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유럽의 불교 2

세계의 불교, -영국편-

2007-09-17     관리자

영국의 불교를 생각하면 필자는 런던의 히드로 공항과 비행기에서 만난 영국인 스님을 떠올 리게 된다. 언젠가 여행중에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결 비행기 시간이 어중간했기에 그 냥 공항 보세구역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이것 저것 구경하다 소파에 앉았는데 마침 바로 정면에 대형 텔레비젼이 켜져 있었다. 별 생각없이 무심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난데없 이 부처님이 화면에 나타나는 것 아닌가. 석굴암 부처님의 미소를 띠고 있는 불상이었다.
눈이 휘둥그래져 자세히 지켜 봤더니 정작은 웬 향수 선전이었다. 부처님의 모습이 비쳐졌 다가는 다음순간에 바로 그 자리에 부처님의 가부좌를 흉내내고 앉은 성장의 금발여인이 비 쳐졌고 이내 향수병이 화면을 메우는 것이었다. 그 향수의 이름이 이색적이었는데 바로 삼 사라였다. 삼사라(Samsara)라면 윤회 아닌가. 이국의 공항에 나타난 부처님 그리고 윤회라 는 이름의 향수, 게다가 우연의 일치였는지 인연이었는지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내에서 필 자는 영국인 스님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남방식의 주황색 가사에 머리를 단정하게 삭발하 신 잘생긴 스님이셨다. 죄송스럽게도 그 스님의 이름은 잊어 버렸지만 인도에서 수행 중에 있다는 속납으로는 40대 초반에 이른 스님이셨다.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유럽 전역에 걸쳐 있는 승단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고 했는데 출가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였다고 했다. 그날 런던에서 프랑크푸르 트 가는 비행 시간이 너무도 짧게 느껴질 정도로 필자는 스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주로 영국과 인도의 불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벽안의 외국인 스님들에게 대개 그런 분위기를 느 끼게 되는 것처럼 그 스님 역시 불교의 가르침을 체계화 하고 있는, 차분 하면서도 결의에 차있는, 참 싱그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셨다.
스님은 영국에 불교가 대단한 기세로 뻗어 가고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삼사라,, 카르마 (Karma), 젠(Zen), 순야타(Sunyata), 리인카네이션(Reincarnation)이런 단어들이 영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보편적 단어가 되어 있다고 했다. 카르마는 업, 순야타는 공, 리인카네이션은 환 생을 일컫는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들 아닌가.
스님은 자신과 같은 영국 출신의 출가 승려가 3천 명이 넘는다고 했다. 3천 명이라면 엄청 난 숫자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일이었다. 우리 나라 조계종 스님이 1만여 분 남짓으 로 알고 있는 필자는 무례하게도 스님이 뭘 잘못 알고 계신 것아니냐고 들이댔지만 스님은 끝까지 자신의 숫자를 정정하지 않았다.
영국을 일컬어 모험정신과 실험정신의 나라라고 한다. 한때 대영제국의 영토에는 해가지지 않는다고 호언했을 정도로 지구를 제패했던 나라, 산업혁명을 일으켜 가공한 생산력으로 자 본주의를 만들어낸 종주국, 이제는 이 빠진 호랑이처럼 그런 과거의 영화를 반추하고 있는 나라, 그런 영국에 불교가 맹렬한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행기에서 만난 스님이 제시한 승려 3천이란 숫자에는 아직도 고개가 갸웃겨려 지기는 하 지만최근의 브리태니커 통계에 따르면 서유럽 전역에는 불교 신도가 1백 24만 7천명이 있으 며 영국이 그 5분의 1에 달하는 18만 7천 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94년판 크리 태니카이어북) 그러나 영국 불교 관계자들은 영국에만도 작게는 13만에서 50만 명에 이르는 불교 신자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모험을 좋아하고 해외 진출이 습관처럼 되어 있는 영국인들 가운데 꼭 영국 안에 머물 지 않고 필자가 비행기 안에서 만났던 스님처럼 인도며 실론등 아시아 불교 국가에서 수행 과 전법, 그리고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불 자, 수행자들을 모두 합치면 스님 3천, 신도 50만이라는 숫자에 이를 수 있겠다 싶기도 하 다. 그렇다 허더라도 아직 불교는 교세 면에서 영국의 주요 종교로 떠올라 있지는 않다.
그러나 양동이의 물에 스민 한 방울의 잉크가 전체 양동이 물을 푸른 코발트 색으로 바꾸어 놓듯이 불교가 영국의 종교사상계며 일반 영국인들의 정신세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은 통 계 이상의 것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카르마며 수트라(경전)와 같은 파리어, 산스 크리트어의 불교 용어가 영국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보편화되고 있다는 스님의 말은 필 자도 확인한 바 있다.
미국의 케이블 텔레비젼 채널 가운데는 하루 종일 미 연방 의회의 회의 장면을 중계해 주는 채널이 있는데 가끔 영국 의회의 회의 광경도 비쳐 주곤 한다. 영국의회의 회의 광경을 볼 때면 민주주의란 것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토론이란 것이 저런 것이구나 하는 부러운 생각 을 갖게 되는데 영국의회 회의 석상에서도 카르마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목 도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한창 영국의 광우병 문제가 심각할 즈음이었다. 어느 야당 의원이 의회에 출석한 총리를 향해 조목조목 정부의 대책이 미흡하다는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총리가 자신과 내각의 처지에 대해서 이해를 구하는 듯 하는 답변을 했더니 대뜸 그 의원이 '그건 당신들 의 카르마와 같은 것이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장내에 폭소가 터졌고 여성 의 장이 조용히 하라며 의사봉을 탕탕 때리는 것이었다. "오더, 오더"라고 앙칼진 소리를 내는 뚱뚱한 체구의 여성의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있었다.
영국에 불교가 소개된 것은 지난 호에도 밝혔듯이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기 시작했던 18세게 무렵부터다. 그러나 그때는 다분히 고고학적 박물학적인 관심이었다.
1885년 팔리어 경전 학회가 런던에서 설립되면서 역경이 이루어 졌고 그 뒤 1905년에는 최 초의 불교도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전역군인이 런던의 레전트 공원에서 가두 설법을 했 고, 베리가(街)에 불교 서적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서점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미얀마와 인도에서 군대생활을 했던 두 선각자의 이름은 J.R페인과 R.J잭슨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 을 중심으로 1906년에는 영국 불교협회가 창립됐다.
불교협회는 미얀마에서 출가해 수계를 받은 최초의 영국인 스님 아난다메테야(속가명 알렌 베네트) 스님이며 실라카라스, 리스 데이비스, 프란시스 페인 등 많은 선구적 불교학자, 신 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착실할 발전을 거듭했고 46년에는 세계 곳곳에 지부를 개설 했으며 <법륜> <영국 불교> <중도>등의 기관지를 발간했다.
1943년, 런던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하이드파크 인근에 '랑카스타 게이트 사원'이라는 최 초의 본격 사찰이 건립된 이래 스코틀랜드며 에섹스 지방 등 영국 전역에 많은 불교사찰, 불교 도서관, 박물관들이 건립 됐다. 물론 영국 불교의 발전에는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등에 서 불교를 체험한 영국인들과 또 그 곳 출신으로 영국에 이주한 이민자들의 합심한 노력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영국 불교의 특징은 미국과는 또 달리 태국 티벳 등 이민자들이 중심이 돼서 세운 사찰에도 실제 신도는 영국인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이민자 사찰로는 윔불던 테니스 대 회가 열리는 윔블던에 있는 태국절 '와르 붓다바티파'와 스코틀랜드의 티벳절 샴예링 사원 등이 유명하다.
이밖에도 영국에는 실론. 미얀마. 일본. 중국 출신의 이민자들이 각기의 사찰을 건립해 영 국인들과 더불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으며, 한국 불교도 지난 80년대를 기점으로 진출해 있 다. 지난 1978년 옥스퍼드 출신의 석학 벤 머피 박사가 의장을 맡고 있다.
런던 불교도 센터는 지부 형식으로 영국 동부 지역인 이스트엔드 지방에 자치 마을을 건립 했는데 최근에는 이곳이 관광 명소로까지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약 5백여 명에 달하는 신도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곳은 야채식당, 불교서점, 미술센터, 선물가게 운영으로 연간 수 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불교를 굳이 분류하자면 소승 불교로 분류된다. 불교를 믿는 영국 불교가 미얀마. 실 론을 원류로 하고 있는 점과 전통을 중시하는 중년층이 신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그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개의할 바가 아니다. 소승이 반드시 대승보다 못하다는 것은 우리의 선입견이며 착각이다.
지구촌의 인류 전체가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의 파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봉착 해 있는 이즈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부처님 연기 법의 상호 연관성을 인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 불자들이 지구 저편에도 있다는 것은 우리 불 자들을 든든하게 하는 일 아닌가. 자본주의의 영화를 한껏 누렸던 영국, 그 석양의 뒤안길에 서 그들이 불교의 가르침으로 안식을 느끼며 잔잔한 희망을 갖는다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 이 없다.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훌륭한 화단을 이루듯 각자의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을 이룬 지구촌의 불국토를 그리면서 영국 불교의 모습에 계속 주목해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또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 아닌가 싶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