십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결 계(結契)를 하여 향도(香徒 나중에 향악으로 이어짐)라는 지역공동체 조직을 결성하여 서로 어려운 일은 돕고 큰일엔 힘을 모으고 왜구의 침입엔 나라에서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자신 들의 힘으로 대처하려는 강한 의지력을 보이는 집단으로 매향비의 주도 집단은 대부분 이 향도들이었다.
이 향도들의 신앙의 하나인 매향신앙은 왕실이나 귀족들의 필요에 의해 하향적, 형식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민중의 자각된 의식으로 새로운 세계, 즉 미륵불 하생의 때를 염원하며 행해진 민중에 의한 주체적, 자발적, 의도적 신앙이었던 것이다.
이 매향작업에는 현 정정(政情)의 혼란을 개탄하며 자신들은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지만 자 신들의 후세(또는 자신들의 내세)들은 좋은 세상에서 복을 받고 생활하기를 염원하는 가장 한국적인 정신이 서려있다.
초기의 매향비는 근본 뜻대로 민간신앙과 불교가 복합된 미륵불이 하생한다는 그 순수한 뜻 으로 행해졌지만 고려 말기에 접어들면서 정치와 종교의 타락이 극치에 달하면서 좀더 적극 적인 사상으로 현실을 개혁해 보려는 민중의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현재 발견된 매향 비는 평북 정주, 가원도 고성 삼일포, 충남 당진과 해미, 전남 영암, 영광, 장흥, 해남, 암태 도, 경남 사천 등 모두 10군데이다.
나는 1991년 11월 초부터 11월말까지 당진 매향비를 4박 5일 일정으로, 경남 사천매향비를 1박 2일로 이들의 행정구역상의 위치만을 가지고 찾아가서 모두 탁본을 뜨고 사진을 찍어왔 다. 사전 준비 작업도 없이 무작정 떠났던 일정 속에서 목적이 있고 과제가 있었던 여행이 니만큼 여유나 재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아슬아슬하고 어려운 일정 속에서도 힘들다기보다는 그만큼 뜻 깊고 유익한 일정으로 기억되었다.
매향비 하나 하나를 찾아 그것을 접할 때마다 조상들의 조용하고 따뜻한 숨소리를 느끼는 듯했다.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충만함을 더 중요시했던 우리의 민족문화에는 인간 적인 아름답고 고귀한 풍습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물질만능주의로 각박해지는 현실 에 응용한다면 우리 고유의 넉넉한 인정이 되살아나 아름다운 사회가 계속 이어질 줄 믿는 다.
지금 우리의 현실도 당시의 상황과 거의 다름없는 타락한 정치와 속은 없고 비대해지기만한 종교, 서양문화의 강압적이고 무절제한 유입으로 인한 개인 이기주의의 만연 등을 볼 때 의 식있는 선각자들이 중심이 되어 현대판 매향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