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스님, 공리주의가 뭐예요?

마을 공동체 꿈꾸는 담준 스님

2021-10-29     김남수

광주 선덕사 주지로 있는 담준 스님은 출가하기 전 대학교 행정 직원이었다. ‘선시禪詩’를 주제로 박사 학위도 준비하였단다. 조금 한가한 방학 때면 대흥사 템플스테이에 자주 참여해 지금의 은사인 법인 스님과 지중한 인연을 맺었다. 

박사 학위에 매달리는 자신이 갇힌 세계에 있다는 느낌이 들자, ‘이번 생은 출가 수행자로 살아보자’라는 각오로 30대 후반에 산문에 들어섰다. 농담이겠지만 출가하면 공부하지 않는 줄 알았다고. 웬걸, 출가해서 속세에 있을 때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하게 되더라고. 

출가 전에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있었지만, 출가 후 윤리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하게 됐다. 대승불교권인 우리 승가사회에 발전된 윤리적 담론이 필요함을 느꼈다고. 담준 스님은 별다른 시각으로 불교를 바라본다. 바로 ‘공리주의’ 시각에서다.

공리주의?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운 상식으로 선한 의도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그런 이론. 불교가 공리주의라고? 일단은 조금 어려운 부분일 듯하다.

“공리주의는 말 그대로 의도도 있고 과정도 있지만, 말 그대로 좋은 결과를 산출해내는 것을 선한 것, 옳은 것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이익이라는 것을 너무 협소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물질적인 이익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이익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중생들이 고통이 없고 행복한 상태를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것은 물질적인 상태를 넘어선 정신적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의도? 좋다. 과정?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행위를 할 때 좋은 결과를 산출하고,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산출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공리주의는 이것을 말한다.

자비 결과주의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를 공리주의 입장에서 이해한다. 최근 스님은 이런 입장에서 허남결 교수 등과 함께 『자비 결과주의』라는 책을 번역했다. 

자비 결과주의는 ‘자비의 성품이 제대로 발현되었을 때 최대의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자비의 성품은 개인의 손해가 있더라도 최대의 결과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스님은 자비 결과주의를 실현하는 존재를 ‘보살’이라 한다. 지장보살처럼 본인이 희생하더라도 최대 결과인 중생구제를 실현하는 존재이다.

스님은 결과, 혹은 공리라는 표현이 ‘세속적인 표현, 혹은 이익을 협소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때 의미가 다가올 수 있다고 거듭 말한다. 즉, ‘의도 좋다. 과정도 좋다. 하지만 중생의 행복을 결과라고 보았을 때 그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자비 결과주의로 본다.

스님이 이야기하는 공리주의는 결과적으로 개인의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보살의 삶을 실제 삶에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당연히 이런 물음이 든다.

“보살이나 부처님이 전생 이야기인 자타카는 이상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한 행위라는 것은 알지만 그런 행위를 매순간 이상적으로 할 수는 없죠. 하지만, 보살적 삶이라는 이상적 지향점을 갖는 것과, 그것이 없는 상태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스님은 선덕사를 마을 공동체의 거점으로 발전시키고 싶어한다. 무등산 뒷자락을 걸으며 마음 치유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산티데바를 만나기까지

허남결, 김진선 두 분의 교수님과 6개월에 걸쳐 매주 1회 만나 정독하면서 번역했다. 달라이 라마가 권하는 ‘입보리행론’의 저자 산티데바((寂天)를 주제로 이런 책을 엮었다. 사실 산티데바도 어려운데, 거기에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 책이니 조금은 어렵다. 어쩌자고 이 책을 번역했을까? 

“아니 우리가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다 배운 내용이에요. 칸트의 의무론, 아리스토텔레스이 덕윤리, 이런 거 다 배우지 않았어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도덕적 판단을 한다. ‘선악을 초월해야 한다’, 혹은 ‘분별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말은 쉽지만, 중생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매 순간 윤리적 판단을 해야 하고, 윤리적 딜레마에 부딪히고 때로는 가책감에 삶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 때도 있다. 이런 중생들에게 공리주의, 결과주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스님에게 수행은 ‘좋은 성품을 계발하는 것’이다. 좋은 성품이 계발됐을 때 유능한 판단자가 될 수 있다. 스님도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면 윤리적 딜레마와 복잡한 난제에 부딪힌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

“극단적 예가 되겠지만 화를 낼 때와 참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어떤 경우가 좋은 결과를 낼지 상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화를 내는 지금 순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거죠. ‘어떻게 그 사태가 전개될 것이다’라는 상상. 그러면 판단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렵다. 공리주의에 대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냐고. 

“불교는 선한 의도가 중요하고 결과를 따지면 천박스럽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불교 관련 책은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이 책은 이 패턴에서 조금 벗어나는 책입니다. 불교를 열린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불교에 관한 생각을 조금 내려놓고 불교를 접해보겠다는 분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세속적인 표현, 혹은 이익을 협소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때 의미가 다가올 수 있다.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는 선덕사

선덕사 1층 현관에 들어서면 찻집이 있고, 양옆으로 도서실과 만화방이 있다. 사찰의 가장 중요한 공간을 지역 주민들에게, 선덕사 옆에 위치한 학교 학생들에게 내주고 있다. 전임 스님들께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스님이 작년 7월에 광주 선덕사 주지로 부임했으니 1년을 넘겼다. 코로나19가 시작될 때 선덕사로 들어왔다. 

선덕사는 행법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됐다. 이중표 교수, 고인이 된 안옥선 교수 등이 출강하기도 했다. 지금은 도법 스님이 회주로 계시면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광주도량’으로 활동한다.

스님은 선덕사를 마을 공동체의 거점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무등산 자락의 끄트머리에 위치해 ‘산을 매개로 한 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 기후위기를 준비하는 청년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선덕사를 중심으로 활동하기를 바란다. 

전임 스님들도 그렇지만 담준 스님 역시 신도 교육에 많은 비중을 둔다. 도서실은 불교대학, 불교입문반이 운영되며, 도법 스님과 함께 하는 ‘시읽기’ 모임이 매월 1회 개최된다. 코로나19로 조금 주춤해졌지만 도서실은 여러 공부 모임들의 공간이다.

선덕사는 아직 젊다. “우리 절은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분이 법당 피아노를 쳐요. 그냥 그렇다고요.”

스님은 2~30대 젊은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한다.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의지할 데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절에 왔으면 한다고. 스님은 안다. 젊은 친구들이 절에 오면 모든 관심이 그들에게 쏠리고 그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모임으로 운영한다고. 그들과 함께 뒷산을 걸으며 마음 치유를 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와서 저를 가르쳐 주세요. 나이가 들어 고정관념이 있고 새로운 흐름에 주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선덕사의 중요한 Tip. 

저녁 예불 시간에 선덕사 법당 앞에 서면 광주의 붉은 노을을 멋있게 바라볼 수 있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