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 관세음보살 1,000개의 손과 42수주手呪의 의미

그 손에 담긴 뜻은

2021-09-30     정각 스님

◎ 일러두기 : 이 글은 「관음(觀音) 42수주(手呪) 및 『오대진언』의 성립과 전개」를 본 잡지의 편집 방향에 맞춰 필자가 수정·보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관음신앙의 확산과 함께 『천수경』이 널리 유통됐다. 『천수경』은 신라의 의상(義湘, 625~702) 스님이 671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당시 가져온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陀羅尼經)』을 바탕으로 성립된 경전이다. 658년경 가범달마(伽梵達磨)가 한역(漢譯)한 이 경전에는 ‘신묘장구대다라니’ 외에도 40수주(手呪, 주문・진언 별 손 모양)의 구체적인 명칭과 용례가 소개돼 있어서 신라 때부터 한국불교에 널리 알려졌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또한 40수주의 명칭과 용례만 소개된 가범달마 역본과는 달리, 불공(不空, 705~774) 역본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대비심다라니(千手千眼觀世音菩薩大悲心陀羅尼)』에는 41수주 진언이 수인도(手印圖)와 함께 실려 있다. 

한편 1485년 간행된 진언집 『오대진언(五大眞言)』에는 불공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대비심다라니』와 42수주가 수인도와 함께 수록됐으며, 여러 차례의 중간본 간행에 힘입어 널리 확산됐다. 

그렇다면 가범달마 역본의 40수주가 어떻게 불공 역본에 41수주로 변용됐으며, 『오대진언』에는 어떤 과정을 통해 42수주가 수인도와 함께 실리게 되었을까. 또한 42수주 각각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40관음과 40수법의 의미

40수주가 41수주, 42수주로 변화한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8세기 당나라의 삼매소부라(三昧蘇嚩羅)가 번역한 『천광안관자재보살비밀법경(千光眼觀自在菩薩秘密法經)』을 살펴봐야 한다. 이 경전에서는 40수법(手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며, 각 수법에 따라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 경전은 관자재보살이 옛적 천광왕정주여래(千光王靜住如來)로부터 ‘대비심다라니’를 건네받고 8지(八地)의 경지를 뛰어넘었으며, 그로 인해 마음에 환희를 얻고 대서원을 드러내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구족한 예를 설명하고 있다. 즉 관자재보살이 대중 앞에서 설법할 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무소외(無所畏) 삼매에 들어 삼매광 가운데 25존(尊)의 보살을 솟아나게 했다. 이들은 각 정수리 위에 11면(面)을, 몸에는 40수(手)를 구족했고, 각 손바닥에는 1개의 자비스러운 눈[眼]이 있다. 곧 25존의 보살은 각각 40의 손과 눈을 갖춰, 합이 1,000수(手) 1,000안(眼)이 된다.

또한 25존의 화신(化身) 보살은 25유(有, 중생들이 사는 다양한 세계)의 중생세계에 각각 머무는데 이들 모두 십일면보살이며, 11면에 있는 눈 22개와 본래 얼굴에 있던 눈 3개를 합쳐 총 25개의 눈과 40개의 손이 있다. 이 같은 40분의 보살 화신이 한 세계 속에 머무르며 천안 또한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경전은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현신한 시무외관자재(施無畏觀自在)의 40수법의 진언법을 설하고 있다. 40수법 중 한 예로, 마니법(摩尼法), 즉 여의주수법(如意珠手法)에 대해 경전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유해지고 재보(財寶)를 얻고자 하는 자는 응당 「마니법(여의주수<법>)」을 닦으라. 이 법을 닦기 바라는 자는 목욕을 해 청정케 하고 깨끗한 흰 천이거나 종이, 혹 명주 등을 취해 「마니여원 관자재보살상」을 그려라 (…중략…)  

존형(尊形): 「여원(與願) 관자재보살」을 염(念)하고자 하는 자는 왼손에 마니구슬을 지녀 가슴 부분에 두되, 그 구슬은 폐유리(吠瑠璃) 색으로 황색 광명에서 불꽃이 생겨나는 것처럼 한다. 오른손은 여원인(與願印)을 맺고 팔을 굽혀 위를 향하게 한다. 이 같은 화상(畫像)을 청정한 곳에 안치해 예배 공양하고 염송법을 행한다.(그림 1)

인상(印相): (진언을 외울 때) 인(印)의 형상은, 두 손을 견고히 유지해야 하며 마니구슬의 형상에 집중하면서 선(禪)과 지(智)가 아울러 성취되도록 한다. 진언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진언(眞言): 唵 嚩日羅 達磨(金剛法) 振多摩抳(如意珠) 入嚩羅(光明) 嚩羅泥(與願) 娑嚩賀.”

그림 1. 『천관안관자대보살법경』에 근거한 여원(與願) 관자재보살의 존형.

위 진언 “옴 바아라 달마 진다마니 즈바라 바라니 사바하”는 “Oṃ vajra–dharma cintamaṇi, jvala varaṇi svāhā”로 표기할 수 있으며, “아(唵)! 금강법(金剛法)의 여의주(如意珠, cintamaṇi)시여! 광명(jvala)의 여원(與願, varaṇi) (관자재)이시여, 이루어주소서(사바하)”로 번역할 수 있다.

『천광안관자재보살비밀법경』은 원하는 바에 따라 40수법 수인에 따른 40종의 관자재보살 존형을 그릴 것을 전제한 후, 각 수법(手法)에 따른 독송자의 수인과 독송할 진언 40종을 소개하고 있다. 이 40종 진언에는 중생들의 온갖 염원이 망라돼 있다. 안은(安隱, 편안)함을 얻고자 하면 견색법(羂索法)에 따른 수인을 한 채 ‘견색수진언’을, 배[腹] 속 병을 치료하고자 하면 보발법(寶鉢法)의 수인을 한 채 ‘보발수진언’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시무외법(施無畏法)의 수인을 한 채 ‘시무외진언’을 하는 등, 중생들의 40여 가지 바람에 대한 40종의 수인과 진언[呪]을 소개하는, 만병통치약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위 40수법에 따른 40수주는 고려 시대에 널리 확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경기유형문화재 ‘고양 원각사 고려 시대 다라니 일괄’ 중 1295년 간행된 「대불정진언 등 진언합부 다라니」에 26종 진언 중 ‘사십보수(四十寶手)’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그림 2)

그림 2. 대불정진언 등 진언합부 다라니, 고려 1295년, 고양 원각사 소장.  ‘元貞元年(1295년) 5월’ 간기가 적혀있으며, 좌측에는 바깥 테두리에 기록된 26종의 진언 중 하나인 ‘四十寶手(사십보수)’란 내용이 적혀있다.

 

41수주에서 42수주로

불공이 번역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대비심다라니』에는 41종 수주의 용례 및 진언 명칭과 함께 수인도 41종이 실려 있다. 여기서 41종이란 40종의 수주 외에 ‘감로수진언(甘露手眞言)’이 추가된 것이다.

불공 역본에 실린 41수주 용례는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소장된 철조천수관음보살좌상(그림 3)에 적용돼, 41종의 수인도가 실린 불공 역본이 고려 말기에 이르러 유입되고 유통됐을 가능성을 알려준다. 이 보살좌상은 경북 상주의 동방사(東方寺)에 봉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천수관음보살좌상에는 가슴에 합장한 ‘합장수’와 두 손을 머리 위로 받쳐 든 ‘정상화불수’을 중심으로 왼편에 19종, 오른편에 20종 등 총 41종의 수인과 지물(持物, 손에 지닌 물건)을 표현한 것으로, 이는 불공 역본에 근거해 조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3. 철조천수관음보살좌상, 고려말~조선 초,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고려말에는 42수주와 수인도를 전하는 문헌도 전해졌다. 이를 뒷받침해 줄 자료로 고려 충목왕 1346년 9월에 조성된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 중 「진언, 다라니」를 들 수 있다. 이 유물에는 범자로 쓴 수주 및 수인도와 함께 5종의 진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 5종의 진언에는 「오대(五大)」라는 판심제(板心題, 책의 제목)와 함께 ‘5(五)’라는 면수(面數)가 판각돼 이 낱장이 권자본으로 제작된 『오대진언(五大眞言)』 중 한 면인 제5면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그림 4) 이는 고려말에 이미 『오대진언』이 제작되거나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림 5. ‘총섭천비인’을 한 금동십일면천수관음보살좌상, 고려 14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통(智通)이 번역한 『천안천비관세음보살다라니신주경』의 「천안천비관세음보살천비총섭인(千眼千臂觀世音菩薩千臂總攝印)」에는 위로 향한 오른손 손바닥 위에 왼손 손바닥을 놓은 후 가슴 부분에 밀착시키는 수인(手印) 형상과 함께, “능히 삼천대천세계의 마와 원수를 항복시킬 수 있다”는 진언의 공능(功能)을 설명하고 있다. 

또 이 유물은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 전적 중 1484년 원통암(圓通庵)에서 간행된 『오대진언합부(五大眞言合部)』와 판식(板式)만 다를 뿐 범자, 본문의 배치, 수인이 동일하다. 따라서 고려말에 전래한 「진언, 다라니」, 즉 『오대진언』은 1484년 원통암에서 간행된 『오대진언합부』 판본의 모본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데 1484년 간행된 『오대진언합부』의 경우 42수주와 수인도를 싣고 있다. 따라서 범자, 본문의 배치, 수인도 등이 같은 문수사 「진언, 다라니」, 즉 『오대진언』도 42수주를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언, 다라니」는 14세기 전반에 42수주 및 그에 따른 42종 수인도의 유통을 알려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동십일면천수관음보살좌상(그림 5)의 경우 앞선 보살상에 비해 42수주에 따른 ‘총섭천비인(摠攝千臂印)’이 추가돼 있다. ‘총섭천비인’은 『오대진언』의 42수주 중 맨 마지막에 새롭게 등장하는 수주다. 즉 41수주에 등장하지 않았던 ‘총섭천비인’이 고려말 조각에 등장한 것은 당시 42수주가 고려에 폭넓게 유통됐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림 4.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 일괄 중 「진언, 다라니」, 고려 1346년경, 덕숭총림 수덕사 근역성보관 제공.

 

42수주와 수인도

조선 초 1476년에는 42수주를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본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가 간행됐다. 불공 역본인 『천수천안관세음보살대비심다라니』 전반 일부와 수주를 담고 있는 것으로, 기존 한문으로 기록된 진언 해설과 음역 내지 범자로 전해지던 각 진언구를 한글로 표기했다. 이 책에 실린 수인도는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에서 수습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서산 문수사 복장유물이 실렸던 것과 동일한 책의 도상을 차용한 것으로 짐작한다.

언해본에 실린 수인도의 경우 1484년 팔공산 원통암에서 중간된 『오대진언합부』 및 1485년 재간행한 『오대진언』의 수인도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이 책은 1484년 중간된 『오대진언합부』와 1485년 중간된 『오대진언』의 모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듯 다양한 중생들 바람에 대한 40여 종의 수인과 수주는 시대를 거듭하며 종류가 늘어났고, 또 시대에 맞춰 그 원에 대한 처방을 제시했음을 볼 수 있다.   

 

정각 스님  
송광사 출가, 통도사 강원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및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무비 스님을 법사로 강맥을 전수했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에 위촉됐다. 동국대 겸임교수 및 경북 문화재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승가대 교수 및 고양 원각사 주지로 있으며,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대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천수경연구』 등 10여 종의 저서를 간행했으며, 「관음 42수주(手呪) 및 『오대진언』의 성립과 전개」 등 30여 편의 논문을 저술했다.